앞 못 보는 ‘골목상권 正義’
기사입력 2012-10-26 03:00:00 기사수정 2012-10-26 04:4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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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논설위원
시장의 약자를 응원하는 유권자들의 선택이 언더독 효과에 영향을 받는다면 실제 지갑을 여는 소비자의 선택은 승자에 편승하는 밴드왜건 효과에 가깝다.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밴드왜건 효과가 언더독 효과를 능가한다. 국민 10명 중 7명이 대기업슈퍼마켓(SSM) 등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 규제에 공감한다고 해서 이들이 동네 슈퍼와 빵집, 재래시장에서 지갑을 열지는 않는다. 소비자들은 샌드위치를 하나 사더라도 동네 빵집보다 상품의 회전이 활발해 채소가 신선한 프랜차이즈 체인점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정의감에 호소하는 규제나 정책만으로는 골목상권을 살리기 어려운 이유다.
대기업 유통회사와 중소상인단체 대표들이 최근 자율 합의를 통한 골목상권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대형마트와 SSM은 앞으로 3년간 신규 점포를 내지 않고 한 달에 두 번 자율 휴업을 하기로 했다. 양측이 자율 합의에 최종 합의하면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3년간 시간을 벌게 된다. 정치권은 이번 국회에서 유통산업과 관련한 23개 법안을 쏟아냈다. 대부분 대형유통업체의 출점과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법안이다. 시장 자율의 상생해법의 물꼬가 트인다면 정치권도 효율성이 떨어지는 획일적 규제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
자율 합의 과정에서 출점 제한 범위와 대상지역 선정을 논의하다 보면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다. 대형마트 측은 “판을 깨지 않고 진정성을 보일 것”이라고 말한다. 대형유통업체들이 주변 중소상인들로 온기를 전달하는 ‘윈윈 모델’을 만들어내야 “규제를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을 면할 것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는 골목상권 보호를 경제민주화의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자영업자 720만 명의 표심을 잡기 위해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눈앞만 보고 보호막만 쳐주는 ‘골목상권 정의(正義)’로 자영업자가 살아나긴 어렵다. 경제정책에 반응하는 국민은 약자를 응원하는 유권자가 아니라 시장의 논리와 이해관계를 철저히 따르는 소비자다.
시장의 보호막이 과도하면 그렇지 않아도 비정상적으로 커진 생계형 창업을 오히려 유인하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신사협정이 지속되는 3년간 골목상권이 살아나지 않으면 자율합의는 물 건너가고 차기 정부 임기 중에 갈등이 재연될 것이다. 대선후보들은 자영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려 소비자의 자발적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후보들은 ‘과잉 공급-사업 부진-부채 증가-생활 불안’의 악순환에 빠진 자영업자를 살릴 각론으로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170만 명으로 추산되는 음식점 호프집과 같은 영세한 생계형 자영업자의 수요를 양질의 일자리로 돌리고 소득 불균형과 부채 문제를 해결할 구체적 해법이 필요하다. 신세계 이마트의 매출은 미국 월마트의 69분의 1에 불과하다. 영세한 유통산업을 현대화하고 서비스업을 선진화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영업자에게 “시장 보호막에만 기대서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고 위기의식을 불어넣을 용기도 있어야 진정한 리더다. 3년이라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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