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1.19 23:30 | 수정 : 2012.11.20 02:01
김태훈 국제부 차장

지난 6일 치러진 미국 대선 직전에 발표된 미국의 실업률은 7.9%였다. 오바마 정권 내내 8%를 넘다가 간신히 7%대로 끌어내렸다. 이전 대선에서였다면 오바마는 롬니에게 졌을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치러진 미 대선에서 실업률 7.2%를 넘기고도 현직 대통령이 재선한 사례는 없었다.
외신들은 이 징크스가 깨진 이유 중 하나로 미국인들이 불황과 실업의 책임을 오바마에게 묻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오히려 실업 사태의 책임을 4년 전 물러난 부시 행정부 탓으로 보는 유권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미 국민은 이전 정권의 잘못을 기억하고 있다가 표심에 반영함으로써 양당 모두에 집권하면 임기에 관계없이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국정에 임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일본의 중국사학자 미야자키 이치사다(宮崎市定) 전 교토대 교수가 쓴 '옹정제'에는 위정(爲政)의 막중한 책임을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였던 중국 청(淸)나라 황제 옹정제(雍正帝·재위 1722~1735)의 모습이 소개돼 있다. 그가 온 힘을 다해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을 수행하는 과정을 읽으면서 우리 정치인에게서도 이런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들은 측근이 쳐놓은 인(人)의 장막에 갇혀 민심과 유리되기 쉽다. 옹정제는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지방 관리가 공식 보고와는 별도로 황제에게 자유롭게 편지를 보내게 하는 '주접(奏摺)'이라는 소통 방식을 장려했다. 그는 오직 황제와 해당 지방관만 볼 수 있는 이 편지에 무엇이든 보고하라고 독려했다. 이렇게 해서 올라오는 보고를 읽으며 그는 황궁 밖 세상과 소통하려 애썼다. 매일 밤 50~60통의 주접을 읽고 답장을 쓰느라 자정 가까운 시각에야 잠자리에 들었고 새벽 4시면 일어났다. 민심을 정확히 읽기 위해 주접으로 올라오는 내용은 잘못된 것이 있어도 처벌하지 않았다.
옹정제는 이처럼 민심을 예민하게 살피면서도 포퓰리즘은 경계했다. 정책을 결정할 때는 '오로지 그것이 맞는지 틀리는지, 사태에 적합한지 아닌지를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인기를 끌 것인가는 추호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적은 편지도 있다. 만주족과 한족의 인재를 고루 등용한 그의 한·만 융화 탕평책은 정권을 잡으면 자기 지역 인사만 중용해 지역감정을 덧나게 해온 우리 정치를 부끄럽게 한다.
옹정제는 자신을 과로로 내몰다가 재위 13년 만에 57세 나이로 병사했다. 그는 거실에 '군주가 되는 일은 어렵다'는 뜻인 '위군난(爲君難)'이란 글을 써놓고 "나라를 다스리는 어려운 일을 하고 있으니 이 한 몸을 아까워할 수 없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게을리하면 기분이 나빠져 오히려 병세가 악화된다"고 자신을 채찍질했다.
미야자키 교수는 옹정제가 이처럼 성실·근면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음속에 '천명(天命)에 대한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옹정제의 천명은 오늘날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소명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곧 치러질 대선에서 뽑힐 우리 새 대통령에게서 이런 옹정제의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