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2.11 22:46
-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이기(李墍·1522~1600)가 '간옹우묵(艮翁疣墨)'에서 한 말이다. 사람을 판단하는 방법을 논했다. 이 가운데 핵심을 피하는 대신 모서리를 어루만지며 구차하게 넘어가려는 모릉구용(摸稜苟容)의 술책은 당나라 때 재상 소미도(蘇味道)에게서 나온 말이다. 그는 측천무후의 섭정기에 전후로 세 차례에 걸쳐 7년간 재상의 지위에 있었다. 그는 뛰어난 시인이었고 해박한 식견을 지녔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나랏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는 위의 눈치나 보고 아첨이나 하면서 특별히 한 일이 없었다.
'구당서(舊唐書)'의 소미도열전(蘇味道列傳)에는 그가 누군가에게 했다는 충고가 실려 있다. "일 처리는 명백하게 결단하려 하지 말게. 만약 착오라도 있게 되면 반드시 견책을 입어 쫓겨나게 되지. 그저 모서리를 문지르며 양쪽을 다 붙들고 있는 것이 좋다네." 분명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혀 스스로 입지를 좁히지 말고, 양다리를 걸쳐놓고 상황에 따라 유리한 쪽을 잡는 것이 처세의 묘방이라고 스스로 밝힌 내용이다. 이 말을 전해 들은 당시 사람들이 이를 비꼬아 그에게 '소모릉(蘇摸稜)'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이 밖에 사람을 판단할 때 살펴 따져야 할 일이 많다. 인기에 영합해서 점수나 벌려는 행동, 겉과 속이 다른 처신, 말과 어긋나는 몸가짐 같은 데서 그림자의 실체가 언뜻언뜻 드러난다. 겉만 보면 안 된다. 모서리를 어루만지며 양다리 걸치는 사람을 경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