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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 예비군 창설… 자주국방 최우선으로

화이트보스 2013. 1. 18. 11:54

朴대통령, 예비군 창설… 자주국방 최우선으로

  •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 입력 : 2013.01.18 03:00

    1·21 사태 이후의 변화 - 중화학공업·방위산업 육성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등 무장 공비 31명이 청와대를 기습 공격한 것은 당시 나라 전체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무장 공비들은 군·경 소탕 작전으로 김신조씨가 생포되고 29명이 사살됐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1·21 사태 직후 향토예비군을 만들었다.

    박 대통령은 1960년대 수출을 통한 경제 발전을 최우선 정책으로 추진했으나 1·21 사태 후 자주국방을 최우선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1968년 2월 7일 "온 국민이 경제 건설과 국토 방위를 병행, 논두렁에 총을 두고 농사를 짓는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해 4월 1일 대전 공설운동장에서 167만 예비군 창설식이 열렸다.

    시민들이 17일 서울역에서 육군 수도방위사령부가 주최한 ‘Remember(리멤버) 1·21 사진전’을 관람하고 있다. /이명원 기자
    1·21 사태 후 박 대통령은 당시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에게 응징 보복을 요구했지만 미국은 응하지 않았다. 이듬해 7월 닉슨 미 대통령이 괌에서 "아시아 국가 군사 개입을 자제하고 베트남에서 철군하겠다"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한 데 이어 주한 미군 감축 계획까지 나오자 박 대통령은 자주국방 의지를 더 굳혔다고 한다.

    이에 따라 중화학공업 및 방위산업 육성이 국정 과제로 떠올랐다. 1968년 3월 울산석유화학단지가 착공됐고, 예비군을 창설한 4월 1일 포항종합제철이 창립됐다. 1973년 1월 31일엔 청와대 국산 병기 전시실에서 오원철 제2경제수석비서관이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은 표리일체(表裏一體)"라며 '방위산업 건설 및 공업 구조 개편'에 대한 브리핑을 실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