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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 중수부장, 한밤중 걸려온 전화 받았더니 "우리 각하가 울고있어요"… 힘있는 사람들에게 '저승사자'로 불리며 권력 단죄하다, '스스로 권력'이

화이트보스 2013. 2. 23. 09:23

대검 중수부장, 한밤중 걸려온 전화 받았더니 "우리 각하가 울고있어요"… 힘있는 사람들에게 '저승사자'로 불리며 권력 단죄하다, '스스로 권력'이 된 중수부의

입력 : 2013.02.23 03:03 | 수정 : 2013.02.23 03:38

[32년 만에 폐지되는 중수부 영욕의 역사]
- 대통령과 아들들, 총리까지 수사
이철희·장영자 사건으로 첫성과 노태우 비자금 사건도 성공작
'소통령' 불리던 YS 차남 구속, 노무현·이회창 대선자금 파헤쳐…
- 檢亂 등으로 사라질 운명에…
수사정보, 정권 인사에 새나가 검찰·정권이 함께 몰락한 '이용호 게이트'로 비화…

#1. 2002년 6월 22일 한·일 월드컵 8강전이 열린 광주 월드컵 경기장. 홍명보의 페널티킥이 스페인의 골망을 흔들자 VIP 관람석도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장관, 정치인들은 얼싸안고 '축제'를 만끽했다. 그러나 축제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맨 앞에 앉은 한 사람, 김대중(DJ) 대통령 때문이었다. DJ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그제야 전날(21일) DJ의 차남 홍업씨가 대검 중수부에 구속된 사실을 떠올렸다. DJ는 "단군 이래 가장 기쁜 날"이라는 성명을 냈지만, 아들 구속에 따른 회한(悔恨)을 감추지 못했던 것이다.

#2. 대검 중수부의 '한보 사건' 수사가 한창이던 1997년 5월 어느 날. 심재륜 중수부장은 한밤에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청와대 비서실장 K씨였다. "심 부장, 각하가 울고 있어요. 우리 각하가…."

김영삼(YS) 대통령 아들 현철씨를 구속하지 말라는 압력이었다. 하지만 중수부는 며칠 뒤인 17일 현철씨를 구속했다. 현직 대통령 아들이 처음 구속되는 순간이었다.

오는 25일 출범할 박근혜 정부가 '중수부 연내 폐지' 방침을 확정하면서, 대검 중수부는 1981년 4월 출범한 지 32년 만에 간판을 내리게 됐다. 22일 중수부 검사들은 '올 것이 왔다'며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경수 중수부장은 "매우 안타깝고 서글프다"고 했다. 중수부가 폐지되면 '대검 1120호' 등 중수부 특별조사실도 다른 주인을 찾게 된다. 1120호 특조실은 노태우·노무현 전 대통령이 조사를 받으면서 'VIP 특실'로 불렸던 곳이다. 검찰총장의 하명(下命) 사건 수사를 맡는 중수부는 1962년 설립된 대검 중앙수사국이 전신(前身)이다. 검사 인사(人事)권을 가진 법무장관에게만 힘이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총장이 '직할 수사부대'를 갖게 됐다는 것이 법조계의 정설이다. 그간의 중수부 역사에선 총장·중수부장이 정치권력의 외압(外壓)에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영욕(榮辱)이 엇갈렸다.

중수부가 권력에 맞서 싸울 때 국민은 박수를 쳤고, '권력자'는 뒤에서 눈물을 흘렸다. 심재륜 전 중수부장은 정보기관 직원으로부터 미행당하면서도 현철씨 구속을 관철해 '국민 검사' 소리를 들었다. 2003~2004년 안대희 당시 중수부장이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노무현)과 야당 대선 후보(이회창)의 대선 자금을 파헤치자 노 전 대통령은 "요즘 안 부장 때문에 죽을 맛"이라고 은근한 '압력'을 가했다. 정권이 중수부 폐지를 시도하자 송광수 총장이 "중수부 수사가 불신받는다면 내 목을 먼저 치겠다"고 막아섰다. 이 일로 인터넷에 '송짱(송광수)' '안짱(안대희)' 팬카페가 생겼다. 사실상 중수부의 첫 수사인 이철희·장영자 6400억 어음사기 사건(1982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1995년) 등도 중수부의 성공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중수부는 힘있는 사람들에겐 '저승사자'로 불렸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기소했다. 전직 총리 3명(김종필, 박관용, 김원기), 대통령 아들 2명(김현철, 김홍업)과 대통령의 형 2명(노건평, 이상득), 대통령 동생 1명(전경환)을 기소했다. 사법처리된 재벌 총수도 10명을 훌쩍 넘는다. 2000년 이후 기소된 전현직 국회의원, 고위공직자, 지방자치단체장만 100명에 육박한다.

화려함의 이면에는 그림자도 짙었다. 2000년 주가조작 등으로 수사받던 이용호씨와 관련한 수사정보가 정권인사들에게 새 나가면서, 검찰과 정권이 함께 몰락한 '이용호 게이트'로 비화됐다. 수사기밀 누설 혐의로 신승남 전 검찰총장과 김대웅 전 중수부장이 기소됐다.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수사 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환조사한 뒤에도 20일 넘게 사법처리 결론을 못 내고 수사를 끌면서, 결과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비극을 낳았다.

중수부 폐지의 결정적 계기는 작년 11월 한상대 총장의 퇴진문제를 놓고 빚어진 검란(檢亂)이다. 누구의 잘못인지를 떠나, 한 총장 퇴진에 앞장선 중수부가 스스로 권력집단이 됐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검찰 안팎에선 '중수부 폐지 이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특수수사의 붕괴를 걱정하고, "중수부가 폐지되면 누가 웃을지 생각해보라"는 말도 한다. 박영수 전 중수부장은 "갈수록 수사환경이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에 검사들의 분발과 실력배양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선 때 박근혜 캠프에 참여해 "(중수부 폐지를 공약하려니) 눈물이 나려 한다"고 했던 안대희 전 중수부장은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며 착잡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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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자평

전체 100자평 (13)

2013.02.23 03:44:55신고 | 삭제

여의도 금뱃지에겐 공포의 대상이었지. 과오는 있지만 국민에겐 그래도 희망이었다. 손질 조금 해서 존속시키면 좋겠지만, 결국 양화는 악화에 의해 구축 된다. 모르긴해도 제일 환호하는 인종은 비리 국회의원과 썩은 고위공직자와 한탕을 준비하는 예비 기득권층이 아닐까 짐작 된다. 검찰에 힘이 빠진다고 너무 좋아하지 마라. 국민의 눈은 시퍼렇게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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