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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외교의 成敗는 균형 감각에 달렸다

화이트보스 2013. 2. 26. 11:02

박근혜 정부 외교의 成敗는 균형 감각에 달렸다

  • 기미야 다다시 日 도쿄대 교수·동아시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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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02.25 23:01

    北 핵실험, 어려운 시험대 올라… 이전 두 정권 전철 밟지 말고
    동맹국·北 신뢰 양립 정책 필요… 국력 강화, 동맹 외교 재구축,
    외교 지평 넓히려 한 부친처럼 주변 강대국들 고루 활용해야

    기미야 다다시 日 도쿄대 교수·동아시아 정치
    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이어 3차 핵실험을 강행, 출발부터 매우 어려운 시험대에 올랐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통해 적어도 이명박 정권보다는 적극적으로 대북 정책에 나설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핵실험이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인 만큼 대북 제재는 불가피하고 당분간 남북 관계 냉각은 필연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과 우호적 관계를 구축하고 중국의 대북 영향력 행사를 전제로 한국 주도의 새로운 남북 관계 구축을 염두에 둔 듯하다. 하지만 중국의 제지에도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하여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가진 한계가 드러났다. 이런 상황은 외교정책의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또 북한이 미국을 사정권에 둔 핵 능력을 확보하면 미국의 대북 정책 목표가 '비핵화'에서 '핵 비확산'으로 후퇴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불안이 확산할 수 있다. 한국 내에서 미국 전술핵 재배치, 2015년으로 예정된 전시 작전 통제권 환수 연기, 핵무장 필요성 등이 논의되는 것은 이런 불안감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외교정책에는 안정감도 있다. 그것은 노무현·이명박 두 정권에서 시도된 극단적 정책을 탈피하는 균형 감각의 회복이다. 노무현 정부는 동맹 외교를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해 한국의 장점을 살리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는 동맹국의 협력을 효과적으로 동원하지 못해 남북 간의 긴장 격화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두 정부는 남북 관계를 한국 주도로 관리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두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한국에 대한 동맹국과 북한의 신뢰를 양립시키면서 외교정책을 전개하는 것이 박근혜 정부가 목표로 하는 '신뢰 프로세스'의 내용이다.

    한국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 감각이다. 남북한이 체제 경쟁에 매진했던 냉전 시기는 몰라도 중국의 대국화(大國化)라는 동아시아의 권력 이동이 나타나고 있는 탈냉전(脫冷戰) 체제하에서는 환경 변화를 충분히 활용하여 최대한 적은 비용으로 한국 주도의 통일을 위한 조건을 조성하는 것이 긴요하다. 그래서 미·일·중·러라는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조건에서 강대국의 힘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가 한국 외교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사실 냉전 체제하에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런 외교를 효과적으로 펼쳤다. 박정희 정부에 대해서 여러 평가가 있지만 적어도 외교에 관해서는 반공(反共) 외교에 국한되지 않고 국익(國益)에 기초한 다자(多者) 외교를 시도했다는 것이 박정희 시대 외교를 연구해온 나의 결론이다.

    남북한 체제 경쟁에서 열세였던 한국을 지금과 같은 압도적 우위로 전환시킨 동인(動因)이 박정희 시대의 경제 발전에 있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경제 발전을 달성하기 위해 냉전 체제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지 고민한 것이 1960년대 한국 외교였다. 식민지 지배의 청산이 불철저했다는 비판 속에서도 한국의 안보와 번영을 위해 일본의 힘을 어떻게 활용할지 노력한 결과가 1965년의 한·일 수교였다.

    미·중 화해와 일·중 수교에 따라 동아시아의 데탕트가 도래한 1970년대 한국은 주한 미군의 감축·철수 가능성에 직면했다. 북한의 동맹국인 중국의 국제 위상이 높아지는 등 매우 어려운 현실에 직면했다. 당시 박정희 정부의 대응은 '세 화살'로 집약된다. 첫째, 동맹 외교의 재구축이었다. 미국의 대한(對韓) 방위력 유지를 위한 대미 외교에 주력했으며, 중화학공업화에 관해 일본과 밀접하게 경제 협력하면서 미국의 지원 감소를 보충하려 했다. 둘째, 자주 외교·국방의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국력 강화이다. 베트남의 공산화 통일이라는 현실을 목도한 뒤 미국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결의에 기반하여 경제·국방 등에 자율성을 향상시키는 정책을 지향했다. 셋째, 한국의 외교적 지평을 확대하려 했다. 동시대에 결실을 보지는 못했지만, 중국·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외교에 활로를 찾기 위해 '두 코리아' 정책으로 대담하게 방향을 전환했다. 유신 시대는 많은 희생이 있었다는 의미에서 정당화되기 어려운 어두운 시대였다. 그러나 외교적인 측면에서는 균형 감각이 풍부한 외교를 펼쳤다는 점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미·중의 G2 시대에 한국 우회 전략을 채택한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국익을 어떻게 설정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강대국의 힘을 어떻게 균형 있게 이용할 것인가가 새 정부 외교의 당면 과제이다. 박근혜 정부 외교의 성공 여부는 '균형 감각'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아베 정권의 대응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만 박근혜 정부가 균형 감각을 살려 일본과 엮인 역사 문제를 관리하고 대북·대중 정책의 전략적 공통점을 어떻게 찾아내 이용할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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