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한반도가 태평양 한 가운데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험난했던 한반도의 역사는 대부분 지리적 위치와 무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강대국으로 둘러쌓여 고난의 행군을 하는 한반도의 모습을 보면 애처로워 보이기도 한다. 물론 한반도가 태평양 가운데 있었다면 한민족의 삶과 문화도 지금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고난의 역경을 헤쳐오면서 형성된 문화가 오늘날 한국경제의 바탕이 됐을 것이다.
2차대전에서 승리한 영국은 2천년간 나라 없이 떠돌다 전쟁기간에 600만명이 학살당한 유태인들에게 이스라엘 국가 창설을 약속했다. 유태인들의 정신적 고향은 기독교의 성지 예루살렘이 위치한 팔레스타인 땅이지만 그 지역은 오래 전부터 아랍인들의 삶의 터전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그 지역을 식민지로 다스렸던 영국은 유태인들에게 아프리카 우간다에 국가를 세울 것을 제안했다. 그 지역은 팔레스타인보다 훨씬 넓고 풍요로운 땅이었다.
하지만 유태인들은 그들의 고향 팔레스타인을 고집했다. 그들이 사막과 다름 없는 팔레스타인을 고집한 것은 물질적 풍요보다 정신적 풍요를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태인들의 그런 선택으로 이스라엘과 아랍은 지금까지 대립하면서 중동지역이 세계의 화약고가 된 것인데 어쩌면 유태인들 중에도 팔레스타인이 대서양 한 가운데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고 국가라는 조직이 형성된 이후 어느 민족이든 삶의 터전은 대부분 오로지 전쟁에 의해서만 바뀌었었다. 그런데 근대 이후 몇몇 국가들 사이에서 국가간에 토지거래가 있었다. 미국이 오늘날 같은 풍요롭고 광활한 국토를 소유하게 된 것은 토지매입에 힘입은 바 크다. 18세기 말 북아메리카 동부의 13개 주로 독립한 미국은 19세기에 엄청난 토지를 사들였다.
대표적인 경우가 19세기 초 미시시피강 서부의 대평원을 프랑스로부터 매입한 경우인데 루이지애나로 불렸던 그 땅은 한반도의 10배 정도가 되는 땅으로 수많은 전쟁으로 재정이 고갈됐던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그 땅을 1500만 달러 (지금 가치로 2억달러 정도)에 팔아버린 것이다. 그 토지거래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토지거래였을 것이다. 미국은 19세기 말 광활한 알래스카도 러시아로부터 720만 달러 (지금 가치로 1억 달러 정도)에 사들였다.

미국의 영토확장 과정
하지만 20세기로 접어들면서 국가간 토지 거래의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현재는 국가가 다른 나라 민간업자에게 토지를 임대하는 경우는 있지만 토지를 파는 경우는 없다. 국제법상 국가간 토지거래가 금지됐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현재는 어느 나라든 자국의 영토를 파는 행위는 국민들이 용납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19세기의 국가간 토지거래는 절대군주가 마음대로 자국의 영토를 외국에 팔아넘긴 것이다.
한국이 처한 현실을 놓고 보면 오늘날과 같이 국가간 토지거래가 없어진 상황이 많이 아쉽다. 현재 세계 여러나라들이 인구밀도를 비교해 보면 그 편차가 너무 심하다. 한국의 인구밀도는 캐나다, 호주, 러시아 같은 나라들의 인구밀도에 비해 수십배에서 수백배 높다. 농사가 어려운 사막이나 추운 극지를 제외한다고 해도 인구밀도의 편차가 대단히 크다는 것이다.
일본의 학자들은 일본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나라를 침략한 동기는 일본 열도내에서는 증가한 일본의 인구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국가간 무역이 번창하면서 일본과한국 같이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들도 무역으로 번영을 구가하고 있어 생존을 위해 타국을 침략하는 행위는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이 여전히 자국의 영토에 대한 애착이나 욕심은 대단하다.
독도를 두고 한일간 자존심 싸움을 벌이는 상황이나 센카쿠 열도를 놓고 중국과 일본이 맞서고 있는 것처럼 현재 많은 나라들의 유사한 영토분쟁이 지속되고 있는데 대부분 전쟁까지 각오하면서 자국의 영토를 수호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영토분쟁은 국가간 토지거래가 거의 불문율로 금지된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치열해진 느낌인데 만약 국가간 토지거래가 성행하고 있다면 그렇게까지 치열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어떤 나라에서 자국의 영토 일부를 경매로 내놓겠다고 결정한다면 그 추정값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값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캐나다 같은 경우 영토의 1% 정도만 국제경매 시장에 내놓는다면 아마도 캐나다 국민들이 힘들게 일하지 않고도 몇 세대가 풍요를 구가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날 왜 국가간 토지거래가 거의 불문율처럼 금지됐을까?
현재 국토는 넓지만 국민들의 삶이 힘든 나라가 있는 반면, 국토는 좁지만 풍요를 구가하는 나라들이 있다. 그들 국가간에 토지거래를 한다면 그들 나라의 국민들의 삶이 좀 더 개선될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들에 사는 국민들은 개인과 개인 사이에 그런 경제할동이 일반화 돼 있는데 국가간 토지거래는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민주국가라면 국민투표로 영토의 일부를 사고 파는 결정을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아마도 이스라엘의 경우처럼 인간의 삶은 물질적 풍요 이상의 무언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느 나라든 권력 상층부는 풍요로운 삶을 구가하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국가간 토지거래에 수반되는 국제정치학적인 다양한 문제들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국가간에도 토지거래가 일반화 되어 한민족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길 바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지나친 욕심일까?
나는 한국이 태평양의 작은 무인도라도 한 개 사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싶다...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