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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끝에서 봄의 전령사 '동백'을 만나다

화이트보스 2013. 3. 7. 17:07

남도 끝에서 봄의 전령사 '동백'을 만나다

  • 조선닷컴 미디어취재팀
  • 입력 : 2013.03.06 15:45 | 수정 : 2013.03.06 18:33

    만물이 겨울잠에서 깬다는 경칩(驚蟄)이 지났다. 절기상으로 분명한 봄이나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기운이다. 이처럼 짧은 오후의 따스한 햇볕이 아쉽다면 오히려 봄을 마중 나가보는 것은 어떨까.

    벌써 남녘 끝은 완연한 봄이다. 봄의 전령사라 불리는 '동백'이 동장군의 기세를 꺾으며 힘찬 기지개를 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연휴를 맞아 봄을 만나기 위해 '동백의 섬'이라 불리는 경남 거제 '지심도'로 향했다.

    '동백의 섬'으로 불리는 지심도에는 겨울을 난 동백이 꽃망울을 터트리며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서울에서 거제로 가는 길은 마치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남쪽으로 향할수록 따스함을 전해줬기 때문이다. 푸른 들판과 파란 하늘, 차창으로 세어 들어오는 온기 가득한 햇살까지… 거제로 향하는 내도록 설렘은 더했다.

    점심쯤에 도착한 거제의 장승포항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였다. 오랜만의 황금연휴라 그런지 가족단위의 관광객이 주를 이뤘다. 지심도로 향하기 위해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 한 뒤 인적사항을 적었다. 이는 섬을 방문한 관광객 수를 세거나 사고 시 신상을 파악하기 위함이다.

    선착장에 길게 늘어진 줄은 지심도의 인기를 대신 말해줬다. 이곳은 매년 2월 중순부터 4월까지 '동백'이 피는 시기에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때문에 배 시간이 무의미하다. 허나 오후 3시 이전에 배를 타야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기존 출발시간보다 15분가량 늦게 배 위에 올랐다. 평소 보던 유람선보다 작은 크기다. 한번에 9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하니 그 크기가 짐작이 갈 것이다. 커다란 뱃고동 소리 대신 선장의 우렁찬 안내 방송이 배의 출발을 알렸다.

    지심도로 가기 위해서는 거제 장승포항에서 배를 타야한다.

    푸른 남해 바다를 가로지르는 배는 거제만의 아름다운 바다를 선보였다. 파도와 부딪히는 배 앞머리는 맥주거품 같은 하얀 포말을 만들었다. 따스한 햇볕을 쬐며 뱃머리에 앉아 있으니 시원한 맥주 한잔이 절로 생각났다.

    장승포를 떠난 지 약 20분 만에 섬에 도착했다. 섬에 발을 디디는 순간 '아, 봄이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선착장 뒤편으로 섬을 둘러 싼 동백나무가 빼곡했기 때문이다. 나무 사이에 핀 새빨간 동백 꽃잎은 관광객을 유혹하는 느낌이다.

    실제로 섬에서 자라는 나무 70%가 동백나무다. 오래 전부터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섬의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했다. 허나 동백나무는 단단해서 베기가 힘들었다.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동백나무만 남게 된 것이다.

    지심도에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동백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또한 이곳의 동백은 키가 크고 몸통이 굵다. 보통 동백은 늦게 자라는 탓에 몸통의 지름이 10cm가 되려면 40~50년이 걸린다고 한다. 허나 이곳에는 몸통의 지름이 20~30cm에 달하는 것이 수두룩하다. 주민들 사이에서 '나무 박사가 와도 여기 동백나무의 나이를 모른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섬은 어딜 가던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때문에 천천히 산책하듯 섬을 둘러보면 된다. 관람 순서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 선착장에서 해안절벽, 포진지, 일주도로, 동백터널, 해안전망대 순을 추천한다. 동선에 맞게 섬을 편안히 둘러볼 수 있는 코스이기 때문이다.

    선착장을 오르면 동백과 어우러진 민박집이 듬성듬성 자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을 지나면 해안절벽과 일주도로의 갈림길이 나온다. 어디로 갈지는 동박새 모형의 이정표를 보면 된다. 화살표가 따로 없다고 의아해 할 필요가 없다. 새의 부리가 방향을 가리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섬의 이정표는 '동박새' 모형으로 만들어져 있어 새 부리가 향하는 방향으로 이동하면 된다.

    해안절벽은 말 그대로 절벽이다. 투박하게 솟은 바위와 그 사이로 부딪히는 파도가 무섭기도 하지만 바다 위로 부서지는 햇살은 보석처럼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섬의 끝자락에 위치한 이곳은 '마끝'이라고도 불리며 KBS 주말 예능프로그램인 '1박 2일'에 방영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포진지'다. 섬 속에 포진지가 들어앉은 이유는 일제강점기 때 이곳에 일본 해군기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포진지 이외에도 탄약고와 깃대, 창고 등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는 흔적들이 섬 곳곳에 남아있다.

    섬 중앙의 벌판은 일제강점기 때 비행기 활주로로 이용됐다. 현재 일주도로라 불리는 이곳은 탁 트여있는 전망 탓에 섬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명소가 됐다. 바다를 배경으로 의자와 그네 등이 설치되어 있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①'마끝'이라 불리는 해안절벽의 전경. ②일주도로 위에 마련된 망원경으로 주변 자연경관을 관람할 수 있다. ③일제강점기 당시 사용하던 포진지.

    일주도로를 지나면 섬의 자랑 '동백터널'을 만날 수 있다. 터널 속으로 들어가면 하늘과 바다를 더 이상 볼 수 없다. 그만큼 동백나무는 빽빽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나 울창한지 한낮에도 햇볕이 잘 들지 않는다.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더위에 지친 몸을 시원하게 감싸준다.

    폭신한 카펫처럼 느껴지는 흙길 위로 떨어진 동백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늦추게 한다. 떨어진 동백꽃을 자세히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크기가 작다. 알고 보니 이곳의 동백은 토종 동백인 '홑동백'이다. 평소 접하는 외래종 '접동백'에 비해 꽃은 작지만 정열적이고 단단해 보이는 것이 홑동백의 특징이다.

    ①섬 곳곳에는 울창한 동백나무가 터널을 만들고 있다. ②이곳의 동백은 토종동백이라 불리는 '홑동백'으로 평소 보던 동백보다 크기가 작다. ③바닥에 떨어진 동백이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서서히 동백의 매력에 빠질 때 쯤 어느새 섬의 끝 ‘해안선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남해바다는 시리도록 푸른빛을 뽐냈다. 길의 끝에서 만난 바다는 관광객들에게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의 광활함을 선보였다.

    전망대까지 둘러본 뒤 발길을 돌려 다시 선착장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은 이미 지나온 길을 거치지 말고, 오른쪽 방향으로 내려오는 것이 좋다. 이곳 또한 울창한 동백 숲은 물론 곧게 뻗은 대숲, 일본군 장교의 사택이었던 카페 등을 만날 수 있다.

    일본군 장교의 사택이었던 카페는 동백나무와 바다가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광을 뽐낸다. 정원의 파라솔은 따스한 햇볕을 가리기에 좋고, 자리에 앉아 커피나 음료를 즐기면 일상생활에서 느끼지 못한 여유까지 느낄 수 있다. 배 시간이 넉넉하다면 이곳에서 잠시나마 여유를 즐기는 것도 좋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 장교의 사택으로 사용했던 건물은 현재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한 카페로 운영 중이다.

    '지심도'는 하늘에서 보면 섬의 형태가 마음 심(心)자를 닮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동백이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이맘때 섬을 둘러보면 마음속에 봄이 내려앉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반 성인 기준의 걸음으로 2시간이면 섬 전체를 편안히 둘러볼 수 있다.

    지심도만으로 봄을 느끼기 아쉽다면 통영의 '장사도'를 둘러보자. 섬의 모양이 뱀을 닮아 장사도라 불리는 이곳은 통영에서 뱃길로 약 40분 거리에 있다.

    이곳의 자랑은 무성한 난대림과 이른 봄 꽃피는 동백이다. 지금 이맘때는 동백꽃이 활짝 피어 섬 전체가 불타는 것과도 같은 장관을 연출한다. 섬 중앙광장 옆으로 동백터널을 지나면 불길 속에 뛰어드는 것과도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달팽이전망대에서 바라본 장사도의 전경.

    섬 곳곳에 마련된 전망대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그중에서도 승리전망대와 달팽이전망대가 인기다. 승리전망대에서는 비진도와 한산도, 죽도 등 한려수도의 비경을 관람할 수 있고, 달팽이전망대에서는 길게 뻗은 섬의 등줄기를 볼 수 있다. 주변으로는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와 바다를 배경으로 한 야외무대 등이 마련돼 있다.

    남들보다 조금 이른 봄을 맞이하고 싶다면 이처럼 남녘 끝으로 향해보자. 추운 겨울날을 이겨낸 봄의 전령사 '동백'이 화려함과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며 당신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