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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도로의 퇴장

화이트보스 2013. 3. 8. 12:07

고가도로의 퇴장

  • 김태익 논설위원
  • 입력 : 2013.03.08 03:07

    1968년 9월 19일자 조선일보는 '국내 처음 서울의 새 명소(名所)'라는 소제목을 달아 서울 아현 고가도로 개통 소식을 알리고 있다. 3억2000만원을 들여 중림동에서 아현동에 이르는 도로 위 공중에 942m짜리 4차선 자동차 길을 만들었다고 했다. 길이란 오로지 땅 표면에 있는 것으로만 알았던 사람들에겐 놀라운 사건이었다. 신문들은 아현고가 위에 헬기를 띄워 사진을 찍고 '내일을 딛는 거보(巨步)' '논스톱으로 달리는 자동차 행렬이 장관(壯觀)'이라고 썼다.

    ▶1967년 서울시에 등록된 자동차는 2만5000여대였다. 지금 서울 등록 차량이 296만대이니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다. 그런데도 김현옥 서울시장은 '불도저 시장'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66년 부임 후 4년 내내 도로를 내는 데 열중했다. 3·1고가, 서울역고가, 광화문·명동 지하도, 삼각지 입체 교차로, 사직터널, 남산1·2호터널들을 모두 이 무렵 짓고 뚫었다.

    ▶우뚝 솟은 3·1빌딩 앞에서 남산을 향해 날렵하게 휜 청계고가도로가 한국의 근대화를 상징하던 때가 있었다. 80년대 대한뉴스의 첫 장면이 고가도로 위로 아침 해가 붉게 떠오르는 풍경이었다. 그러나 서울이 만원(滿員)이 되고 자동차가 무섭게 불어나면서 고가도로는 더 이상 '논스톱'을 보장하지 못했다. 회색 시멘트 덩어리 고가도로가 주변 상권을 죽이고 도시 경관을 망친다는 지적도 많았다.

    ▶한때 주한 미군 당국이 장병에게 '위험하니 청계고가를 타지 말라'고 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적은 예산으로 한꺼번에 많은 도로를 만들다 보니 시멘트나 철근을 필요한 만큼 쓰지 못했을 수도 있다. 고가도로 중엔 설계 당시에 비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교통량이 늘어 구조적으로 차량 무게를 버티기 힘들어진 경우도 있다. 서울시가 지난해 안전 점검에서 D등급을 받은 서울역 앞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만리재로 통하는 일부 구간만 새로 짓기로 했다고 한다. 87년 6월 항쟁 때 서울역 광장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시위대와 취재진이 자주 올라갔던 곳이다.

    ▶얼마 전 서울시가 미아고가·문래고가를 비롯해 고가도로를 없앤 열한 곳을 조사했더니 아홉 곳이 철거 후 오히려 차량 흐름이 매끄러워진 것으로 나타났다. '속도'와 '효율'의 상징이었던 고가도로가 도시의 애물단지가 돼버린 것은 시대 변화가 낳은 역설이다. 우리 사회의 성장을 묵묵히 지켜보던 길들이 할 일을 다하고 하나 둘 사라져간다. 고가도로의 퇴장을 보는 마음 한구석이 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