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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인이 대신 읽은 청와대 비서실장의 '17초 사과'

화이트보스 2013. 4. 1. 14:19

대변인이 대신 읽은 청와대 비서실장의 '17초 사과'

입력 : 2013.03.31 23:07

청와대가 30일 새 정부의 인사(人事)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대(對)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날 김행 대변인이 대신 읽은 사과문에서 "새 정부 인사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인사위원장으로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인사 검증 체계를 강화해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다. 김 대변인이 총 63글자의 사과문을 읽는 데 걸린 시간은 17초였다. 박근혜 정부가 인사에서 무엇을 잘못했고, 왜 그런 일이 벌어졌으며, 앞으로 어떤 부분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출범 한 달 남짓한 박근혜 정부는 인사 문제로 휘청거리고 있다.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지금까지 중도 사퇴한 장·차관급만 6명에 이른다. 청와대 인사 검증팀이 조금만 충실하게 검증했더라면 충분히 거를 수 있는 문제들을 그냥 흘려 버리는 바람에 갓 출범한 정부가 가장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첫 한 달을 인사 논란으로 허비했다.

청와대가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은 새 정부의 잇따른 인사 실패를 보고 낙담하면서 나라 앞날을 걱정하는 국민 마음을 달래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 않겠다는 각오를 밝히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국민의 부아만 돋우고 마는 걸로 끝났다. 청와대 대국민 사과의 내용과 형식 모두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흩어져 있는 토요일 오전 시간대를 택해, 그것도 청와대 비서실장의 63글자짜리 사과문을 대변인이 17초간 대신 읽는 모습을 보고 '청와대가 정말 깊이 반성하고 있구나'라고 어느 국민이 느꼈겠는가. 이 정도로 민심을 되돌릴 수 있다고 봤다면 청와대 참모진의 그런 안일한 상황 인식이 더 큰 문제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이날 오후에 열린 고위 당·정·청(黨·政·靑) 워크숍에서 "국민이 인사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는데 청와대 참모들은 책임 회피나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청와대 수석이 '창조 경제론' 등 국정 기조를 강의하듯 설명하자 "지금이 그런 추상적인 이야기나 하고 있을 때냐"는 핀잔이 쏟아졌다 한다.

새 정부 인사 실책은 대통령이 자신의 개인 기록과 인연·경험에 의존해 사람을 고르고, 청와대 참모진은 대통령이 이미 결정을 해버린 인물이라서 이들에 대한 적극적 검증을 하지 않는 '선택의 실수'와 '검증의 부실'이 합쳐져 만들어진 복합 사고다. 따라서 후보군(群) 분류, 이들에 대한 검증, 후보자 압축 단계마다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는 일이 시급하다. 국민은 진심이 실리지 않은 몇 마디 사과보다 청와대 시스템의 근본적 변화를 원하고 있고, 그 중심에 대통령이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