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5.03 03:03 | 수정 : 2013.05.0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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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이동훈 기자

치신 여사는 시진핑의 생모(生母)이자, 작고한 시중쉰(習仲勛) 부총리의 두번째 부인입니다. 1926년생으로 지금도 생존해 있는데, 인민해방군 팔로군(八路軍) 여전사 출신으로 아들 시진핑과 남편인 시중쉰만큼 유명한 공산당 여성 원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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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영빈관 단독별장 경내 정원. 가운데 솟아있는 빌딩이 지왕빌딩이다./ 이동훈 기자
황태후가 사는 동궁을 찾아간 것은 올 2월입니다. 한달 전인 1월, <주간조선> 신년호 커버스토리를 준비하면서 산시성(陝西省) 푸핑(富平)의 시진핑 고향집을 찾아간 게 계기였습니다. 시진핑의 고향집과 대문을 이웃한 취(曲)씨 할머니는 기자에게 “치신이는 겨울에는 광둥성 선전(深圳)에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시진핑의 일가친척인 취씨는 시집온지 36년째 치신의 부탁으로 시진핑의 고모할머니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한 기자는 지난 2월 ‘황태후’의 겨울별궁에 직접 가보기 위해 광둥성 선전으로 가는 선전항공(深圳航空)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인터넷을 뒤지며 여러곳에 수소문한 끝에 치신 여사가 겨울에 머문다는 ‘란원(蘭園)’의 위치를 찾아냈습니다. 선전과 홍콩의 접경인 뤄후(羅湖)역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 떨어진 ‘동문 옛거리(東門老街)’에 있는 선전영빈관(深圳迎賓館) 경내이더군요.
시진핑 국가주석 생모가 머무는 선전의 ‘비밀 정원’
작년 12월 시진핑 직접 찾아와
선전영빈관은 동문 옛거리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5분 정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미 은퇴한 당간부와 가족들이 주로 요양하는 곳이라, 경계는 생각보다 삼엄하지 않았습니다. 영빈관 내 별장구역에는 겨울인데도 푸른 잔디가 깔려 있더군요. 아열대 야자수도 보였고, 한때 선전 시내에서 최고층이자 ‘선전속도(深圳速度)’의 상징이던 지상 69층짜리 띠왕빌딩(地王大厦)도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영빈관 별장구역 입구에서 서문(西門) 방향으로 5분 정도 더 걷자 ‘란원’이 나타났습니다. 나즈막한 쇠난간이 2층 별장을 둘러싸고 있었는데, 대문은 굳게 걸려 있었습니다. 별장 현관까지 차가 곧장 올라갈 수 있게 돼 있었는데, 현관 앞에는 중국 국기(國旗)인 오성홍기(五星紅旗)가 높이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2층 별장에 불과했지만, 정돈되고 절제된 모습에서 주위를 압도하는 힘이 느껴졌습니다. 그림 같은 영빈관 경내는 왁자지껄한 바깥 동문 옛거리와는 다른 ‘별천지’(別天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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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주석이 모친 치신 여사와 손을 잡고 산책하고 있다./ 출처=신화통신
치신 여사는 1990년부터 노인성 치매를 앓은 남편 시중쉰을 병수발하며 큰딸 치차오차오(齊橋橋)와 함께 ‘란원’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시진핑과 펑리위안 부부 역시 외동딸 시밍쩌(習明澤)를 데리고 이곳을 종종 찾았다고 합니다. 시진핑 일가의 가족사진 배경도 이곳입니다. 지난해 12월 관영 신화통신은 시진핑이 시중쉰의 휠체어를 밀며 산책을 돕는 사진을 공개했는데, 그것 역시 이 곳에서 찍은 게 유력합니다.
‘란원’의 내부 모습이 일부 공개된 적도 있습니다. 2009년 중국 건국 60주년을 맞아 쓰촨성 청두(成都)TV가 ‘개국 원훈의 부인’ 16명을 주인공으로 제작한 ‘충정(忠貞)’이란 대형 다큐멘터리를 통해서입니다. 치신 여사를 상·하 두편에 걸쳐 다룬 이 다큐멘터리는 푸젠(福建)성장으로 있던 아들 시진핑이 모친과 통화하는 장면을 공개했습니다.
당시 치신 여사는 ”아들 잘있지? 올해는 못내려 온다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빠, 엄마에게 가장 효심이야“라며 ”리위안(펑리위안)하고 샤오무즈(小木子·시밍쩌의 아명)와 춘절 잘 보내“라고 했습니다.
당시 아들 시진핑과의 통화장면 뒤로 비쳐진 별장 내부는 면적이 상당히 넓어 보였는데, 커다란 가죽소파가 놓여져 있었고 벽에는 대형 수묵화와 가족사진이 붙어 있었습니다. 중국 남부에서 재물과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귤나무도 놓여져 있었습니다. ‘치신 여사는 2002년 남편 시중쉰이 작고한 후에는 겨울철에만 이곳에 머문다고 합니다. 지금은 베이징 동청구 자오다오커우(交道口)에 있는 본가(本家)와 선전을 오가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선전은 치신 여사의 남편인 시중쉰이 계획입안한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로, 남편의 흔적과 땀방울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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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신 여사가 겨울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진 선전영빈관 내 2층 별장 '란원'./ 이동훈 기자
시진핑 一家 재산, 선전 일대만 4200억원대
일반 시민 거의 범접 못 해
당총서기에 오른 시진핑도 지난해 12월 첫 국내 순방지로 선전행을 택했습니다.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南巡)을 다분히 의식한 행보였는데, 당시 공식적으로 시진핑이 여장을 푼 곳은 선전시청 인근의 오주빈관(五洲賓館)이었습니다. 하지만 베이징 중남해(中南海) 소식에 정통한 둬웨이(多維) 등 일부 매체는 “시진핑이 선전영빈관을 찾아 어머니 치신을 만났다”고 보도했습니다.
치신과 시중쉰의 후광 덕에 시진핑의 일가친척 상당수는 선전에서 생활한다고 합니다. 시진핑과 동복(同腹)의 큰누나인 치차오차오도 남편 덩자구이(鄧家貴)와 함께 선전의 각종 관급공사를 많이 수주하며 선전에서 살고 있습니다. 베이징 중민신부동산개발 회장과 사장으로 있는 시진핑의 누나와 자형은 선전영빈관 인근 동문 옛거리 지하철 역세권를 선전지하철공사와 합작 개발했습니다. 동문 옛거리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상징인 선전에서 유일하게 옛 모습을 간직한 거리인데, 선전의 최대 번화가 중 하나입니다.
이 때문인지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지난해 7월 “시진핑 일가의 재산은 3억7600만달러(약 4200억원)”라고 폭로한 바 있습니다. 최근 중국에서 거론되는 ‘공직자 재산공개’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보는 중요 배경 중 하나도 시진핑 일가의 이런 막대한 재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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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영빈관 단독별장 구역의 별도 출입구./ 이동훈 기자
치신 여사의 겨울별장인 ‘란원’이 선전영빈관에서 가장 큰 별장은 아닙니다. 영빈관 내 별장은 모두 10동(棟)인데, 가장 큰 별장은 ‘도원(桃園)’으로 수영장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1992년 남순강화때 선전에 내려온 덩샤오핑은 일가족들과 함께 영빈관 내 ‘계원(桂園)’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장쩌민과 후진타오 전 주석을 비롯해 리펑, 주룽지, 원자바오 등 역대 총리들도 모두 이곳에 머물렀습니다. 최근에는 일반인들도 원칙적으로 10% 봉사료를 제외하고 2만6800위안(약 480만원)정도면 하룻밤 묵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라오바이싱(老百姓)으로 불리는 일반 시민들에게 하룻밤은 꿈도 꾸기 힘듭니다. 중국에서 임금수준이 가장 높다는 선전의 최저임금은 한달 1600위안(약 29만0원)이고, 연간 1인당 소득(세금 제외한 가지배수입 기준)은 4만 742위안(약 730만원)이니 하룻밤 자려면 반년치 급여를 고스란히 바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백성들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시크릿 가든(secret garden·秘密庭園)’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