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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최고 절경 '노고단 운해'에 넋을 잃다
연휴가 이어지는 데 아무 계획도 세워놓지 않은 목요일 저녁 퇴근길.
시청앞에서 탄 전철을 서울역에서 갈아타야 하는 데 그냥 지나쳐 용산역으로 향했다.
용산역에서 내려 구례행 열차 좌석이 있는지 물어보니 내일 아침까지 매진이란다.
"떠나? 말어!" 잠시 고민하다, 그냥 밤 10시 45분 발 여수행 입석표를 질렀다.
서둘러 집에 가 배낭을 대충 꾸려 다시 지하철로 용산역으로. 절정을 이루고 있을 바래봉 철쭉을 보기위해~.
시발 역에서 탔기에 객차 사이의 화장실 앞이자 출입구 옆 한켠 공간을 차지해 등산용 방석을 깔고 앉을 수 있었다.
근 4시간 반가량 타고 이동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입석'으로 구례까지 간다면 산에 오르기도 전에 먼저 탈진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출입문 옆에 몸을 기댈 공간을 확보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천안역까지도 내리는 사람보다 타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대부분은 남원이나 구례행 승객들로 배낭을 둘러맨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쪼그리고 앉아 가면서도, 두세시간씩 서서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들을 보니 그나마 위안이 됐다.
입석표로 구례행을 해야만 한다면, 시발역에서 승차해 객차 사이의 공간을 확보해 매트를 깔고 앉아가면 좌석표 부럽지 않다. 중요한 팁이다!
등 뒤는 물론 오른쪽 옆으로도 기댈 수 있어 입석표 가운데 가장 편안한 자리다.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면 비박용 매트를 길게 깔고 누울수도 있지만, 워낙 승객이 많아 누웠다간 얻어맞기 싶상이다. 옆 승강구에도 두명이나 앉아 갈 정도로 사람이 많다.
비몽사몽 간에 구례역 도착. 15분가량 연착해 3시 20분이 다 됐다.
수백명이 한꺼번에 내렸다. 5월의 지리산. 그것도 사흘 연휴이니, 지리 종주계획을 세운 사람이나 나처럼 바래봉 철쭉 보겠다는 사람이 총출동 한 모양이다.
구례역에서 하차한 승객들이(위) 개찰구를 향해 빠져가나는 모습.
10여년전 같은 열차를 타고 지리 종주에 나선 경험이 있다. 열차가 도착하면 얼마 안 있어 성삼재행 버스가 역에서 출발했고, 공용 터미널에서 승객을 내려준 뒤 20여분간 쉬었다 출발했던 것으로 기억돼 버스를 찾아보았지만 안 보였다.
일단 역 앞 식당에서 제첩 해장국을 한 그릇 때리고, 막걸리도 1통 챙겼다. 그러나 시간은 20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식당에서 나오니 그 많던 사람들이 거의 다 흩어졌다.
그때 "한분 모십니다! 한분 모셔요!" 외치는 택시기사 소리에 그냥 콜!
한참 우리나라에서 가장 난이도 높은 지방도를 구불구불 오르다가 갑자기 김밥을 챙기지 못한 게 생각났다. 원래 계획은 버스를 탄 뒤 터미널에서 잠시 쉴때 김밥을 살 생각이었는 데, 택시를 타는 바람에 김밥 살 곳이 없어졌다.
"성삼재 가면 휴게소에서 뭔가 팔겠지" 느긋하게 생각하고 그냥 고!
나중에 찾아보니 구례역에서 성삼재행 버스 출발 시각은 3시 50분이었다. 한 10여분 더 기다리면 버스가 왔을 텐데~. 그러면 공용터미널로 가 김밥도 사고~.
30여분 아슬아슬한 고개길을 타고 올라 드디어 성삼재에 도착하니 4시 10분. 이미 관광버스로 온 등산객, 자가용을 이용한 등산객들이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마지막 산행점검을 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관광버스만도 여러대, 계속 등산객을 쏟아내는 택시와 자가용. 새벽부터 수백명은 됨직하다.
헤드랜턴을 켜고 성삼재 국립공원 안내소를 통과하고 있는 등산객들.
칠흑같은 어둠 속에 찬 바람이 살을 에인다. 빗방울까지 후둑댄다. 서둘러 자켓과 우의까지 껴 입었지만, 바지로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느낌이다. "허 이거 큰일 났군."
게다가 휴계소 문도 굳게 잠겼다. "허 더 큰일 났군!"
챙겨온 '식량'을 챙겨보니, 물 1리터에 홍초 300cc, 사과 1개, 곳감 2개, 못찌떡 1개, 트리플 초코릿 한 줌, 막걸리 1통. 아무래도 탄수화물이 절대 부족하다. 구례에서 김밥을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늘 챙겨 넣었던 그러나 늘 먹지않고 남겨오던, 에너지 바나 스니커즈 같은 비상식량을 모두 빼놓고 왔다. 아무래도 찝찝하다. 그나마 아침은 챙겼으니 다행이라고 위로하며 지리산 서북능선 '들머리'를 찾았다.
지리산의 서북능선은 성삼재(1102m)~작은 고리봉(1248m)~묘봉치(1100m 이하)~만복대(1437m)~정령치(1172m)~큰 고리봉(1305)m)~세걸산(1222m)~세동치(1120m)~부운치(1115m)~팔랑치(1010m)~철쭉 군락지~바래봉(1167m)~덕두봉(1149m)~구인월 마을에 이르는 23km 가량을 말한다.
요즘 한창인 철쭉구경을 위해선 보통 정령치에서 고리봉을 거쳐 바래봉에 이르는 코스를 택하면 여유있게 철쭉산행을 즐길 수 있다.
성삼재에서 만복대로 빠지는 길은 성삼재에서 뱀사골 방향으로 100여m쯤 내려가면 왼편으로 이정표가 보인다.
4시20분쯤 산행을 시작할 때는 아직 해가 뜨지 않은 데다 울창한 나무 숲 속으로 난 길을 가야 했기 때문에, 칠흙같은 어둠을 헤쳐가야 했다.
후레쉬에 비친, 앞서 가는 등산객의 발. 헤드랜턴도 빼먹고 오직 작은 휴대용 후레쉬만 가져갔더니 간신히 앞서가는 사람 발 뒤금치만 비출수 있었다. 그나마 곧 날이 밝기 시작해 다행이었다.
능선길 저너머로 조금씩 시야가 밝아지기 시작한다. 능선길에 오르기전까지는 앞서 가는 사람의 헤드랜턴 불빛만 보일뿐이다. 게다가 바람까지 차 몸이 떨린다. 몸을 덮혀야 겠다. 좀 더 속도를 내자!
능선에 올라서자, 흰구름이 뭉게뭉게 피어 오른다. 그 유명한 노고단 운해다.
노고단 운해는 '지리산 10경'중 두번째로 꼽는 절경이다.
지리산 제1경은 천왕봉 일출이다.
저 멀리 천왕봉 너머로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노고단 운해위로 일출이 시작되고 있는 것.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노고단에서 바라보는 운해. 두 절경을 합해놓은 절경이니 가히 지리산의 최고절경이라 할만하다. 카메라가 후져 그 느낌을 제대로 잡아두지 못한 게 아쉽다. "아무래도 카메라 하나 다시 사야 하나?" 다시 고민해 본다.
지리산 서북 능선을 찾은 등산객들이 너도 나도 노고단 운해를 담기에 바쁘다.
노고단 운해는 달궁계곡 뱀사골 계곡 등의 습기가 구름이 되어 지리산 주능선과 서북능선 사이의 통로를 따라 이동하는 게 아닌가 상상해 본다.
저 아래 달궁계곡 등에서 시작한 구름이 하늘 아래 가장 깊은 마을 이라는 심원마을을 거쳐 성삼재 고개를 넘어 구례방향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모습.
구름 위 왼쪽 끝이 노고단이고, 성삼재 휴게소는 구름에 완전히 푹 빠졌다.
작은 고리봉에 오르니 노고단과 반야봉, 저멀리 천왕봉까지 시야가 확트인다. 이 맛에 산행을 한다.
고리봉을 오른 등산객들이 멀리 반야봉과 노고단, 운해를 보며 감탄하고 있다.
'고리봉'이란 팻말이 붙었지만, 정령치 바로 위쪽에 또 '고리봉'이 있어, 구별하기 위해 이 곳 고리봉을 '작은 고리봉'이라 부른다. '큰 고리봉'이 50여m 더 높다. 표지석도 아예 바꿔주는 게 더 좋아 보인다.
날이 밝으니 철쭉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성삼재에서 한시간여를 걸으니 널찍한 헬기장이 나온다. 묘봉치다. 이곳에서 진행방향 왼쪽으로 하산하면 '구례 산수유마을'로 널리 알려진 상위마을로 이어진다.
이곳부터 억새가 많이 눈에 띈다. 작은 고리봉에서 만복대에 이르는 3km여 구간은 드넓은 억새평원이다.
특히 만복대 주변은 억새가 장관이다.
저 뒤의 봉우리가 만복대?
묘봉치 이정표를 보니 이제 2km왔다.
3km가 넘게 남았으니 저 코 앞의 봉우리를 넘어야 만복대가 보일 모양이다.
묘봉치 앞 봉우리를 지난 뒤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니~.
성삼재에서 노고단을 거치는 지리산 주능선 초입과 성삼재에서 출발한 서북능선이 맞닿은 모습이 선명하다.
고리봉까지는 힘든 코스였지만, 이후 만복대까지는 오르막은 완만하고 등산로는 평탄하다.
지리산의 주능선과 그 아래 뱀사골, 와운골, 심원마을---등이, 어디쯤일까 짐작해 보고, 지리산 제2봉인 반야봉의 장엄함을 충분히 느끼면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와운골은 TV에서 '와운골 사람들'을 방영, 점봉산 '곰배령 사람들'처럼 유명해 졌다. 천년 된 당산소나무제가 열린다. 와운골에서 삼정능선으로 오르면, '지리산 구름위의 소나무 카페'를 만날 수 있다(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blogId=2682&menuId=10254&listType=2&from=&to=&curPage=3&logId=6588597).
지리 서북능선은 주능선을 탈 때는 좀처럼 보고 느끼지 못할 일망무제의 탁 트인 시야가 압권이다. 실상사 인근에서 시작하는 칠암자가 숨어 있는 삼정능선이 지리산에서 얼마나 큰 산줄기인지 산행 내내 느낄 수 있다.
가까이 다가갈때까지 지리산을 담기에 여념이 없는 한 사진가. 하늘 속에서 지리를 담는 것 같다.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도 뭔가 담기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다.
만복대 코 앞에서 파노라마로 지나온 길을 잡았다.
우뚝 솟은 봉우리가 반야봉. 서북능선과 지리주능선이 맞나는 곳이 성삼재. 그 바로 위가 노고단이다. 오른쪽 마을은 구례. 사진 상태로 구별이 가능할지 모르겟다.
드디어 만복대 입구.
만복대 정상. 만복대는 지리산의 모든 복(만복)을 다 담은 곳이라는 뜻이라고.
아마도 광활한 억새밭이 너무 넉넉해 보여 붙인 이름이 아닐까 싶다.
드넓은 억새평원임을 보여주는 만복대 정상 측면에서 잡은 만복대.
오늘의 첫 휴식처로 작정한 정령치를 향해~~.
시야가 훤해 마음이 탁 트인다. 1000m가 넘는 능선길이니, 마치 구름위를 걷는 듯하다.
만복대는 서북능선에선 가장 높다. 그래서 만복대를 내려서면서부터는 노고단 쪽 지리 주능선을 볼 수 없다. 대신 이때부터 천왕봉과 중봉, 삼정능선 등은 더욱 선명하게 손에 잡힐 듯 눈 앞에 펼쳐진다. 그러나 오래가지는 못한다.
등산로가 산을 내려 갈수록 좁아지고 억새밭도 사라지면서 나무 숲 사이로 난 좁은 등산로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시야가 가린다. 시야가 확터진 능선길 산행이 정령치 부근에서부터 상당기간 문을 닫는 것.
이후 잠시 쉴 래도 쉴 공간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등산로가 세동치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정령치 휴게소에서 용변도 해결하고 충분히 쉬고 산행을 다시 시작하는 게 좋다.
정령치를 그냥 '패스'했다면, '큰 고리봉'에서는 쉬어 주는 게 종주 산행을 위해 좋다.
정령치에서 만복대로 오르는 초입에 있는 산불 감시초소.
감시초소를 지나자마자, 정령치로 내려서는 나무계단이 나온다.
정령치 휴게소. 남원 고기리 방향에서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737번 지방도로의 휴게소다. 구례에서 성삼재를 거쳐 뱀사골쪽으로 빠지는 861번 지방도로와 연결된다. 언제 기회 있으면, 이 지방도로를 한번 드라이브 해보길 권한다.
이 깊은 산중에 어떻게 도로를 놓았을까 절로 고개숙여진다.
정령치 주변을 휘 둘러보니, 정령치는 기원전 84년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위해 정씨 성을 가진 장군으로 하여금 성을 쌓고 지키게 했다는 데서 지명이 유래됐다고.
정씨 성을 가진 장군이 고개를 지키도록 했다! 인근에 정씨 집성촌이라도 있나?
정령치 도착 시간 오전 8시 40분. 곳감 1개와 초코릿으로 에너지 보충. 아직은 힘이 넘쳐 주변에 있다는 보물 구경도 했다. '개령암지 마애석불'이란 보물 1123호. 왕복 600m를 돌아가 구경했다. 만복대에서도 근 40여분 동안 이곳저곳을 구경한다고 쏘다녔으니, 원래 산행계획보다 1시간여는 더 소요한 셈이다.
이 마애석불은 병풍처럼 생긴 바위에 새긴 불상인 데, 모두 12개라고도 하고 9개라고도 한다. 현재 확인 가능한 것은 서너개 정도. 고려시대 작품이라고.
정령치 휴게소는 굳게 문을 닫아 놓았다. 언제 문을 연다는 쪽지도 없다. 연휴가 이어져 일년에 한번 오는 대목인데, 이렇게 사람이 몰릴 때는 일찍 문을 여는 것도 괜찮을 텐데~~. 아마 개인이 운영하는 게 아니라 더 팔아봐야 더 이익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해서 공무원 시계에 맞춰 영업하는 모양이다. 유일한 좌판기도 먹통이다. 아무래도 종주를 위해서는 뭔가 에너지원을 더 보강해야 할텐데~~. 다소 불안하다.
어쩌랴! 빨리 산을 내려가 맛있는 걸 먹는 수밖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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