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8.18 13:31 | 수정 : 2013.08.18 14:09
미국경제잡지 《포브스(FORBES)》 선정 2010년, 2012년, 2013년 중국 본토 최고 부호로 홍콩 재벌 리카싱(李嘉誠·84), 인도 타타그룹 라탄(75) 회장에 뒤이은 아시아 3위의 부자가 있다. 보유주식 가치만 820억 위안(약15조원)으로 평가되는 항저우와하하그룹(杭州娃哈哈集團)의 동사장(董社長) 겸 총경리(總經理·한국의 회장)인 쭝칭허우(宗慶後·67)이다.
- 집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쭝 회장.
◇택시기사도 못 찾을 만큼 허름한 중국 최고 부자 본사 건물
항저우 구시가지 허름한 동네, 바로 코앞에는 오래된 고가도로가 시야를 가로막고 있는 곳의 낡은 6층짜리 건물이 수십조 원 기업 가치를 지닌 항저우와하하그룹의 본사였다. 마중 나온 대외연락판공실 부주임 산치닝(單啓寧)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섭씨 38~39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 에어컨 없는 복도는 찜통이다.
접견대기실에도 십 년은 된 듯한 중국산 에어컨이 덜덜거린다. 내놓은 음료수는 뜨뜻미지근한 와하하 물 한 병, 시중 판매가격으로 1~2위안(약 185~370원)짜리다. 장난기가 발동해 커피 한 잔을 부탁하자 독일산 다비도프(Davidoff) 상표의 인스턴트 커피를 병째 들고 와 동사장만 마시는 커피인데 괜찮겠냐고 묻는다. 절약이 부(富)의 기본이라고는 하지만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30분 정도 늦게 도착한다고 해서 쭝 회장 비서에게 몇개를 물었다. 전용비행기는 없는지 물었더니 “자동차도 10년을 넘게 타다가 올해 신형으로 바꿨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집은 번듯한 저택일 걸로 상상했는데, “부인이 와하하에 재직하는 동안엔 직원숙소용 아파트에 살았고, 4년 전 그녀가 퇴직하고서야 인근에 비슷한 규모의 일반 아파트를 구입해 이사했다”고 비서는 말했다.
그가 도착했다는 연락이 와 집무실로 들어갔다. 100m² 남짓의 공간이 조금 넓기는 하지만 책상과 낡은 천 소파 세트, 텔레비전 한 대, 회의용 테이블과 벽면을 채운 책장이 집기의 전부다. 별도 장식품이라고는 어항 하나가 고작이다.
◇“하루 담배 두어갑이 지출의 전부”
―어린 시절에 고생이 심했다고 하던데요.
“원래는 부유한 집안이었는데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항저우에서 중학교 졸업후 사오싱(紹興), 저우산(舟山)시 등지에서 농사와 염전 일을 15년 정도 했습니다. 문화대혁명에 따른 일종의 하방(下放)이었죠.”
―힘든 시간을 어떻게 견뎌냈습니까.
“유일한 위안이 책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닥치는 대로 읽었지요. 특히 역사책을 즐겨 읽었어요. 역사 이야기에는 많은 교훈이 들어 있으니까요.”
그는 31세에 항저우에서 광명전기회사의 영업직을 시작으로 여러 회사에서 일했다. 주로 영업직이었는데 삼륜차로 밤늦도록 물건을 배달하는 일까지 했다고 한다. 그는 “그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했다.
- 그러다가 42세이던 1987년, 와하하영양식품공장이라는 상호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어떤 각오였나요?
“항상 홍콩의 리카싱을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내가 사업을 한다면 반드시 항저우의 리카싱이 되겠다, 그가 20년에 이룬 걸 나는 15년 내에 이루겠다’하고 말입니다.”
―왜 하필 리카싱인가요.
“그가 중국인 최고의 부자니까요.”
―부, 즉 돈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일종의 가치죠. 인생에서 가치를 평가받는 데는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나로서는 부의 길밖에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루에 개인적인 지출은 얼마나 되나요.
“내 일상의 대부분이 회사 일을 보는 것이기에 공적인 것을 제외하면 하루에 담배 두어 갑 사는 게 내가 쓰는 돈 전부일 겁니다. 아내도 줄곧 회사에서 일을 했고, 딸도 지금 일을 하고 있으니 달리 돈을 쓸 곳은 없어요.”
인터뷰 중에도 연신 담배를 꺼내 무는 그는 거의 체인 스모커 수준이다. 애용하는 담배는 독일산 다비도프였다.
―담배가 건강에 지장을 줄 것 같은데요.
“하루에 두어 갑 넘게 피우는 때가 많지만 특별히 술을 즐기는 것도 아니고, 별 문제는 없어요.”
―건강을 챙기는 비결이 있나요.
“제때 식사하는 것 외에는 종합비타민을 잊지 않고 챙겨 먹는 정도지요.”
다시 그를 살펴보니 소매를 걷어 올려 반팔이 된 노타이 와이셔츠는 구깃구깃하고, 검은색 바지는 무릎이 튀어나왔다. 반백의 머리카락은 자른 그대로 푸석하고, 쉽게 열리지 않을 것 같은 굳게 다문 입술 외에는 그저 수수한 이웃의 아저씨다. 마주한 그의 앞에 놓인 것도 큼지막한 찻잔에 담긴 항저우 룽징(龍井)차와 재떨이, 그러고 보니 라이터도 1회용이다. 내친김에 하나 더 물어봤다.
그는 “특별히 아끼는 애장품이 없다”면서 “삶에서 그저 일하는 게 재미있다. 내 취미도 일이니 내게는 휴일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 대륙에서 판매되는 와하하.
그는 사업 시작후 와하하 브랜드를 만든 다음 국영기업으로 적자에 허덕이던 통조림 공장을 2000여 명의 종업원까지 안고 인수하는 결단을 내렸다. 그는 과즙우유를 개발해 공장 가동률을 끌어올렸고 3개월 만에 적자기업을 흑자로 바꾸는 경영 수완을 발휘했다.
1996년, 그는 다시 평범하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순정수 ‘와하하’의 출시였다. 순정수는 광천수도 아닌 말 그대로 정수한 물, 즉 깨끗한 물이다. 봉이 김선달 같은 발상이지만 깨끗한 물에 목말라했던 중국인들에게는 획기적인 상품이었다. 순정수 와하하는 지금도 중국 전역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애용하는 음료수이다.
―순정수 생산은 어떻게 생각했나요?
“개혁개방이 되며 무분별한 개발이 시작되었지요.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노후화한 수도관 등으로 마음 놓고 마실 물이 적어졌습니다. 물을 끓여 차를 마시는 전통이 있지만 도시화하고 생활이 바빠지면서 그마저도 수월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지니 사람들의 건강을 생각한 깨끗한 물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광천수는 비싼 데다가 성분에 따라 논란이 있기도 하고, 그래서 생각해 냈지요.”
와하하는 현재 중국 29개 성, 시, 자치구에 66개의 생산기지와 170여 개의 자회사를 두고 있다. 이들 자회사가 약 6000개에 이르는 1차 대리점에 상품을 공급한다. 1차 대리점의 상품은 다시 4만여 개의 2차 대리점을 통해 전국 100만 소매상으로 공급된다. 대리점으로부터 받은 보증금은 은행 금리보다 높은 이율로 계산해 제품 값 정산에 반영한다.
연말에는 수익금의 일부를 인센티브로 나눠 준다. 대리점으로서는 가장 많은 이익을 볼 수 있는 와하하 제품 영업에 우선 노력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니, 최고급 백화점에서 산골 오지 작은 구멍가게까지 와하하 전 제품이 퍼져 있다.
◇“골프도 하지 않고 일년의 3분의 2 이상을 일선 현장서 시간 보내”
―기업가로서 당신의 제일 목표는 무엇인가요?
“이윤 창출입니다. 기업이나 기업가에게 이윤 창출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죠.”
―와하하의 경영 이익은 어느 정도인가요?
“어림짐작으로 얘기하자면 순수이익이 연간 100억 위안은 되니 사흘에 1억 위안(약 185억원) 정도는 버는 것으로 생각하면 되겠지요.”
―이윤 창출을 위해 기업주이자 경영자인 당신은 어떤 일을 하나요.
“나는 매년 3분의 2 이상의 시간을 일선에서 보냅니다. 공장의 생산을 감독하고 영업을 독려하면서 말입니다. 그동안 여러 신공장 건설지 물색을 위해 돌아다닌 곳이 중국의 절반은 될 겁니다. 또 항상 신제품 구상에 몰두하고요.”
―경영철학이 있다면?
“신념과 고집입니다. 의지라고도 할 수 있지요. 이것이 회사와 소비자를 위해서, 나아가 중국 인민과 나라를 위해서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면 반드시 생산하고 성공하기 위해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그는 코카콜라와 펩시콜라가 중국을 장악하자 1998년 페이창(非常)이라는 상호로 토종 콜라를 출시했다. 물론 강점은 그의 넓은 유통망이다. 그렇지만 현재도 30% 대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며 두 외국계 제품을 견제하는 것은 콜라 시장을 온전히 외국계에 내주지 않겠다는 의지의 결실일 것이다.
와하하 순정수의 광고모델은 10년째 미국 국적의 타이완 가수 겸 배우 왕리훙(王力宏·37)으로 똑같다. 그는 “건강하고 밝은 이미지에 변함이 없으니 바꿀 이유가 없다”고 했다.
- 2012년 10월에 발간된 중국판 포브스 표지. 내륙 최고 부자로 선정된 쭝 회장의 얼굴이 보인다.
“일하는 자체가 운동인데 굳이 따로 운동을 찾아서 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주 가까운 친구는 있나요.
“깊은 관계의 지기(知己)도 없지만 나쁜 친구도 없는 정도입니다.”
- 따님의 현재 경영능력은 마음에 드나요.
“….”
쭝칭허우를 비롯한 그들 가족은 매스컴을 멀리하기로 유명하다. 4년 전 퇴직한 부인 스유전(施幼珍)은 얼굴을 드러낸 바가 거의 없고, 1982년생인 딸 쭝푸리(宗馥莉)는 현재 와하하 일부 계열사 사장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음료 및 식품 소재와 아동복, 화장품, 신제품 관련 사업 등을 관장하는데 경영수입인 셈이다. 그들 세 사람이 가진 와하하그룹 주식은 60%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라에 세금 다 내는데 별도의 기부는 필요도 없고 할 생각도 없어”
그의 딸 쭝푸리는 유일한 자녀로 후계자로 유력하다. 그녀는 2008년 자신의 이름을 딴 ‘푸리자선기금’을 설립해 빈곤한 대학생과 초등학생 등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모금된 기금의 규모는 96만 위안(약 1억8000만원)으로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중국 최고 부자이니 자선 요청도 많겠습니다.
“내 부는 투기를 하거나 부정의 개입 없이 음료수 한병 한병을 팔아 모은 돈입니다. 나라에서 내라는 세금도 다 냈습니다. 그런데 왜 별도의 기부를 또 해야 합니까. 나는 기본적으로 자선이나 기부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기업가는 기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최고의 사회적 환원이고 기부라는 생각입니다. 우리 회사의 임직원이 6만여 명입니다. 그 가족을 포함하면 20만명이 넘는 사람의 생계와 희망을 책임지는 것이죠. 그러니 기업의 성공적 운영보다 더 우선하는 가치는 없는 것이기에 저의 관심은 오직 회사의 안정과 지속, 그리고 성장입니다.”
―그룹 규모에 비해서 본사 사옥이 지나칠 정도로 검소한데.
“생산 공장은 모두 현대식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별 필요도 없이 커다란 사옥이나 짓는 건 하고 싶지 않습니다.”
―기업은 사람인데, 사람 경영은 어떻게 하나요.
“내가 휴일이 없으니 직원들도 고달플 겁니다. 그러나 나는 인정과 의리를 중시합니다. 우리 직원들 모두가 집과 자동차, 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니 각각이 직원이고 사장인 셈입니다. 저는 그렇게 중국 인민 모두가 잘 먹고 잘사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또 회사의 지속과 성장을 위해서 수시로 젊은 피를 수혈합니다.”
―거대 그룹인데 주식시장에 상장하지는 않았더군요.
“보유한 현금이 넉넉합니다. 외부자금을 끌어와야 할 필요가 없으니 상장할 이유가 없지요.”
뚜렷한 기업경영 철학과 가치를 갖고 탈법이나 특혜에는 관심조차 없는 쭝 회장은 스스로의 힘으로 넓은 대륙을 아우르는 철옹성 같은 유통망을 구축했다. 그는 이제 백화점, 복합쇼핑몰 등으로 더 큰 유통 제국을 건설할 계획이다. 세계적 유명 상품을 자신의 유통망을 통해 전국에 공급하는 신규 사업도 시작했다.
―사업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들려줄 충고가 있다면요.
“창의와 혁신, 인내심입니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세상이니 더욱 앞선 창의력이 필요합니다. 지속적인 혁신이 있어야 하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인내심입니다. 성공의 결과만 중시하고 과정을 소홀히 보면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