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문화/사회 , 경제

탈북자 단체, 이석기 '공개총살' 퍼포먼스

화이트보스 2013. 9. 9. 16:04

이석기 ‘최후의 만찬’ 현장취재
강제구인 직전까지 통진당은 ‘영웅놀이’
[제1113호] 2013년09월09일 09시23분
이전 목록 다음
[일요신문] 헌정 사상 최초로 현역 국회의원이 내란음모죄로 구속 수감된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에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통합진보당 측은 당 차원에서의 대대적인 대응을 예고하고 있지만 결국 정치권과 여론의 따가운 시각으로 당이 해산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팽배해 있다.

특히 통합진보당이 이석기 사태를 겪는 과정에서 보여준 상식 이하의 변명이나 대응에 대해 국민들은 상당히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헌정질서 자체를 부인하고 그들만의 영웅놀이에 빠진 나머지 여론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당’의 존립과 투쟁심만 있을 뿐 어디에도 상처 난 민심 보듬기에 나선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통합진보당의 일방주의적 행태는 이석기 의원이 연행되기 직전 당원들과 가진 저녁 자리를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이석기 의원은 연행되기 전 통합진보당 당원들의 저녁 자리에 나타났다. 식사는 하지 않았지만, ‘최후의 만찬’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그 자리에 기자도 동행해 그들의 ‘민낯’을 샅샅이 들여다보았다.

지난 4일 오후 4시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직후 국회 앞은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본회의장을 빠져나온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들은 국회 본청 앞 계단 위에 서서 취재진들과 통합진보당 당원 및 지지자들 앞에서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이석기 의원은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제가 내란음모죄랍니다. 아니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왜 내란음모를 합니까. 이 나라가 너무 좋아서 지리산 산자락만 봐도 가슴이 설레는데”라고 주장했다. 이석기 의원 옆에는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입을 굳게 다문 채 이석기 의원의 손을 잡고 있었다.

발언이 끝난 후 이석기 의원은 지지자들의 성원 아래 국회의원 회관으로 이동했다. 회관으로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이 의원은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하트를 그려 보이는 등 과장되게 연출한 쇼맨십을 시종일관 보여주었다. 그 순간 사람들 사이에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데 혼자 영웅놀이에 빠져 있는지”라며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이 의원의 모습이 사라지자 지지자들은 사방팔방 흩어졌다.

▲ 이석기 의원이 발언을 끝낸 후 당원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30여 분에 걸친 ‘행사’를 마친 이 의원은 당원들에게 손을 흔들며 식당을 빠져나갔다. 2시간쯤 후 이 의원은 전격 구인됐다.
오후 5시 30분쯤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다시 모인 곳은 새누리당 당사 지하에 위치한 한 음식점이었다. 기자는 음식점에 당원들과 함께 들어가 식사를 시작했다. 70명가량이 모인 이 자리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통합진보당 당원들과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 안동섭 사무총장, 김홍열 경기도당 위원장 등 주요 인사도 참석했다. 당원들 중에는 경기도당 관계자들이 가장 많았다. 이번 사건에서 경기도당이 핵심에 있음을 내포하는 셈이다. 김홍열 경기도당 위원장 역시 “경기도당이 공교롭게도 당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것 같아 유감이다”라고 전했다. 홍순석 경기도당 부위원장이 구속된 상황과 국정원 내부 조력자로 알려진 이 아무개 씨가 경기도당 소속으로 활동한 것에 대한 안타까운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일부 당원들은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저녁식사가 이어지고 30분 후 식당 내 분위기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석기 의원이 곧 식당에 도착한다는 소식이 전달됐기 때문이다. 이윽고 비서진을 대동한 이석기 의원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한 당원이 “미소천사 이석기 의원님이 입장하고 있습니다”라고 크게 소리쳤다. 식당 안에서는 박수가 쏟아졌다. 이석기를 연호하는 열기가 식당 내에 가득했다. 이석기 의원은 테이블 맨 앞에 서서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불과 몇 시간 전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통과돼 ‘범법자’로 추락하기 바로 전이었지만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 보였다.

“동지들!” 크게 한번 소리친 이석기 의원은 또다시 “목소리가 작습니다. 다시 한 번 동지들!”이라고 운을 뗐다. 당원들이 “네”라고 크게 화답하자 이석기 의원은 “우리는 절대 이 싸움에서 지지 않는다. 저들이 세게 나오는 것 같지만 사실 별 것 아니다”라고 자신만만하게 발언했다. 2시간 전 본회의장에서 지은 곤혹스러운 표정과는 달리 발언을 하는 이석기 의원의 표정은 상당히 상기되어 있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전국 곳곳에 퍼져 있는 당원들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또 RO 조직원 전국에 심어놨다고 그럴지 모른다”라며 농담을 던지는 여유를 보였다. ‘RO’가 언급되자 발언을 듣고 있던 몇몇 당원들 사이에서는 똑같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석기 의원은 이 자리에서 한때 논란이 됐던 ‘충성맹세 편지’도 언급했다. 체포동의안에 따르면 이석기 의원의 서울 마포구 도화동 오피스텔에서 ‘(당원들이) 이 의원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냈고 이중 57통을 확보했다’는 내용이 적시된 바 있다. 이석기 의원은 이에 대해 “당원들이 보내준 당선 축하 편지를 충성 편지라고 부르니 너무나 황당하다”라고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이석기 의원의 발언은 시종일관 여유로웠고 유쾌한 분위기를 자아내 체포동의안 통과는 딴 나라 얘기처럼 여겨졌다.

발언이 끝나고 이석기 의원은 당원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일부 당원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이석기 의원을 포옹하기도 했다. 통합진보당 로고가 새겨진 커다란 천에 사인을 받는 당원도 있었다. 30여 분 동안의 ‘행사’를 마치고 이석기 의원은 당원들에게 여유롭게 손을 흔들며 식당을 빠져나갔다. 이윽고 2시간쯤 후인 오후 8시경 이석기 의원은 국회의원 회관에서 국정원 직원들에 의해 전격 구인됐다. 식당에서의 당원들 만남이 이석기 의원으로서는 ‘최후의 만찬’이었던 셈이다.

한편 기자가 그 뒤에도 목격한 저녁식사 때의 통합진보당 내부 분위기는 침울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서로를 다독거리며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통합진보당 한 고위관계자는 “현 상황에 대한 불만은 없다. 다만 실증적 증거도 없이 내란음모죄를 씌우는 것을 보고 법치주의가 제대로 서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통합진보당 내부에서는 국정원이 내란음모의 유력한 증거로 내세운 녹취록을 증거로 보지 않는 시선들이 대부분이었다. 녹취록의 ‘유무’보다는 녹취록 자체에 ‘별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관계자는 “흔히 청계천만 가도 완전무장 가능하다고 우스갯소리로 얘기하지 않나. 이것도 그런 맥락이다. 말 그대로 농담이다. 내부 당원들은 다 웃는다”며 “우리끼리 있으면 더한 얘기를 할 때도 있다”라고 전했다.

지난 4일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총기탈취니 시설파괴는 농담처럼 말하거나 누군가 말해도 웃어넘겼다”는 입장과 당원들의 입장이 정확히 일치하는 셈이다. 한때 통합진보당 당원으로 활동했던 한 관계자는 “일각에서는 이정희 대표가 국정원에 대한 대응논리로 ‘농담’을 꺼내들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인식 자체가 그럴 가능성도 있다. NL(National Liberation) 계열 인사들이 흔히 하는 농담인데 뭐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정희 대표의 ‘농담’ 발언은 “어떻게 그런 무책임한 변명을 할 수 있나”라는 격앙된 여론과 마주해야 했다.

사실 통합진보당 내부에서는 이번 사태를 국가가 벌이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탄압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한 통합진보당 관계자는 “지난해 유시민 일당들이 분탕질을 쳐놓고 당이 쪼개질 당시에도 국가가 뒤에서 배후 조종하고 있다는 내부 여론이 있었다. 결국 민중정치를 표방하는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들을 다 죽이겠다는 속셈이다. 이번 탄압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는 시각들이 상당하다”라고 전했다.

▲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4일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이 의원 지지자들(왼쪽)과 표결을 마친 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손을 잡고 취재진 앞에 선 이 의원.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또 다른 통합진보당 당원은 저녁식사 후 기자와 가진 술자리에서 “기자가 앞에 있긴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제 기자를 믿지 못하겠다. 지난해 통합진보당 분열 사태 때도 그렇고 이번 사태에도 허위, 날조보도가 극에 달했다는 게 대부분 당원들의 생각이다. 한겨레, 경향도 믿지 못하고 유일하게 제대로 보도하는 곳은 민중의소리뿐”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통합진보당 다수의 관계자들은 기자의 접근에 상당히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방동 통합진보당 당사는 취재 불가 방침을 명확히 하는 한편, 수원에 위치한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당사는 “기자의 출입을 금합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여놓기도 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통합진보당 내부에 ‘기자 경계령’이 떨어졌다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통합진보당 안동섭 사무총장은 “앞으로 통합진보당의 두 가지 대응방안이 있다면 한 가지는 ‘법정투쟁’과 다른 하나는 ‘언론 환경 개선’이다. 언론 환경이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에 이 두 가지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국정원과 언론, 사방이 적으로 가득한 시점에서 오로지 믿을 사람은 ‘당’과 ‘당원’밖에 없다는 것이다.

통일전문가 NK지식인연대 김흥광 대표는 “당이 추구하는 가치 하나만을 보고 이것을 ‘믿으라’는 전략, 전술은 마치 북한 노동당을 연상케 한다”며 “언론이 보도하는 것을 허위 보도로 돌리고 여론의 비판이 팽배한 이석기 의원을 계속 두둔하고 발맞춰 간다면 결국 남는 것은 국민들의 외면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5일 오후 9시쯤 수원 남부경찰서에서 구치소로 연행되는 이석기 의원의 모습을 지켜 본 시민들의 시선은 분노에 가까웠다. 한 시민은 “세금 아깝게 저런 것을 왜 국회의원을 시키냐”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기자는 이석기 의원의 ‘최후의 만찬’에서 통합진보당 인사들과 밤새 술을 마시며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은 굳게 닫힌 그들만의 성벽이었다. “국민만 믿고 간다”던 이석기 의원의 발언은 공허했다. 그 뒤에 남은 건 한 돈키호테의 영웅놀이에 분노하는 국민들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글·사진=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이전 목록 다음
박정환 기자

탈북자 단체, 이석기 '공개총살' 퍼포먼스

  • 뉴스1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입력 : 2013.09.09 14:29

    
	탈북자 단체 회원들이 이석기 의원과 이정희 대표 사진을 향해 계란을 던지고 밀가루를 뿌리고 있다./뉴스1 © News1 박현우 기자
    탈북자 단체 회원들이 이석기 의원과 이정희 대표 사진을 향해 계란을 던지고 밀가루를 뿌리고 있다./뉴스1 © News1 박현우 기자
    탈북자들이 통합진보당사 앞에서 통진당의 즉시 해체를 촉구하며 이석기 의원과 이정희 통진당 대표의 '공개총살' 퍼포먼스를 벌였다.

    탈북자들로 이뤄진 사단법인 겨레얼통일연대와 북한인민해방전선 회원 100여명은 9일 오후 1시 서울 동작구 대방동 통합진보당 당사 앞에서 '통진당 해체와 종북 세력의 종식을 위한 탈북민 총궐기대회'를 가졌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북한을 추종해온 더러운 인간들이 파출소-무기저장고-주요 통신시설 파괴를 비롯한 국가전복음모까지 꾸며왔다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며 "그럼에도 변란과 음모를 '농담'으로 돌리고 있으며 북한 노동당 통일전략의 하수인으로 살아온 행적을 민주주의로 포장하며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 탈북자들은 이석기가 지껄인 '한 자루의 권총 사상'과 '이민위천' 따위의 숨은 뜻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그 일당이 애국가 대신 불렀다는 '적기가'가 얼마나 종북적이고 반역적인가를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면서 "독재와 민주주의를 체험한 우리 탈북자들은 더 이상 이석기 일당의 거짓선동을 간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또 이날 궐기대회 이후에도 ▲'종북세력 종식을 위한 탈북민 감시단' 활동 ▲종북 척결 1인 릴레이 시위 ▲북한인권사진전 ▲종북 반대 구호응모 및 구호선창 대회 등을 통진당이 해체될 때까지 통진당사 앞에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서 낭독 뒤 연사로 나선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통진당 지지율이 10%에서 0.8%로 떨어졌다고 한다"며 "천안함을 포격하고 연평도를 백주대낮에 공격한 김정은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역적집단은 당장 해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탈북자 출신 강철호 목사는 "우리는 목숨 걸고 대한민국으로 건너 왔는데 저들은 북한을 인정하고 북한으로 가겠다고 한다"며 "이석기와 이정희를 북한으로 보내야 한다. 우리가 들어가서 저들을 끌어내서 대한민국에서 추방시키자"고 주장했다.

    발언 뒤에는 이정희 대표와 이석기 의원을 '공개 총살' 한다며 '이석기역도 처단', '통진당 해체'라는 문구가 쓰인 이 의원과 이 대표 사진에 계란 등을 던지고 밀가루를 뿌렸다.

    진행자는 퍼포먼스 도중 "가지고 온 계란과 밀가루를 총·포탄이라고 생각하고 저들을 향해 던져 처형하라"고 했다.

    오후 2시부터는 이들을 비롯한 탈북민단체연합 회원 250명이 통진당 앞에서 통진당 해체를 촉구하는 탈북민 결의문을 낭독하고 '통진당과 통진당 대표에게 보내는 공개 성토문'을 통진당에 전달할 예정이다.

    이석기 ‘최후의 만찬’ 현장취재
    강제구인 직전까지 통진당은 ‘영웅놀이’
    [제1113호] 2013년09월09일 09시23분
    이전 목록 다음
    [일요신문] 헌정 사상 최초로 현역 국회의원이 내란음모죄로 구속 수감된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에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통합진보당 측은 당 차원에서의 대대적인 대응을 예고하고 있지만 결국 정치권과 여론의 따가운 시각으로 당이 해산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팽배해 있다.

    특히 통합진보당이 이석기 사태를 겪는 과정에서 보여준 상식 이하의 변명이나 대응에 대해 국민들은 상당히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헌정질서 자체를 부인하고 그들만의 영웅놀이에 빠진 나머지 여론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당’의 존립과 투쟁심만 있을 뿐 어디에도 상처 난 민심 보듬기에 나선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통합진보당의 일방주의적 행태는 이석기 의원이 연행되기 직전 당원들과 가진 저녁 자리를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이석기 의원은 연행되기 전 통합진보당 당원들의 저녁 자리에 나타났다. 식사는 하지 않았지만, ‘최후의 만찬’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그 자리에 기자도 동행해 그들의 ‘민낯’을 샅샅이 들여다보았다.

    지난 4일 오후 4시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직후 국회 앞은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본회의장을 빠져나온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들은 국회 본청 앞 계단 위에 서서 취재진들과 통합진보당 당원 및 지지자들 앞에서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이석기 의원은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제가 내란음모죄랍니다. 아니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왜 내란음모를 합니까. 이 나라가 너무 좋아서 지리산 산자락만 봐도 가슴이 설레는데”라고 주장했다. 이석기 의원 옆에는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입을 굳게 다문 채 이석기 의원의 손을 잡고 있었다.

    발언이 끝난 후 이석기 의원은 지지자들의 성원 아래 국회의원 회관으로 이동했다. 회관으로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이 의원은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하트를 그려 보이는 등 과장되게 연출한 쇼맨십을 시종일관 보여주었다. 그 순간 사람들 사이에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데 혼자 영웅놀이에 빠져 있는지”라며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이 의원의 모습이 사라지자 지지자들은 사방팔방 흩어졌다.

    ▲ 이석기 의원이 발언을 끝낸 후 당원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30여 분에 걸친 ‘행사’를 마친 이 의원은 당원들에게 손을 흔들며 식당을 빠져나갔다. 2시간쯤 후 이 의원은 전격 구인됐다.
    오후 5시 30분쯤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다시 모인 곳은 새누리당 당사 지하에 위치한 한 음식점이었다. 기자는 음식점에 당원들과 함께 들어가 식사를 시작했다. 70명가량이 모인 이 자리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통합진보당 당원들과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 안동섭 사무총장, 김홍열 경기도당 위원장 등 주요 인사도 참석했다. 당원들 중에는 경기도당 관계자들이 가장 많았다. 이번 사건에서 경기도당이 핵심에 있음을 내포하는 셈이다. 김홍열 경기도당 위원장 역시 “경기도당이 공교롭게도 당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것 같아 유감이다”라고 전했다. 홍순석 경기도당 부위원장이 구속된 상황과 국정원 내부 조력자로 알려진 이 아무개 씨가 경기도당 소속으로 활동한 것에 대한 안타까운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일부 당원들은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저녁식사가 이어지고 30분 후 식당 내 분위기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석기 의원이 곧 식당에 도착한다는 소식이 전달됐기 때문이다. 이윽고 비서진을 대동한 이석기 의원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한 당원이 “미소천사 이석기 의원님이 입장하고 있습니다”라고 크게 소리쳤다. 식당 안에서는 박수가 쏟아졌다. 이석기를 연호하는 열기가 식당 내에 가득했다. 이석기 의원은 테이블 맨 앞에 서서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불과 몇 시간 전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통과돼 ‘범법자’로 추락하기 바로 전이었지만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 보였다.

    “동지들!” 크게 한번 소리친 이석기 의원은 또다시 “목소리가 작습니다. 다시 한 번 동지들!”이라고 운을 뗐다. 당원들이 “네”라고 크게 화답하자 이석기 의원은 “우리는 절대 이 싸움에서 지지 않는다. 저들이 세게 나오는 것 같지만 사실 별 것 아니다”라고 자신만만하게 발언했다. 2시간 전 본회의장에서 지은 곤혹스러운 표정과는 달리 발언을 하는 이석기 의원의 표정은 상당히 상기되어 있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전국 곳곳에 퍼져 있는 당원들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또 RO 조직원 전국에 심어놨다고 그럴지 모른다”라며 농담을 던지는 여유를 보였다. ‘RO’가 언급되자 발언을 듣고 있던 몇몇 당원들 사이에서는 똑같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석기 의원은 이 자리에서 한때 논란이 됐던 ‘충성맹세 편지’도 언급했다. 체포동의안에 따르면 이석기 의원의 서울 마포구 도화동 오피스텔에서 ‘(당원들이) 이 의원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냈고 이중 57통을 확보했다’는 내용이 적시된 바 있다. 이석기 의원은 이에 대해 “당원들이 보내준 당선 축하 편지를 충성 편지라고 부르니 너무나 황당하다”라고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이석기 의원의 발언은 시종일관 여유로웠고 유쾌한 분위기를 자아내 체포동의안 통과는 딴 나라 얘기처럼 여겨졌다.

    발언이 끝나고 이석기 의원은 당원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일부 당원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이석기 의원을 포옹하기도 했다. 통합진보당 로고가 새겨진 커다란 천에 사인을 받는 당원도 있었다. 30여 분 동안의 ‘행사’를 마치고 이석기 의원은 당원들에게 여유롭게 손을 흔들며 식당을 빠져나갔다. 이윽고 2시간쯤 후인 오후 8시경 이석기 의원은 국회의원 회관에서 국정원 직원들에 의해 전격 구인됐다. 식당에서의 당원들 만남이 이석기 의원으로서는 ‘최후의 만찬’이었던 셈이다.

    한편 기자가 그 뒤에도 목격한 저녁식사 때의 통합진보당 내부 분위기는 침울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서로를 다독거리며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통합진보당 한 고위관계자는 “현 상황에 대한 불만은 없다. 다만 실증적 증거도 없이 내란음모죄를 씌우는 것을 보고 법치주의가 제대로 서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통합진보당 내부에서는 국정원이 내란음모의 유력한 증거로 내세운 녹취록을 증거로 보지 않는 시선들이 대부분이었다. 녹취록의 ‘유무’보다는 녹취록 자체에 ‘별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관계자는 “흔히 청계천만 가도 완전무장 가능하다고 우스갯소리로 얘기하지 않나. 이것도 그런 맥락이다. 말 그대로 농담이다. 내부 당원들은 다 웃는다”며 “우리끼리 있으면 더한 얘기를 할 때도 있다”라고 전했다.

    지난 4일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총기탈취니 시설파괴는 농담처럼 말하거나 누군가 말해도 웃어넘겼다”는 입장과 당원들의 입장이 정확히 일치하는 셈이다. 한때 통합진보당 당원으로 활동했던 한 관계자는 “일각에서는 이정희 대표가 국정원에 대한 대응논리로 ‘농담’을 꺼내들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인식 자체가 그럴 가능성도 있다. NL(National Liberation) 계열 인사들이 흔히 하는 농담인데 뭐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정희 대표의 ‘농담’ 발언은 “어떻게 그런 무책임한 변명을 할 수 있나”라는 격앙된 여론과 마주해야 했다.

    사실 통합진보당 내부에서는 이번 사태를 국가가 벌이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탄압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한 통합진보당 관계자는 “지난해 유시민 일당들이 분탕질을 쳐놓고 당이 쪼개질 당시에도 국가가 뒤에서 배후 조종하고 있다는 내부 여론이 있었다. 결국 민중정치를 표방하는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들을 다 죽이겠다는 속셈이다. 이번 탄압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는 시각들이 상당하다”라고 전했다.

    ▲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4일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이 의원 지지자들(왼쪽)과 표결을 마친 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손을 잡고 취재진 앞에 선 이 의원.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또 다른 통합진보당 당원은 저녁식사 후 기자와 가진 술자리에서 “기자가 앞에 있긴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제 기자를 믿지 못하겠다. 지난해 통합진보당 분열 사태 때도 그렇고 이번 사태에도 허위, 날조보도가 극에 달했다는 게 대부분 당원들의 생각이다. 한겨레, 경향도 믿지 못하고 유일하게 제대로 보도하는 곳은 민중의소리뿐”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통합진보당 다수의 관계자들은 기자의 접근에 상당히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방동 통합진보당 당사는 취재 불가 방침을 명확히 하는 한편, 수원에 위치한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당사는 “기자의 출입을 금합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여놓기도 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통합진보당 내부에 ‘기자 경계령’이 떨어졌다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통합진보당 안동섭 사무총장은 “앞으로 통합진보당의 두 가지 대응방안이 있다면 한 가지는 ‘법정투쟁’과 다른 하나는 ‘언론 환경 개선’이다. 언론 환경이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에 이 두 가지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국정원과 언론, 사방이 적으로 가득한 시점에서 오로지 믿을 사람은 ‘당’과 ‘당원’밖에 없다는 것이다.

    통일전문가 NK지식인연대 김흥광 대표는 “당이 추구하는 가치 하나만을 보고 이것을 ‘믿으라’는 전략, 전술은 마치 북한 노동당을 연상케 한다”며 “언론이 보도하는 것을 허위 보도로 돌리고 여론의 비판이 팽배한 이석기 의원을 계속 두둔하고 발맞춰 간다면 결국 남는 것은 국민들의 외면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5일 오후 9시쯤 수원 남부경찰서에서 구치소로 연행되는 이석기 의원의 모습을 지켜 본 시민들의 시선은 분노에 가까웠다. 한 시민은 “세금 아깝게 저런 것을 왜 국회의원을 시키냐”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기자는 이석기 의원의 ‘최후의 만찬’에서 통합진보당 인사들과 밤새 술을 마시며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은 굳게 닫힌 그들만의 성벽이었다. “국민만 믿고 간다”던 이석기 의원의 발언은 공허했다. 그 뒤에 남은 건 한 돈키호테의 영웅놀이에 분노하는 국민들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글·사진=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이전 목록 다음
    박정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