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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미팅 현장 가보니...

화이트보스 2013. 11. 7. 16:28

실버미팅 현장 가보니...

  • 김민희 기자
  • 입력 : 2013.11.07 15:34 | 수정 : 2013.11.07 15:49

    
	 지난 10월 25일 인천로얄호텔에서 60세 이상 어르신 60명이 참가한 가운데 합독(合獨) 행사가 열렸다.
    지난 10월 25일 인천로얄호텔에서 60세 이상 어르신 60명이 참가한 가운데 합독(合獨) 행사가 열렸다.
    ‘장미꽃이 곱다한들 그대만 하오리까 드넓은 바다도 그대만은 못하리 그대를 만나는 게 꿈이런가 하노라
    - 절실한 친구 □□□올림’

    무릎을 꿇은 남자의 고백에 여자는 고개를 수그리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깔끔한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는 미리 준비해온 장미꽃다발, 초콜릿 두 상자를 여자에게 바치면서 자작시를 읊었고, 단아한 니트 정장을 갖춰 입은 여자는 볼이 발그레해졌다. 여자는 “제가 용띠인데, 오늘이 진(辰)날입니다. 진은 용이지요. 합(合)이 든 날이라 예감이 좋았습니다. 너무 감동받았습니다. 행복합니다”라고 말했다. 여자의 목소리는 떨렸다.

    지난 10월 25일, 인천시(시장 송영길) 주최로 인천로얄호텔에서 열린 합독(合獨) 행사의 한 장면이다. ‘합독’은 정약용의 목민심서 ‘애민편’에 나오는 말로, ‘혼자 사는 노인들이 함께 지내면서 서로 의지할 수 있게 한다’는 뜻이다. 60세 이상 혼자 사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이 행사에는 남녀 각 30명씩 총 60명이 참여했고, 여덟 쌍이 탄생했다. 참가자의 평균 연령은 남성은 70.4세, 여성은 66.4세였으며, 최고령 남성 참가자는 85세, 최고령 여성 참가자는 73세였다. 겉으로 봐서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왁스를 머리에 잔뜩 묻혀 번개머리를 하고 온 남성, 큐빅이 다닥다닥 박힌 청바지를 입고 온 여성, 새하얀 재킷의 남성, 고데기로 머리를 부풀리고 온 여성 등 한껏 멋을 낸 참가자들이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을 안고 한자리에 모였다. ‘실버 미팅’에 ‘실버 헤어’는 거의 없었다.

    행사는 오전 11시에 시작해 오후 4시가 넘어서 끝났다. 커플 댄스, 커플 안마, 커플 게임을 비롯해 30명의 상대와 한 번씩 돌아가면서 대화를 할 수 있는 로테이션 대화 시간도 있었다. 인천시 황연심 주무관(노인정책과)은 “어르신들은 첫눈에 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이번 행사가 8회째인데, 시행착오를 거쳐 프로그램을 수정해왔다”고 말했다. 인천시의 합독행사를 통해 맺어진 커플은 총 104쌍. 그중 13~14쌍이 지속적인 만남을 이어오고 있으며, 두 커플은 동거 중이다. 그중 한 커플인 조정웅(71·남)·강정순(73·여) 커플은 올해 5월 합가(合家)했다. 두 사람은 이날 기자와 만나 “인천시의 공식 행사를 통해 맺어져서 자식들에게도 당당하다. 그렇지 않으면 다 늙어 바람났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성 참가자 김판석(가명·70)씨는 기자에게 “함께 운동할 여자친구가 필요해서 지원하게 됐다”며 첫눈에 반한 여성 참가자가 있어서 1지망만 썼다고 했다. “4년 전 아내를 잃고 혼자 살고 있다. 오후가 되면 외로움에 사무친다. 아침 먹고 3시간 반 동안 운동을 하고 나면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한때 경로당에 고스톱을 치러 다녔는데, 이젠 안 다닌다. 내가 어린 편이라 돈을 따면 당당하게 가지고 나오지 못한다. 어르신들이 눈치를 준다.” 그는 결국 커플이 성사됐고, 커플이 된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행사장을 나갔다.

    
	[주간조선] 고데하고 백구두 신고… 실버미팅 현장 가보니...
    ◇ 여성 지원자는 넘치는데 남성 지원자가 턱없이 모자라는 이유는...

    인천시의 합독행사는 한 지자체의 행사를 넘어 노인의 변화된 인식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날 행사 진행을 맡은 나상혁 NY커뮤니케이션 실장은 “어르신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미팅 사업만 9년째다. 듀오, 닥스, 가연 등 결혼정보업체의 일을 외주로 해 왔다. 과거에는 실버 미팅이 거의 없었지만 지자체 중심으로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과거에는 참가자가 적었는데, 지금은 대기자가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이 많다.” 인천시 황연심 주무관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선착순 접수인데, 100여명의 대기자가 밀려 있다. 참가자가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초고령화사회에 접어든 일본은 한국 고령자 시장의 바로미터다. 일본은 고령자 전문 미팅업체가 수십 개에 달한다. 창업 52주년을 맞은 결혼정보업체 ‘아카네카이’는 최근 ‘만남은 지금부터, 우리 60대’라는 큼직한 광고를 냈다. 예전에는 대상 연령이 30대에서 50대 후반이었지만, 지금은 35세부터 80세까지로 연령이 바뀌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결혼정보 시장 연령대의 지축이 변화하고 있다.

    한국엔 고령자를 집중 타깃으로 한 결혼정보업체는 아직 없다. 나상혁 실장은 “일반 결혼정보업체나 재혼전문 결혼정보업체에서 고령자 시장까지 취급한다. 결혼정보 시장의 5%가 재혼 시장이고, 이 중 일부가 고령자 시장인데 아직 시장 규모는 수치화하기 어렵다. 서서히 늘어나는 추세인 것만은 확실하다. 한국이 일본의 고령자 시장을 10년 차이로 따라가고 있는 상황을 볼 때, 머지않아 고령자 전문 미팅 시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고령자들의 삶의 태도가 적극적으로 바뀌면서 황혼이혼뿐 아니라 황혼결혼도 급증하고 있다. “인생 길다. 더 이상 못 참겠다”며 결단을 내리고 헤어지는 황혼이혼의 증가만큼이나, 새로운 만남을 통해 새 삶을 꾸리는 황혼커플도 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50세 이상 결혼건수가 1990년에는 7095건에 불과했으나 2012년에는 3만2763건으로 늘었다. 22년 만에 5배 가까이 늘어났다. 70세 이상 결혼건수는 1990년 454건에서 2012년 1404건으로 크게 늘었다. 2012년 한 해 동안 75세 이상 결혼도 729건에 달한다. 동거 중이지만 재산관계 등으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커플까지 산정하면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미있는 것은 합독행사에 지원한 성비가 비정상적으로 불균형이라는 점이다. 여성 지원자는 넘치지만 남성 지원자는 턱없이 모자란다. 황연심 주무관은 “할머니들의 사고방식이 더 열려 있고 참가하는 태도도 더 적극적”이라며 “할아버지들은 보수적이어서 이런 자리에 참가하는 것 자체를 꺼려 한다”고 말했다. 본인의 의지로 참가했다 해도 직접 신청서를 작성한 경우가 드물다. 자식이나 지인의 신청에 의해 미팅 행사에 참가하는 경우가 더 많다. 김복자(가명·65) 참가자는 “참가하고 싶었지만 내 손으로 신청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들이 신청해줘서 못 이기는 척 나왔다”고 말했다. 고령자 중개업소의 시장은 분명 있으나 사회적 인식이나 시선 때문에 자발적 참여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합독행사를 마치면서 한 남성 참가자가 행사장이 떠나갈 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매달 이런 행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즐겁습니다.”

    2012년 한국의 65세 고령자 인구 비율은 12%. 일본 못지않은 속도로 고령화사회가 돼 가면서 노인복지정책에 대한 고민이 깊다. “30대나 60대나 마음은 같다. 진정한 노인복지는 복지시설 등 외형적인 면보다 행복 증진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이 우선시돼야 한다. 홀로 되신 분들은 대부분 새로운 만남을 통해 삶의 활력소를 얻고 싶어한다. 양성화하지 않으면 불륜산악회나 불륜배드민턴회 같은 음성적 만남이 판을 친다. 어르신들의 건전한 만남의 장을 늘릴 필요가 있다”는 나상혁 실장의 말을 되새겨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