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민족사의 재발견

2014년은 한국문화 대탐사의 해

화이트보스 2014. 1. 5. 10:44

2014년은 한국문화 대탐사의 해

첨성대는 시간의 등대다. 그 등대 앞에서 분청사기의 거장 윤광조(69) 선생과 바이올린 영재 박지언(11) 어린이가 만났다. 두 예술인은 1400년 전 선덕여왕이 세운 첨성대 앞에서 나이 차를 잊고 평생 친구가 되기로 언약했다. 조용철 기자
“나는 문화다!”
역사적인 선언이다. ‘나’를 ‘문화’로 규정한 명제는 우리에게 낯설다. 그간 우리는 성과주의에 빠져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사이 소중한 문화가치들을 매몰시켜버렸다. 넘쳐나는 영상매체가 주는 재미에 빠진 나머지 혼자 책 보고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러면서도 문화강국, 문화시민이길 바란다.
2014년은 문화기본법의 시행으로 국민 모두에게 ‘문화권’이 부여된 문화원년이다. 바야흐로 문화와 예술의 시대다. 하지만 내적 성찰과 창조적인 작업 없이 문화와 예술은 꽃피지 않는다. 기본기 없는 융성은 없다. 읽기와 사색은 문화 창조의 출발점이다. 그를 통한 우리 문화 원형 탐사가 선행될 때 비로소 세계로의 울림을 겨냥해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중앙SUNDAY는 아산정책연구원·문화국가연구소와 함께 연중기획 한국문화 대탐사를 시작한다. 생활문화 현장을 한·중·일 3국을 중심으로 심층 탐구할 것이다. 그 첫 번째로 한국인의 시간 미학을 소개한다.

해 돋는 동쪽나라 사람들은 일찍부터 하늘을 섬겨 왔다. 경주 계림숲 너머 첨성대는 하늘을 관찰하고 섬겼던 이 땅 사람들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천문대는 시간의 등대다. 언뜻 도자기를 떠올리게 하는 고색창연한 원통형 천문대 위, 정(井)자형 장대석은 동서남북의 방위를 재는 틀이었으리라.

바람이 분다. 마른 금빛 잔디 벌에 겨울바람이 분다. 몸을 움츠리고 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바람이 잠깐 숨죽인 사이, 경쾌한 집시풍의 바이올린 음향이 울려퍼진다.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이다. 빠르고 긴박감 넘치는 선율! 불꽃 튀는 기교. 꼬마 연주자 박지언(11ㆍ서울 목동초 3)이 추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껏 재량을 뽐내자 햇살이 환하게 웃는다. 금빛 잔디밭이 샛노랗게 빛난다.

“저 끼, 저 강단과 절대음감! 너무 놀랍고 애틋해. 저 어린 것이 이 추운 겨울바람 속에서 당차게 연주하는 것 좀 봐. 저 끼가 바로 한국인의 예술혼이야.”

지언이를 처음 만난 분청사기의 거장 윤광조(69)는 감격한다. 1994년부터 경주시 안강읍 바람골에 터 잡고 사는 그는 시간의 강을 건너온 바람의 넋 같은 예인이다. 선객(禪客)의 풍모는 곧 그의 내면세계이기도 하다.

“한국에는 어언 200년 동안 분청이 사라졌다. 그것을 회생시킨 이가 바로 윤광조다.” 2011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도록의 기록이다. 도자기 왕국으로 자부하는 한국에서 국민 그릇으로 쓰이던 분청(粉靑)이 200년간이나 사라졌었다니.

2012년 삼성경제연구소 조사에 의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주요 20개국(G20)을 포함한 50개국 가운데 한국의 ‘현대문화 지수’는 9위, ‘전통문화 지수’는 29위였다. 자기 나라의 전통 가치와 문화유산에서 동력을 찾지 못하고 화려한 무지개만 좇는다고 문화강국이 되는 게 아니다.

그림 그리기에 앞서 깨끗한 바탕을 갖추라는 회사후소(繪事後素). 본질 연후에 꾸밈이 있다. 부실한 바탕에 화려한 꾸밈은 도리어 추태로 남기 쉽다. 숭례문 졸속 복원의 교훈이다.

유형, 무형의 전통문화 유산 속 한국인의 시간은 하늘의 별처럼, 혹은 자격루의 물처럼 느리게 순환한다. 그러다 근대화로 발 빠른 서구문화의 추격자가 되면서부터 ‘빨리빨리’ 해치워버리는 속도경쟁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압축성장은 했지만 행복지수는 OECD의 바닥권이다.

분청사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직수굿이 시간에 순응할 줄 알아야 한다고 거장은 말한다. 흙판으로 그릇 모양을 만들고 한 달가량 비닐 장막을 친 그늘에 둔다. 때로는 석 달을 말렸다 글자를 새기기도 한다. 그렇지만 표면처리는 순간적으로 이뤄진다. 개칠(改漆)이 안 되기 때문에 물찬 제비 같은 순발력이 있어야 한다. 긴 기다림과 재빠른 솜씨가 조화를 이룰 때 명작이 나온다. 기다림과 재빠름의 조화, 과거와 현대의 조화. 이 시리즈가 추구하는 목표다.

김종록 문화전문객원기자·작가 kimkisan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