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1.12 12:44 | 수정 : 2014.01.12 13:41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한국의 한 무역회사는 소련 붕괴 직후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대형함정들을 무더기로 도입했다. 항모 민스크(Minsk)와 노보로시스크(Novorossiysk) 2척을 포함해 총 259척의 함정을 도입, 이 가운데 34척을 국내로 들여와 해체했다. 한국 해군의 전력이 170여 척(2012년 국방백서)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 해군 전력을 능가하는 러시아 함정들이 이 시기에 쏟아져 들어왔던 것이다.
지난해 12월 12일, 현재 우리민족교류협회 총재로 활동하고 있는 권영해(權寧海·76) 전 안기부장을 서울 라마다르네상스호텔에서 만났다. 권 전 안기부장은 김영삼(金泳三) 정부 당시 국방부장관과 국가안전기획부장을 지내면서 러시아 항모 도입과 해체 과정을 지켜본 ‘증인’이다. 권 전 안기부장이 러시아 항모와 관련해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중국은 우리와 같은 시기에 우크라이나로부터 항모(바랴크호)를 도입해 개조를 통해 랴오닝함으로 탄생시켰으나, 우리는 환경단체들의 집요한 반대로 항모 2척 가운데 한 척을 중국으로 팔아넘겼다”며 “대한민국은 소련 붕괴 후 굴러들어온 ‘러시아 보물’을 놓쳤다”며 안타까워했다.
-언제 러시아 항모 2척을 구입한다는 보고를 보고받았습니까.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그해 여름에 해군 관계자들로부터 처음 보고를 받았습니다. (무역업체) 영유통의 대표가 러시아 항모를 고철로 수입할 수 있다고 했고, 나는 ‘원칙적으로 좋다’고 했어요. 소련이 해체되면서 각종 군사 장비를 해외에 판매하니 러시아제 무기를 들여오면 고철로도 활용할 수 있고, 그대로 군사용으로 전환하는 것은 어렵더라도 군사정보 측면에서 대단히 유익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고철 값으로 사들인 러시아 항모
1991년 소비에트 연방 해체 후 경제 사정이 극도로 나빠지자 러시아는 연간 1억5000만 달러에 달하는 유지비를 댈 수 없다는 이유로 함정 매각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무역회사 영유통은 러시아로부터 키예프(Kiev)급 항공모함 민스크와 노보로시스크 매입에 나서게 된다.
민스크호는 함령 15년, 노보로시스크호는 11년으로 통상 배의 수명을 30년이라고 할 때 비교적 ‘신형’에 속하는 배였다. 1994년 1월 그라모프 해군사령관은 민스크 등 함정수출 계획을 발표했고, 그해 10월 6일 영유통은 해군 퇴역 장성들로 구성된 러시아 콤파스사(社)와 항공모함 2척 구매계약을 체결했다.
권 전 안기부장은 “영유통은 국회 외무통일위 소속 의원을 통해 러시아의 하원인 ‘국가 두마(State Duma)’의 의원들을 소개받았고, 이들로부터 퇴역 장성들이 설립한 콤파스사를 알게 됐다고 들었다”며 “러시아가 6·25전쟁에서 간접적으로 싸웠던 한국에 군사 장비를 판 것은 순전히 영유통의 수완”이라고 했다. 이 계약에는 세계 33개 업체가 참가해 치열한 매수경쟁을 벌였다고 한다.
당시 영유통이 인수한 민스크호의 가격은 460만 달러(당시 환율로 한화 약 37억원), 노보로시스크호는 430만 달러(약 34억원) 등 총 71억원이었다고 한다. 국산 K2(흑표) 전차 1대 가격이 50억원을 넘는 것을 감안할 때 항공모함 1척이 전차 1대 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껌값’에 팔린 것이다. 러시아가 이 항모의 주요 무기와 전자 장비 등을 제거하고 t당 170달러의 고철가격으로 팔았기 때문이다.
키예프급 항공모함은 배수량 3만8000톤급으로 만재배수량은 4만5500톤이다. 길이는 274미터, 비행갑판은 195미터다. 전폭은 32.6미터, 속력은 32노트로 순항하며 승조원은 1200여 명이 탑승한다. 전통적인 평갑판 항모나 경항모와는 달리 순양함의 좌현을 확대해 YAK-38과 헬기를 운용한다. 무장으로는 YAK-41M 수직이착륙기 14대를 탑재하고, YAK-38 공격기 8대, Ka-17 헬기 16대 등 38대를 운용한다.
일 언론의 방해 공작
1994년 11월 러시아 국방부는 항모 2척의 한국 판매를 승인했다. 탑재한 각종 무기와 통신 장비는 한국에 인도하기 전에 제거하고, 군사목적으로의 전용을 막기 위해 러시아 측 검사관 2명을 파견해 해체 진행상황을 감시하고, 해체 후에는 해체증명서를 러시아 측에 전달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러시아가 한국 판매를 승인하자, 이때부터 《도쿄신문》과 NHK 등 일본의 언론 플레이가 시작됐다. 《도쿄신문》은 1994년 11월 한·러 양국에서 두 회사 간의 계약 체결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 이 사실을 보도했다. 일본 공영 방송인 NHK도 민스크호의 내부를 샅샅이 촬영해 방영한 프로그램을 방영해 고철덩어리라고 알려진 것과 달리 민스크호의 주요 장비가 건재하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전했다. 권 전 안기부장은 “일본은 언론과 정부기관이 국익을 위해 한 덩어리가 돼 엄청난 정보량과 질 높은 정보를 수집한다”며 “한국의 정보기관은 한국 언론이 국익을 등한시하고 후벼 파 공개해 버리는 바람에 언론에 대해 비밀을 지키는 게 수집 이상으로 힘이 든다”고 말했다.
1995년 3월 소스코베츠 러시아 제1 부총리가 연방보안국, 세관국에 폐항모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면서 한국의 러시아 항모 도입계획에 마찰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태평양함대 군사방첩국과 극동세관국이 조사에 착수했다. 극동세관국은 “민스크호와 노보로시스크호는 중앙지휘센터 장비와 레이더(R/D), 방공정보시스템, 미사일발사대와 지휘시스템, 표적탐지시스템 등이 방치돼 있었다”며 “영유통에 앞서 구입을 시도했던 중국에 전매될 가능성도 있어 아태 지역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고 조사결과를 보고했다.
러시아 정부는 민스크와 노보로시스크의 해당 설비들을 수류탄으로 폭파하거나 제거했다. 김영삼 정부와 국방부는 개인 무역회사의 거래여서 러시아의 항모 파괴를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 결과, 1995년 11월 우리나라에 인도된 민스크와 노보로시스크는 고철덩어리에 가까웠다고 한다. 첨탑의 레이더를 비롯한 통신 시설, 지휘 및 통제 시스템 등이 파괴됐고, 활주로도 상당부분 훼손됐던 것이다.
2척 중 1척은 중국에 매각
1995년 10월 영유통은 소비에츠카 가반 항구에서 러시아 태평양함대 전용 예인선으로 닷새 만에 두 척을 한국으로 예인해 왔다. 항모 2척 도입으로 한국은 무엇을 얻었을까. 권영해 전 부장은 “항모 전투기의 기체(機體) 발진, 착륙제어, 갑판 내열처리 등은 항모 건조의 핵심기술”이라며 “아무리 폐선박이라 해도 중요한 내외부 구조 연구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고 했다.
-러시아 무기체계 기술 가운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잠수함, 항공모함 기술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적외선 장비, 전차의 반응장갑(대전차로켓탄과 함께 폭발해 파괴력을 상쇄시킴) 등 지상 장비 계열이었고요. 불철주야 노력하는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연구원들에게 해외 기술을 공급해 주는 것은 학생에게 ‘과외 선생’을 붙여주는 것과 같아요. 기술 발전의 질과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집니다.”
영유통은 노보로시스크호는 해체했지만, 민스크호는 포항 지역 주민 반발로 해체에 실패했다. 1997년 외환위기까지 닥치면서 결국 1998년 8월 중국에 “고철로만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매각했다. 중국에 팔린 민스크호는 이후 중국 광저우에서 16개월 동안 내부수리 및 개조작업을 거쳐 3만m2의 공간을 자랑하는 관광 테마파크로 다시 태어났다. 권 전 부장은 “한국은 굴러들어온 러시아의 소중한 전략적 자산들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못한 채 중국으로 넘긴 것”이라며 “이것이 대한민국이 최초로 소유권을 가졌던 항공모함의 운명”이라고 했다.
-현재 우리 해군도 동북아 지역의 군사력 증강에 대응하기 위해 항공모함 보유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러시아에서 팔려온 항모들을 잘 활용했다면, 중국과 비슷한 시기에 항모를 보유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항모를 보유한다는 것은 기술적인 문제보다 군사력 건설에 재원을 얼마만큼 배정할 수 있느냐 하는 국방비 능력의 문제입니다. 항공모함도 통일에 대비해 보유를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지금 시급한 것은 ‘불침항모’인 제주해군기지를 서둘러 건설해 주변국 위협까지 대비하는 것입니다. 민스크와 노보로시스크 경쟁입찰에서 탈락한 중국 지도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크라이나가 건조 중이던 키예프급 후속형인 쿠즈네초프(Kuznetsov·소련 해군의 아버지)급 항모를 도입했습니다. 우리도 대북 억제와 해양 분쟁을 대비하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위상에 걸맞은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항공 관련 인력을 꾸준히 양성하는 등 사전 준비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