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버트 게이츠 전 미국 국방장관이 쓴 회고록 『임무(Duty)』의 한 대목이다. 14일(현지시간) 판매를 시작한 618쪽 분량의 이 회고록에는 군데군데 한국 관련 대목이 나온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인 2006년 12월부터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뒤인 2011년 6월까지 4년6개월간 국방장관직을 지킨 게이츠 전 장관은 노무현·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까지 회고록에 실었다.
◆전직 대통령 상반된 평가=게이츠 전 장관은 2010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 당시를 회상하며 “나는 정말로 이(명박) 대통령을 좋아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정신력이 강했고, 현실적이며, 매우 친미적이었다”고 평했다. 천안함 사건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당시 이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북한은 결과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걸 중국 총리에게 경고했다”고 말한 사실도 적었다.
반면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선 이 전 대통령과 모든 면에서 대조적이었다고 했다. 특히 “2007년 11월 서울에서 노 전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는데 확고한 반미주의자였으며, 약간 이상했다(a little crazy)”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아시아의 최대 안보 위협은 미국과 일본이라고 말했다”고도 했다. 2007년 11월은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과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한 지 한 달 뒤다.
◆“중국과 북한 급변사태 논의 원해”=게이츠 전 장관은 2009년 10월 워싱턴에서 쉬차이허우(徐才厚) 중국 중앙군사위 부주석을 만나 북한의 불안정한 상황과 정권이 붕괴했을 때 중국과 한국에 미칠 위험에 대해 자세하게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 급변사태가 일어날 경우 북한의 핵무기와 핵 관련 물질을 미국과 중국이 어떻게 할지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쉬 부주석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북한에 대한 당신의 의견에 감사한다’가 전부였다”고 토로했다. 게이츠 전 장관은 2011년 1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당시 부주석을 만나 북한 문제를 논의했다고도 밝혔다. 북한의 농축우라늄 개발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 등으로 지역 내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미국은 물론 중국에도 우려가 될 수 있다고 하자 시 부주석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안정이 모두의 이익”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고집=2009년 3월 발생한 북한의 미국인 여기자 2명 억류사건도 회고록에 포함됐다. 당시 북한 측은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 와야만 두 여기자를 풀어줄 수 있다고 연락해 왔다고 한다. 논의 끝에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지미 카터 전 대통령에게 방북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카터 전 대통령은 “미·북 관계 전반에 대해 논의할 수 있게 해달라”고 주장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우선 여기자 2명의 석방이 보장돼야 한다고 했으나 카터 전 대통령은 “조건을 걸어선 안 된다”며 “그들(북한)도 주권국가”라고 되받아쳤다고 한다. 당시 자신은 전직 대통령의 방북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평양에 가게 됐으며, 여기자 2명을 무사히 데려올 수 있었다고 한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