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파가 아니라 올빼미파다"
지난 2007년11월28일 오후 북한 평양 송전각 초대소의 1호각(귀빈각)에서 갑자기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시 제2차 남북 국방장관 회담을 위해 평양에 왔던 김장수 국방장관의 피아노 연주 소리였다.
김 장관은 전날 시작된 회담에서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 진전이 없자 답답한 마음에 피아노 건반을 두들겼다는 것. 김 장관이 연주했던 노래는 김수희의 ‘애모’였다. 김 장관은 몇 년 뒤 일부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이에 대해 “당시 참 가슴이 답답해서 피아노를 쳤는데 언뜻 떠오른 곡이 '애모'였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나니 마음이 참 야릇했다”고 말했다.
2007년 평양 송전각서 울려퍼진 김장수 장관의 피아노 소리
당시 국방장관 회담은 서해 NLL(북방한계선) 문제로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등 북한 측은 김장관 장관이 “북측이 NLL을 인정하지 않으면 협상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자 김 장관에게 “NLL을 고집하는 것은 북남 수뇌회담(정상회담)의 정신과 결과를 모르고 하는 얘기”라며 여러 형태로 압박했다. 나중엔 “노 대통령에게 전화해보라”는 얘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나는 대통령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고 왔다”며 버텼다. 그러고는 협상에 진척이 없다고 판단, 짐을 싸 서울로 돌아갈 준비까지 했다고 한다.
김 장관은 전날 시작된 회담에서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 진전이 없자 답답한 마음에 피아노 건반을 두들겼다는 것. 김 장관이 연주했던 노래는 김수희의 ‘애모’였다. 김 장관은 몇 년 뒤 일부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이에 대해 “당시 참 가슴이 답답해서 피아노를 쳤는데 언뜻 떠오른 곡이 '애모'였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나니 마음이 참 야릇했다”고 말했다.
2007년 평양 송전각서 울려퍼진 김장수 장관의 피아노 소리
당시 국방장관 회담은 서해 NLL(북방한계선) 문제로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등 북한 측은 김장관 장관이 “북측이 NLL을 인정하지 않으면 협상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자 김 장관에게 “NLL을 고집하는 것은 북남 수뇌회담(정상회담)의 정신과 결과를 모르고 하는 얘기”라며 여러 형태로 압박했다. 나중엔 “노 대통령에게 전화해보라”는 얘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나는 대통령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고 왔다”며 버텼다. 그러고는 협상에 진척이 없다고 판단, 짐을 싸 서울로 돌아갈 준비까지 했다고 한다.
- 지난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할 때 허리를 숙이지 않아‘꼿꼿장수’란 별명이 붙은 김장수 장관. 그는“평양에서‘꼿꼿한 인사’를 가지고 결례라고 하기에‘나 원래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말했다./이명원 기자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은 국방장관 회담 기조연설 때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께 결례한 장본인이 국방장관회담의 남한 대표로 왔다”고 한마디 했고 이에 기분이 나빠진 김 장관이 “내가 뭘 결례했는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김일철은 이에 대해 “우리 국방위원회가 남조선 국방장관이 국방위원장께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항의전화를 많이 받았다. 왜 그랬느냐”고 물었다. 김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께서 군사분계선(MDL)을 걸어서 넘었을 때 영접 나온 북측 대표도 고개를 숙이지 않더라”고 했다. 북측은 다시 “그래서 그랬느냐”고 물었고 김 장관은 “나는 원래 그렇다”고 응수했다고 한다.
꼿꼿장수보다 NLL 지킨 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
김 실장은 사석에서 “‘꼿꼿장수’로 알려진 것보다 남북 국방장관 회담 때 NLL을 지킨 것을 가장 보람있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국방장관 발탁 때도 파격적이었다. 2006년11월 개각 때 육군참모총장에서 바로 국방장관으로 임명됐기 때문이다. 보통 국방장관은 합참의장 등을 거친 예비역 대장들이 임명돼왔고 현역 육군참모총장이 국방장관으로 직행한 것은 거의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 김장수
김 실장이 노무현 정부의 국방장관에 그치지 않고 이명박 정부에선 여당 비례대표 의원, 그리고 현 박근혜 정부에선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란 요직을 차지하며 3대 정권에 걸쳐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도 주목을 받고 있다. 군 출신이 3대 정권에 걸쳐 군과 정치권, 청와대의 요직을 맡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나는 매파가 아니라 올빼미파다”
이에 대해 그는 “내 입으로 얘기하긴 뭐하지만 진정성과 도덕성 때문이 아닐까. 나는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했다. 도덕적으로도 흠 잡힐 일 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방장관을 마칠 때가지 집 없이 전세를 살았고 현 정부에서는 집에 자주 들어가지 않고 청와대 인근 숙소에 상황대기를 하고 있다. 지난해 정권 출범 초기 북한의 도발위협으로 퇴근을 못하다 90일만에 집으로 퇴근하면서도 국가안보실 비서관들에게 “난 술도 안 먹고 골프도 안치겠다. 20분내 항상 집무실 도착할 수 있는 태세를 유지하겠다”는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이런 태도는 그의 좌우명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군시절부터 지금까지 좌우명처럼 새겨온 손자병법 구절이 있는데 ‘進不求名(진불구명) 退不避罪(퇴불피죄) 唯民是保而利於主(유민시보이리어주)’다. ‘명예를 구하기 위해 진격하는 것이 아니고 퇴각한다고 해서 죄를 피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백성을 보호하고 최고지도자에게 도움을 줄 뿐이다’라는 의미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력한 대북정책의 원칙을 유지하는 데엔 김 실장의 강경한 입장도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매파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난 매파가 아니고 비둘기파는 더욱 아니다. 올빼미파다”라고 강조한다. 올빼미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가 목표를 낚아채는 인내의 상징이어서 좋아한다는 것이다.
외아들도 육사 출신으로 최전방 철책선 중대장
3대 정권에 걸쳐 10여년간 중책을 맡으면서 그가 결정한 정책이나 입장과 관련해 비판의 소리도 나온다. 현 정부는 2015년12월로 예정된 전작권(전시 작전통제권)의 재연기를 추진 중인데 전작권 한국군 전환은 원래 김 실장이 장관 시절인 2007년2월 미 국방장관과 합의, 서명한 것이다. 당시 노 대통령 등의 강력한 입장에 따른 것이었지만 그는 서명 당사자라는 점에서 예비역 단체 등 일부 우파 진영의 비판을 받아왔다.
- 작년 11월 17일 방한한 양제츠(오른쪽)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18일 박근혜 대통령 예방에 앞서 김장수 국가안보실장과 악수하고 있다. 김 실장의 허리는 여전히 꼿꼿하다.
지난 2012년12월 대선 유세가 끝날 무렵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유세 때 군복무기 단축 추진 발언을 하도록 건의한 것으로 알려진 것도 논란거리다. 당시 그는 막판에 여론조사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다급해져 복무기간 단축 카드를 쓰도록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현정부 들어 군 복무기간 단축은 중장기 과제로 바뀌어 사실상 무기연기된 상태다.
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군인사 개입 의혹도 종종 제기된다. 지난해 10월 군 장성 정기인사에서 장경욱 기무사령관 전격경질 사건이 벌어졌을 때 ‘청와대 고위인사 인사개입설’이 불거져 한때 그가 의심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김 실장 인맥으로 분류된 고위 장성은 진급에서 누락됐고 또다른 군 출신 청와대 고위인사의 인맥으로 분류된 일부 장성들이 진급했다고 한다.
김 실장은 직업군인 가족이기도 하다. 그의 외아들도 육사 출신(육사 62기)으로 프랑스 육사 유학을 했으며 현재 최전방 철책선 소초(GOP) 중대장(대위)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