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격 사태 상(上)
6.25 이후 최대의 위기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을 본격화한 북한이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 서해 연평도의 우리 해병대 기지와 민간인 마을에 해안포와 곡사포로 추정되는 포탄 100여 발을 발사했다. 북한의 이번 포격 도발로 인해 해병대 2명이 사망하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민간인은 2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당했다.
1953년 7월 휴전협정 이래 민간을 상대로 한 대규모 군사 공격은 이번이 처음이다. 군 당국은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고, 교전규칙을 전면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2010년 11월 28일에서 12월 1일까지 서해 인근 우리 영해와 공해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연합훈련이 실시된 데 이어 12월 20일 연평도에서 사격훈련이 실시됐다.’
윗글은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에서 ‘연평도 포격사건’을 치면 맨 앞에 뜨는 글이다. 출처는 시사상식사전이다. 지금은 이렇게 간단명료한 기록이 됐으나 당시는 전쟁발발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했으며 우리나라가 휴전 중임을 각성하게 했고 10여 년 전부터 해이해지기 시작한 군 기강을 바로 잡게 된 중대한 사건이었다.
- 2011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1주기를 맞아 경기도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이 일로 1년 3개월을 재임했던 김태영 국방장관은 물러났으며 김관진 장관이 새로 임명됐다. 전(前) 장관은 천인공노할 북한의 만행을 철저히 응징하지 못해 한스러워했고, 새 장관은 강력한 대응으로 북한이 굴복할 때까지 응징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두 사람 다 ‘현 상황은 6‧25 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했다.
북한의 도발이 시작되자마자 즉시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는 긴급 수석비서관 회의가 소집됐다. 대통령은 해군전술지휘통제시스템(KNTDS, 해상 전술 관련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시스템)을 통해 상황을 보고 받았다. 동시에 합참의장, 해군작전사령관, 공군작전사령관과 화상회의를 했다. YTN 화면에는 포격당한 연평도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있었다. 치솟는 검은 연기 속에 형체가 무너져 내린 가옥들이 보였다. 2003년 이라크파병에 앞서 현지조사단으로 갔을 때, 숙소에 로켓포가 떨어져 생사를 건 탈출을 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때의 공포감이 밀려와 얼어붙은 내 시선에 ‘이 대통령, 확전되지 않도록 만전 기하라’라는 TV 화면의 긴급특보 자막이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나는 ‘어 누가 저렇게 얘기했지? 저렇게 나가도 되나?’라고 했는데 대통령이 ‘저렇게 나가면 안 되잖아. 강하게 응징하겠다고 해야지!’하고 받았다. 대통령의 의사와는 전혀 다른 메시지가 나간 것은 ‘사고’였다. 우선 대통령의 첫 메시지를 바로잡아야 했다. ‘단호하게 대응하되,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로 정정했다.
다시는 도발 못하게 응징하라
나는 긴급특보의 첫 메시지가 ‘확전 자제’로 나간 경위를 나중에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현 새누리당 의원)으로부터 직접 듣게 됐다.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은 여성이라서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등 모든 책임이 김 대변인에게 전가되는 상황이었다. 김 대변인은 경위를 설명하면서 울먹이기도 했다.
- 2011년 11월 23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연평도 포격도발 전사자 1주기 추모식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분향하고 있다.
‘확전 자제’의 논란은 ‘그 말을 누가 발설했느냐’보다는 ‘그 말이 국가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를 따져야할 문제였다. 천안함 사태가 발생했을 때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는 국민을 실망시켰고, 언론은 ‘정부의 의지가 나약하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달라졌어야 하는가. 적극적이며 강한 의지로 국민의 실망을 신뢰로 되돌려야 했다.
이런 관점에서 ‘확전 자제’는 실망을 더 가중시키는 것이었다. 곧바로 ‘안이한 대응’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여론조사에서는 정부가 잘못 대응했다는 응답이 70%를 넘었다.
연평도 포격이 있던 그날 저녁에 나는 대통령에게 합동참모본부를 전격 방문하자고 건의했다. 다시는 도발 못하도록 철저한 응징을 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직접 가서 보여주자는 뜻이었다. 그때까지도 북한이 공격 태세를 거두지 않고 있었다. 추가도발도 예상됐으며 공격을 받고도 제대로 반격하지 않는 상황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아야했다.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에서 우리 일행은 연평도 교전의 정밀보고를 받았다. K-9 자주포로 응사했다는 말에 대통령은 전투기 폭격은 할 수 없는 것이냐고 물었다. 한·미 연합사 차원의 작전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당장 가능한 방법이 아니라고 답변했다.
“어떻게 군이 교전규칙만 내세우느냐? 군이 강경 대응하겠다고 하면, 대통령은 말려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니냐? 백 번의 성명보다 행동으로 대응하는 것이 군의 의무다.”
대통령은 북한이 다시는 도발할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