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무력시위와 한미동맹 60주년 – 2
그런데 세상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어제의 친구가 하루아침에 적이 된다. 1970년대 소련 남쪽에 있는 이란은 ‘둘도 없는’ 미국의 맹방이었다. 미국은 터키와 더불어 이란을 소련을 봉쇄하는 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최고의 전투기로 꼽혔던 F-14톰캣을 제공했다. 1979년 이러한 이란이 호메이니가 이끈 이슬람 혁명을 성공시키면서 순식간에 반미(反美)국가로 돌별했다.

호메이니. 동아일보 DB
지금까지도 미국에 맞서고 있다.
따라서 친구라고 믿고 좋은 무기를 수출했다간 언제 그 무기가 나를 찌르는 비수로 날아올지 모르니, 공산국가일지라도 마구 무기를 수출하진 않는다. 소련도 그러했다. 1987년 미국은 동맹국들과 함께 무분별한 미사일 수출을 통제하기 위해 MTCR(미사일기술통제체제)를 출범시켰다. 소련은 가입하지 않았지만 그 정신은 대체로 수용했다.
1991년 동유럽에 이어 소련이 무너지면서 러시아 등 15개국으로 쪼개졌다. 과거 소련은 전략적인 판단에 따라 핵미사일을 15개 공화국에 배치했었다. 소련에서 독립한 나라들은 이 미사일을 국유화했다. 그런데 15개 공화국 모두에서 대혼란이 일어났으니, ‘이 미사일을 팔아 밥을 먹으려는’ 현상이 일어났다. 대량살상무기(WMD) 확산이 일어난 것이다.
미국은 깜짝 놀라 1995년 러시아 등을 MTCR에 가입시켰다. 그리고 러시아를 제외한 CIS 국가와는 ‘미국이 경제지원을 해줄 테니 그 나라가 갖고 있는 핵무기는 러시아로 보내 폐기하게 한다’는 비핵화 협상을 타결했다. 이렇게 그물망을 짰지만 구멍은 있었다. 핵탄두를 제거한 문제의 R-27이 북한으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완성품이 아닌 부품 형태로.
이러한 R-27을 토대로 북한은 무수단을 개발했다. 새로 개발은 미사일은 시험을 해봐야 한다. 먼저 지상에서 점화시켜 제대로 연소하는지 살펴보고, 진짜 발사를 해봐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이 표적으로 정확히 날아가게 하는 ‘유도’다. 유도가 되지 않으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는 ‘지랄탄’이 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무수단을 시험한 적이 없다. 때문에 2010년 북한이 군사 퍼레이드에서 처음 공개했을 때 서방 정보기관들은 무수단을 ‘목업(모형)’이거나 가짜일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실전에서도 목업으로 자기 전력을 과장하거나 상대를 속이는 것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올해 북한은 목업일 수도 있는 무수단을 끌고 다니면서 우리를 협박한 것이다. 우리도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목업이 아닌 진짜 미사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으니 만반의 준비를 갖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국민들에게는 과장되게 알려져 불안해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무수단 이야기를 길게 끌어간 것은 작금의 한반도 안보질서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냉전 시기 소련이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의해 봉쇄를 당한 것 이상으로, 북한은 한미연합군에 의해 ‘질식할 것 같은’ 봉쇄를 당하고 있다. 이것을 돌파하려면 소련처럼 북한은 비대칭 전력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핵과 화학무기 보유, 잠수함 전력 증가, 장거리 미사일 개발로 현실화된다. 그리고 미국을 돌려세우는 협상을 하는 것이다.

김정은과 데니스 로드먼. 동아일보 DB
3차 핵실험 후 김정은은 은퇴한 미국 프로농구 선수 로드맨을 불러들여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전화를 기다린다”는 부탁을 하였다. 그 후로도 미국에 맞서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계속 미국과 대화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미국은 1차 북핵위기 때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으로 판이 흐트러져, 북한과 제네바 협상을 하게 됨으로써, 북한이 핵개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경험이 있기에 김정은의 잔꾀에 걸려들지 않고 있다.
[북한 무력시위와 한미동맹 60주년]
북한이 심리전에 이용하는 정체불명의 미사일 ‘무수단’
http://blog.donga.com/milhoon/archives/1741
동맹국이라도 무기수출 함부로 하면 안 되는 이유
http://blog.donga.com/milhoon/archives/1746
주한미군 철수를 막은 박정희 대통령의 기막힌 전략
http://blog.donga.com/milhoon/archives/1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