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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대장경 16만장에 20년간 담아낸 건, 통일"

화이트보스 2014. 3. 17. 13:31

도자대장경 16만장에 20년간 담아낸 건,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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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4.03.15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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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옻칠에 장 담그기까지…성파 스님의 '경계 없는 삶'

    도자대장경이 '통일 대박' 도자대장경 모셔 놓은 장경각 전체에 옻칠 단일 건물론 세계 최대

    유럽 여행서 눈 뜬 그림 피카소 보고 완전히 반해 그림책 베껴가며 연습 중국에서 개인전도 열어

    통도사 간장·된장의 깊은 맛 염색 배우러 온 사람들 식사 대접하려고 만들어 60~300년 된 항아리 사용 종갓집도 우리 맛은 못 내

    영축산(靈鷲山) 사방 백리가 준엄한 은빛 물결로 넘실대더니 어느덧 홍매화로 뒤덮였다. 이 산은 불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석가모니가 화염경을 설법했다는 고대 인도의 산 이름을 영축, 혹은 영취라 한다.

    이름에도 도력이 있는 모양이다. 경남 양산 영축산 아래 통만법(通萬法) 도중생(度衆生)의 터전이 생겼으니 자장율사가 창건한 통도사다. 해인사·송광사와 한국의 3대 사찰로 꼽히는 통도사는 불보(佛寶)의 도량이다.

    지금 통도사의 불보는 서운암 성파(性坡) 큰 스님이다. 마흔 갓 넘어 주지를 역임한 그는 생을 예술에 바치고 있다. '호국의 원(願)'을 접목한 도자삼천불, 16만도자대장경에 쪽 염색, 칠공예, 전통 장(醬)류를 되살렸다.

    태양이 산 너머로 기울 즈음 문을 두드리니 일갈이 들려왔다. "서울에서 뭐 하러 여기까지 왔어!" 몇 마디 건네니 낯빛이 동자승처럼 변한다. "조선일보 올해 주제 잘 잡았어. 통일 말이야. 그거 내가 원조(元祖)야…."

    ―왜 스님이 원조입니까.

    "도자대장경을 1991년부터 2000년까지, 장경각을 2010년까지 만들었어요. 거란과 몽고의 침략을 부처님의 힘으로 물리치려는 게 대장경이잖아. 호국불교의 정화지. 난 16만1500개나 되는 도자대장경에 통일의 염원을 담았어요. 그러니 내가 원조지."

    ―대통령이 오신 적이 있나요?

    "2012년에 통도사를 찾았는데 여기까지 못 왔어요. 연초에 '통일은 대박'이라고 하셨는데 난 '대박은 여기 있다'고 외치고 싶어. 세계도자사에 불경 새겨진 16만 세트가 있습니까?"

    ―팔만대장경을 도자에 옮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죠.

    "불경을 새기려면 가로세로가 50~60㎝는 돼야 해요. 국내에는 30㎝ 이상의 판이 없었죠. 도판 배우려고 일본에 갔는데 절대 안 가르쳐줘요, 그 사람들."

    ―어떻게 배웠습니까.

    "곁눈질이지 뭐. 돌아와 경남 산청으로 갔어요. 고령토가 좋거든. 작업은 1991년부터 했지만 준비는 그 5년 전부터 시작된 겁니다."

    통도사 장경각에 모셔진 도자팔만대장경.
    통도사 장경각에 모셔진 도자팔만대장경. 성파스님은 “통일의 염(念)을 담아 만들었다”고 했다. 장경각에는 옻칠이 칠해져있다. 세계에서 단일 건물로는 최대 규모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장경각에 모셔진 도자팔만대장경의 일부. 실제로 도자판은 모두 16만장이 넘는다. /이서현 사진작가
    ―도자대장경이 있는 장경각 내부가 미로 같습니다.

    "화엄삼매도(華嚴三昧圖)! 두려워하면 진짜 길을 잃어요."

    ―대역사(大役事)를 시작하기 전 두렵진 않았나요.

    "전 안 배운 것에 겁내지 않습니다. 하고자 하면 되는 겁니다."

    ―예술에 눈뜬 게 고 이성자 여사의 안내로 시작된 프랑스-스페인 여행 때라면서요. 그때 피카소에 매료됐다는데 왜 피카솝니까.

    "불교에 선화(禪�)라는 게 있는데 수행이 무르익어야 할 수 있어요. 전 피카소의 작품을 보며 동양화 같다고 느꼈어요."

    ―유럽 여행에서 미술을 접한 직후 미술을 배운 겁니까.

    "명말청초(明末淸初)에 8대 선인이 있습니다. 그렇게 돼보고 싶었어요."

    ―스님과 미술이 어울립니까.

    "불교의 교리를 깨치는 방법이 두 가집니다. 하나가 글, 그게 경(經)이고 다른 하나가 조형물입니다. 불상이라든가 탱화 알죠?"

    ―나이 들어 미술 배우는 게 쉽진 않죠.

    "학교 다니기도 뭐하고 해서 중국에 갔습니다. 북경에 5대 화가, 10대 화가라는 대가들이 있는데 그중 왕문방(王文芳)씨에게 배우게 됐죠."

    ―어떤 분입니까.

    "그분이 중국 미술계의 3대 기인으로 불리는데 날 보더니 그러더군. '그림은 배우는 게 아니다. 본인이 그리는 거다. 가르칠 것도 배울 것도 없다'고."

    ―황당한 소리 같습니다.

    "한참 궁리하다 그림책 한 권을 사서 베껴갔어요. 그럼 그분이 한마디 하고 다음 주에 또 그려가고…. 그렇게 3년 만에 중국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하게 됐지요."

    ―천연염색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죠.

    "불교에 사경(寫經)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중 최고로 치는 게 감지(紺紙) 금니사경이라고 하는데 주변에 아무리 물어도 감지를 구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게 귀합니까?

    "동국대의 고고학 권위자 황수영 박사도 맥이 끊어졌다더군. 전국에 쪽 수배령을 내렸는데 두세 달 만에 전화가 왔어요. 쪽씨를 구했다고. 열다섯 알을 이 근처에 심었죠."

    ―쪽씨는 구했지만 염색법을 아는 사람 찾는 것도 힘들었다면서요.

    "어느 노(老)보살이 찾아왔어요. 인연은 그렇게 온다니까."

    ―쪽 염색법을 아는 분인가요.

    "밭에서 '저거 쪽 아이가. 저게 어디서 나왔노?'라는 소리가 들려요. 뛰어나갔지. 쪽 염색할 줄 아느냐고요. 안다더군. 그분이 그 후 부산에서 통도사로 출퇴근했어요."

    ―스님에겐 부처님처럼 보였겠습니다.

    "그 보살께 이름 지어 바쳤지. 옥남화(玉藍花)라고. 쪽씨 구했고 염색법 알았으니 다음은 종이를 만드는 거였어요."

    ―무척 복잡합니다.

    "지금 한지, 다 옛날식과는 달라요. 진짜 한지를 고려장지, 조선장지라 하는데 그것은 표백제를 절대 안 씁니다. 표백제 쓰면 섬유질까지 삭거든요. 해인사에서 장지를 만드는 분을 찾았어요."

    "도자대장경 16만장에 20년간 담아낸 건, 통일"
    ―쪽 염색법을 세상에 알렸죠.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아예 강좌를 열었어요. 지금은 1년에 한 번씩 통도사에서 염색축제가 열립니다. 온 산이 설치미술장이 되는 겁니다."

    ―옻칠은 왜 배운 겁니까.

    "주장자나 발우가 전부 옻을 칠한 거거든요. 불상을 보면 금색인데 그 금색이 왜 안 떨어지는지 압니까. 금니 밑에 옻을 칠하기 때문입니다."

    ―옻을 배운 게 불상이나 발우 때문은 아니겠죠.

    "도자대장경을 봉안한 장경각 때문입니다. 연건평 400평 전체에 옻칠을 했어요. 일본 황실에도 중국 자금성에도 그런 규모가 없습니다. 목조 건물 전체에 옻칠을 한 곳은 도자대장경 장경각뿐일 겁니다."

    ―통도사 간장, 된장도 유명합니다.

    "처음엔 장독 모으는 걸로 시작됐어요. 예전엔 궁궐이고 양반이고 상놈이고 같은 장독을 썼지요. 그게 아파트 문화로 바뀌면서 사라졌지. 고물쟁이들 시켜서 전국에 장독 모으라고 했어요."

    ―장독에도 연대가 있습니까.

    "통도사에 5000개 이상 있는데 200~300년 된 것부터 60년 이상 된 것들입니다. 간장 된장을 만들게 된 건 염색 배우러 사람들이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분들 먹이시려고요?

    "수백명이 오는데 절에서 공양 안 주면 어떻게 해요. 이왕 하는 거 왜간장, 왜된장보다 좋은 거 만들자고 했지요. 그러다 소문이 난 거고요."

    ―공장을 짓지 그러셨습니까.

    "만만치 않아요. 식품위생법 조항이 까다롭고 절에 폐수시설까지 설치해야 한다는데 그럴 순 없잖아요."

    ―폐수시설은 왜요?

    "쌀 씻고 콩 씻은 물이 폐수라잖아. 그래서 소량으로 하고 있어요."

    ―장맛이 좋은 겁니까, 통도사 브랜드입니까.

    "통도사 가람배치도가 서기 646년에 지은 그대롭니다. 명문가 종부들이 장 담근다지만 통도사 장은 1400년이나 된 겁니다. 종갓집과는 비교할 수 없죠."

    스님이 "말 나온 김에 공양하러 가자"며 일어났다. 통도사 공양은 예사 절밥과 달랐다. 된장찌개와 나물도 특별한 양념이 없는데 절묘한 맛을 냈다. 단언컨대 어느 한식집에서 맛본 것보다 최고였다.

    문갑식 |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