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봉양해 온 치매 시어머니… 요양원에 모셔 놓고 自責 시달려
在家 간병 포기하고 애태웠는데 그곳 생활하시며 점차 活氣 찾아
'고려葬' 지적에 마음 불편하다가 눈높이 맞춘 돌봄에 안도감 느껴
- 유병숙 수필가
문득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간단없이 배회하는 어머니를 따라다니느라 밤을 하얗게 지새운 날들, 끊임없이 반복해대는 말씀에 응하느라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던 시간들, 어머니가 숨겨 놓은 물건을 찾으려고 온 집안을 이 잡듯 뒤졌던 일들, 여기저기 묻혀놓은 용변에 망연자실했던 순간들…. 한동안 나는 시간의 늪에서 허우적댔다.
'요양원에 모시면 빨리 돌아가신다. 치매가 더 악화된다. 요양사들이 학대한다' 등 별별 소문이 난무하던 때라서 요양원 입소는 감히 엄두도 못 냈었다. 대신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려면 간병(看病) 교육을 제대로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요양사 교육원을 찾았다. 그때 실습 나간 곳이 바로 지금 어머니가 계신 요양원이었다.
노인요양센터는 한 층에 30여 명씩 증상별로 나뉘어 있었다. 100여 명이 함께 생활하는 꽤 큰 규모였다. 시설은 청결했고 그래선지 환자 특유의 불쾌한 냄새도 없었다. 첫째 실습 과제는 각 방의 화장실 청소였다. 낙상 방지를 위해 걸레로 바닥의 물기까지 말끔히 제거했다. 다음은 환자들의 상태에 따라 운동을 시키고 휠체어를 밀어 드렸다. 웃음 치료 등 각종 수업이 진행될 때는 옆에서 거들었다. 손톱과 발톱을 깎아 드리고 책도 읽어 드렸다. 세 끼 식사 수발에 간식까지 챙기다 보면 하루해가 빠듯했다. 경증(輕症)의 입소자들은 당신들이 반찬으로 드실 나물을 다듬고 빨래도 개키며 TV 시청도 하셨다. 언뜻 보기에는 여느 노인들과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를 좀 더 잘 모셔야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실습을 했다.
어머니의 병세는 하루가 다르게 깊어져 갔다. 가족조차 못 알아보셨다. 아침에 어머니 방문을 열어보면 옷이란 옷은 다 껴입고 눈사람처럼 앉아 계셨다. 또 이상한 충동에 사로잡혀 눈에 띄는 것은 무엇이든 잘라내고 싶어 하셨다. 할 수 없이 가위와 칼 등 끝이 뾰족한 물건은 모두 감춰야 했다. 잠시도 어머니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으니 온 식구들이 긴장감에 떨었다. 결국 집에 모시는 게 더 위험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끝까지 모시겠다는 일념은 무너졌다.
간단한 어머니 소지품을 가방에 챙기고 거실에 나와 보니 어머니는 우두커니 소파에 홀로 앉아 계셨다. 그 처연한 모습에 울컥 속울음이 올라왔다. 건강하실 때는 손녀딸 귀가 시간 기다리는 걸 낙으로 사셨다. 이제 그 곡진한 손녀 사랑은 간데없고 황폐해진 영혼에 시달리고 계신다. 나는 어머니의 작은 어깨를 가만히 안아 드렸다.
친구들과 헤어진 후 착잡한 마음에 어머니가 계신 노인요양센터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센터에 들어서니 쿵짝 쿵짝 흥겨운 음악 소리가 한창이었다. 나는 얼떨결에 초대 손님이 되었다. 생일을 맞이한 어르신들은 고깔모자를 쓰고 곱게 치장하고 계셨다. 생일상에 놓인 케이크의 촛불을 경쟁하듯 힘껏 불어 끄는 노인들의 신수가 훤해 보였다.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는 독거(獨居) 치매 환자만 따로 모신 층도 있었다. 그분들은 목소리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무대 위에 올라 덩실덩실 춤추며 노래하는 폼이 여간 아니었다. 마치 당신들이 이 집 주인인 것처럼 의연해 보였다. 그러니까 어머니처럼 가족 곁을 떠나온 게 아니라 이곳에 와서야 안식을 찾은 분들이다.
어머니가 경증 환자일 때는 집에서 모셨다. 그러다 24시간 돌보기가 너무 버거워 낮에는 데이케어센터에 모시기도 했다. 점점 증상이 나빠져서 가족들이 지칠 대로 지치다 보니 환자의 자존감을 지켜 드리는 게 쉽지 않았다. 겪어 보지 않고는 그 고통을 모른다.
치매는 장기전이다. 가족도 숨을 쉬어야 한다. 요양원을 '현대판 고려장'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편견일 뿐이다. 어머니를 그곳에 모시고 자주 드나들다 보니 그동안 내가 몰랐던 부분을 깨달았다. 그곳에서는 환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새로운 삶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그들이 편안히 쉴 수 있는 새로운 집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