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정몽헌의 운명을 가른 것
기사입력 2014-04-30 03:00:00 기사수정 2014-04-30 08:15:39

현대차그룹은 2000년 9월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했다. 정몽구 회장이 현대차 경영을 맡은 지 1년 반, 동생인 정몽헌 회장과의 ‘포스트 정주영 경쟁’에서 고배를 든 지 반 년 뒤였다. 당시 ‘정몽헌 현대’는 26개 계열사를 거느린 국내 2위의 거대 그룹이었다. 10개 계열사로 출발한 ‘정몽구 현대차’ 서열은 5위였다.
두 그룹의 명암은 지금 극명하게 바뀌었다. 현대그룹의 양대 축이었던 현대건설과 현대전자는 2000∼2001년 부도 위기에 몰린 뒤 채권단 손에 넘어갔다. 정몽헌이 2003년 비극적 최후를 맞은 뒤 부인 현정은 회장이 현대의 경영을 맡았지만 여전히 어렵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급성장하면서 현대건설을 다시 인수했고 제철사업까지 진출했다. 정몽구 정몽헌 형제의 기업 운명을 극적으로 가른 결정적 변수는 무엇일까.
현대의 자금난이 시장(市場)에 처음 부각된 시점은 제1차 남북 정상회담 직후인 2000년 7, 8월이었다. 그때만 해도 현대의 경영난과 김대중-김정일 회담의 연결 고리는 베일에 가려 있었다. 그러나 2003년 대북(對北) 불법 송금 특검에서 현대를 위기로 몰아넣은 북한 변수가 수면 위에 떠올랐다.
송두환 특검은 정상회담 성사와 현대의 대북사업 대가로 현금 4억5000만 달러, 현물 5000만 달러 등 5억 달러가 비밀리에 북한에 전달됐다고 밝혔다. 현금 4억5000만 달러는 현대상선 현대건설 현대전자 등 모두 ‘정몽헌 현대’에서 나왔다. 뒷돈과 별도로 현대가 사업권 명목으로 지불한 돈이 4억8000만 달러, 금강산에 투자했다가 날아간 돈이 2200억 원이다. 기본적 상(商)도의와 계약 준수 관념도 없는 조폭형 집단에 1조 원 넘는 큰돈이 빠져나갔으니 기업이 성할 리가 없었다.
현대가 경제성 없는 대북사업에 알토란같은 거액을 퍼부은 것은 누가 봐도 치명적 오판이었다. 기업과 권력이 유착한 대북 송금은 지금 이 순간도 우리를 위협하는 북한 군비 확충의 군자금 노릇까지 한, 뼈아픈 역사적 과오였다.
정몽구 회장도 정권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썼고 이런저런 편의도 봐주었다. 하지만 대북 사업에는 처음부터 회의적이었고 북한에 투자하라는 권력의 압력에도 끝까지 버텼다. 만약 그가 정몽헌 회장처럼 잘못 발을 들여놓았더라면 현대차그룹의 운명도 현대그룹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정몽구 현대차’의 약진은 내년에 탄생 100주년을 맞는 정주영이 계속해서 한국 산업계의 거목(巨木)으로 평가받는 데도 한몫했다.
현대 임직원들은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 현대차보다 급여, 승진, 고용에서 모두 불리한 처지다. 정몽구 정몽헌 형제의 선택은 기업의 운명을 바꿨을 뿐 아니라 직원들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현대는 대기업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사세(社勢)가 위축됐고 현대차는 글로벌 자동차그룹으로 성장했다. 두 그룹의 대조적인 모습은 기업인의 경영 판단의 무게와 기업과 정치의 적정 거리에 대해 곱씹어볼 만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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