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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의 3전4기 성공할까?

화이트보스 2014. 6. 27. 11:10

이정현의 3전4기 성공할까?

  • 김봉기
    프리미엄뉴스부 기자
    E-mail : knight@chosun.com
    정치부에서 주로 여권(與圈) 취재를 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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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4.06.2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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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남이 날 3번 버렸지만, 난 다시 고개 숙이고 호남 앞에 선다"

    7·30 전남 순천·곡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도전키로 한 이정현(李貞鉉·56)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26일 “호남이 비록 나를 3번 버렸지만, 나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호남인들 앞에 나선다. 이번에는 내 진심이 통했으면…”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공천 신청을 마친 이 전 수석은 이날 전화 인터뷰에서 “오래동안 지속된 지역구도가 호남에서 타파돼 정치 경쟁이 회복된다면 호남 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발전하는 길이 될 것”이라며 출마 이유를 설명했다.

    이 전 수석의 말대로 새누리당 소속인 그에게 이번 7·30 출마는 4번째 호남 도전이다. 정치권에서도 과연 이 전 수석의 ‘3전4기’가 성공할 지에 관심이 쏠린다.

    득표율, 10.1%(1995년)→1%(2004년)→39.7%(2012년)→이번엔?

    호남 출신인 이 전 수석이 새누리당 간판을 달고 호남의 문을 처음 두드린 것은 지난 1995년 지방선거 때부터였다. 그는 당시 민자당 후보로 광주 광산구 시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이 전 수석의 거주지가 바로 광주 광산구였다. 민주당 후보가 89.9%의 득표율을 얻은 반면, 이 전 수석은 득표율은 10.1%에 불과했다.
    이정현 전 홍보수석이 지난 7월 홍보수석 재직 당시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뉴시스
    이정현 전 홍보수석이 지난 7월 홍보수석 재직 당시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뉴시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한나라당에서 정세분석팀장, 여의도연구소 기획팀장 등을 거친 뒤 2004년 때는 자신의 ‘체급’을 올려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했다. 그 당시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으로 인해 한나라당이 광주에서 단 한명의 후보도 내보지 못할 때였다.

    하지만 이 전 수석은 “어떻게 전국정당이 되겠다는 우리 당이 한 지역을 통째로 포기할 수 있느냐”면서 광주 서을에 출마했다. 호남의 정치1번지에 도전한 셈이었다. 당시 이 전 수석은 유권자들에게 광주 분산 투자론을 주장했다. 호남 29개 지역구 가운데 한 곳 정도는 한나라당 후보에게 달라는 내용이었다. “호남 발전을 위해선 한나라당도 껴앉아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나라당 후보인 자신에게 워낙 유권자들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자, 이색 의상 차림으로 선거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그 당시 드라마 ‘대장금’이 유행한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남자 주인공 민정호를 연상시킬 수 있도록 ‘사모관복’ 차림으로 다닌 것이다.

    당초 이를 방송국에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결국 사진관에서 폐백 때 사용하는 의상을 빌려 입었다는 후문이다.

    2004년엔 사모관복 차림, 2012년엔 자전거 타고 선거운동

    이 전 수석은 그 당시 상황에 대해 “하루에 30번 넘게 목이 터져라 거리 연설을 하는데, 탄핵역풍에다 한나라당 후보였기 때문인지 나를 아무도 쳐다봐주지 않았다. 그때 현지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내 지지율은 0%였다”며 “어떻게든 일단 내 말이라도 듣게 하려면 이런 방법 밖에는 없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 전 수석은 유효투표 6만9438표 가운데 고작 720표를 받는데 그쳤다. 득표율이 1%에 불과했다.

    여기서 포기할만 하지만, 이 전 수석은 멈추지 않았다. 4년 뒤 2008년 총선 때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그는 18대 국회 내내 새누리당의 대표적 ‘호남맨’을 자처하면서 호남 챙기기에 나섰다. ‘호남 예산 지킴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비례대표가 됐을 때부터 4년 뒤 총선에서 광주 출마를 일찍감치 선언해놓았다.

    그리고 2012년 열린 총선에서 다시 한번 광주 서을에 도전했다. 이번에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선거 유세를 했다. 이 전 수석은 26일 전화 인터뷰에서 그 때를 이렇게 설명했다.

    “2012년 총선때만 해도 나를 알아보는 유권자들이 있어서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긴 했지만, 차량으로 이동하니까 골목골목에 있는 시민들과 일일이 만날 수 없었다. 자전거 타고 가다가 시민이 있으면 서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자전거를 소통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2012년 19대 총선 광주 서구을에 출마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이색복장에 자전거를 타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뉴스1
    2012년 19대 총선 광주 서구을에 출마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이색복장에 자전거를 타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뉴스1
    비록 당선에는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광주 서을에서 39.7%의 득표율을 얻었다. 당시 광주 서을에서 야권연대가 없었다면 당선도 가능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 전 수석은 “이번 7·30 재보선에서도 과거 선거 때처럼 이색 선거운동을 할거냐”라는 질문에 “미리 얘기하면 재미없지 않느냐. (유권자들이) 차차 보시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 일부선 “장관 가기위한 수순 밟으려는 것”… 이정현 “유권자들은 내 진심 알 것”

    이번에 이 전 수석이 4번째로 도전장을 낸 호남 지역은 전남 순천·곡성은 이 전 수석과 직접 연고가 있는 곳이다. 이 전 수석은 전남 곡성군에서 태어났을 뿐 아니라, 순천에서 중학교를 나와 곡성과 순천 양쪽과 인연이 있다. 곡성은 태어난 곳, 순천은 자란 곳인 것이다.

    정치권에선 이 전 수석의 4번째 도전에 대해 “만약 야권 후보가 2년 전 광주 서을 총선 때와 달리 단일화되지 않고 분산된다면 당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반면, 야권 일각에선 “이 전 수석은 당선을 바라고 나왔다기 보다는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 뒤 추후 내각에 들어갈 생각으로 이번 7·30 재보선에 출마하려는 것 아니냐”라는 말도 한다. “청와대 수석을 하다가 곧바로 장관으로 가면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까 재보궐 선거를 통해 스스로를 ‘세탁’한 뒤 입각하려는 것”이란 주장이다.

    이 전 수석은 이날 “나에 대해 정치권에서 나오는 어떠한 주장에 대해 대응하거나 논쟁하지 않을 것”이라며 “나는 호남 발전을 바라보고 선거에 임할 생각이다. 유권자들이 내 진심을 알아주실 것”이라고 했다.

    30년 가까이 영남 정당을 지켜온 호남 출신

    이 전 수석은 민정당에서 시작해 28년간 ‘영남 텃밭’ 정당인 새누리당을 지킨 호남 당료 출신이다. 그는 5·18 당시 광주시장이었던 구용상 전 전남도지사가 1984년 민정당 총선 후보로 출마하자 “정치 똑바로 하라”며 ‘항의’ 편지를 보냈다가 민정당에 들어갔다. 구 전 지사가 “그럼, 나와 함께 일해보자”면서 동국대 정외과 4학년이던 그에게 비서관 자리를 권했던 것이다.

    그가 대표적인 친박 핵심이 된 것도 박근혜 대통령에게 ‘항의’한 게 계기였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17대 총선에서 낙선했던 이 전 수석을 위로하고자 식사에 초대했는데, 그는 이 자리에서 한나라당의 ‘호남 홀대’를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말을 다 들은 박 대통령은 “어쩜, 그렇게 말씀을 잘하세요”라며 그에게 한나라당의 수석 부대변인직을 맡겼다.

    이 전 수석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도 박 대통령을 도왔으며, 이후 줄곧 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