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어전(御前)회의와 역사의 정신
동아일보
입력 2014-08-23 03:00:00 수정 2014-08-23 03:00:00

마지막 어전회의에는 이용직도 있었다. 나흘 전 각의에서 합병조약안이 논의되자 학부대신이었던 그는 “이 같은 망국안(亡國案)에 목이 달아나도 찬성할 수 없다”고 반대했다. 매국노들은 8월 20일 그를 일본의 수해지역 방문 특사로 지명하여 즉시 떠나도록 명했다. 이용직은 이질을 핑계로 출발하지 않은 채 집에 칩거했다.
강압과 음모에 죽음으로 맞선 사람들은 민초와 선비들이었다. 이미 수십만 명이 의병을 일으켜 그중 적어도 십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상태였고, 국난의 책임을 자임하며 목숨을 끊는 사람도 속출했다. 전라도 구례의 매천 황현이 오백 년 선비를 키운 나라에서 책임지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며 자결을 하는 이야기는 가슴이 아파 도저히 한숨에 읽어내려 갈 수가 없다. 그는 숨을 거두기 전 동생의 품에 안겨 “죽는 것도 쉽지 않구나. 독약을 마실 때 세 번이나 입을 떼었으니, 내가 이렇게 어리석구나” 했다. 데라우치는 그의 일기에서 ‘마지막 어전회의와 조약의 서명이 순조로웠다’고 적었으나, 거짓이었다.
흥미롭게도, 지금 바다 건너 멀리 스코틀랜드에서 독립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영국으로의 합병을 결정했던 옛 의회 의결과 새로 독립 여부를 결정할 9월 18일의 국민투표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다. 1707년 1월 16일 스코틀랜드 의회는 다수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립을 주장하는 조직이 분열되는 바람에 110 대 69로 잉글랜드와의 합병안을 가결시켰다. 그때 사회를 맡았던 의장은 불가피하게 가결을 시키면서도 먼 훗날을 생각하여 “회의를 휴회합니다(adjourn)”라고 선언하며 회의 문을 닫았다. 그로부터 292년이 지나 1999년 5월 12일 스코틀랜드 의회가 다시 열릴 때, 최고령자로 의장을 맡게 된 위니 유잉은 “회의를 속개하겠습니다(reconvene)”라는 선언으로 의사봉을 두드렸다. 300년 가까운 세월을 뛰어넘는 ‘휴회’와 ‘속개’, 그리고 그 역사의 계승을 조망하는 지도자들의 의식에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다.
역사는 의미의 기록이다. 시대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삶을 다양하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뜻을 세워 살아간 사람들의 정신을 기억한다. 조선의 뒤를 이어 대한제국이 속절없이 망하고 역사가 단절되는 듯했으나, 민초와 선비들이 죽음으로 식민지 역사는 일시적 ‘휴회’였음을 선언했다. 그것이 비록 치욕이기는 했으나 그 덕에 머지않아 8·15 광복이 왔을 때 후손들은 떳떳하게 역사의 ‘속개’를 다시 선언할 수 있었고, 그 위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교황의 방한 행렬에 구름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위로를 구하는 풍경을 바라본다. 사랑의 사도에게 경의를 표하는 걸 넘어, 국가기관과 지도자들에 대하여 신뢰를 상실한 사람들의 애절함과 간절함이 거기에 배어 있다.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여 사회적 공의(公義)를 세우는 리더십이 그리운 때다.
이종수 연세대 교수 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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