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뉴질랜드·크로아티아·노르웨이 물부터
알프스·히말라야·백두산·한라산·지리산 물까지…
물, 물로 보지 마… '6000억대 시장'
올 상반기 불경기에도 홀로 성장세… 시중엔 90여개社, 100개 브랜드 나와
'물 건너온' 물은 현지보다 값 3~4배
부동의 매출 1위 '제주 삼다수' 왜?
몇몇 블라인드 테스트서도 "물맛 최고"
전문가 "한국인 혀에 익숙하기 때문… 늘 먹던 그 물이 가장 맛있다고 여겨"
生水, 스토리를 입혀야 잘 팔린다
佛 인구 9000명 도시의 물 '에비앙'… 200년前 귀족 병 치료에 효험 강조
세계 어디서나 팔리는 제품 자리잡아
- corbis 토픽이미지
올해 상반기 얼어붙은 경기에도 꺾이지 않는 성장세를 보인 상품이 있다. 물, 그중에서도 생수라고 통칭되는 먹는샘물이다. 생수는 대형마트인 이마트 음료 분야에서 1분기 매출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 증가했다. 공기만큼이나 흔해서 하찮게 여겨지던, '물로 본다'는 표현까지 있는 물이 가장 힘센 상품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제 물은 화제의 인물 곁에 항상 함께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때 마신 생수가 무엇인지가 관심을 끌고, 배우 김수현은 중국에서 생수 광고를 찍었다가 수원지(水源地)가 백두산의 중국 명칭인 창바이산(長白山)으로 표기된 사실이 알려져 계약 해지 논란을 겪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도피 중 특정 브랜드 생수를 마셨다고 해서 '황제 도주'라는 말을 낳았다.
해마다 10% 정도 성장한 국내 생수 시장은 올해 6000억원 규모를 내다본다〈그래픽 참조〉. 시장이 커지면서 여러 수입국과 각종 수원지가 격전을 벌이고 있다. 프랑스·이탈리아·독일·영국·뉴질랜드·캐나다·벨기에·크로아티아·호주·노르웨이가 경쟁하고, 알프스 산맥, 히말라야 산맥은 물론 백두산, 한라산, 지리산, 소백산 등이 수원지로 동원된다. 나라란 나라, 산이란 산은 죄다 뛰어든 형국이다. 그 결과 제조업체로는 90여곳, 브랜드로는 100개가 넘는 생수가 국내 시장에서 '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제일 맛있는 물은? 늘 먹던 그 물
그 많은 물이 전부 맛이 다를까. 물에도 엄연히 맛이 있다. 흔히 말하는 생수란 미네랄 워터, 즉 칼슘·마그네슘·칼륨 등의 성분이 함유된 물이다. 물에 어떤 미네랄이 얼마만큼 들어갔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칼륨이 지나치면 짜고, 마그네슘이 많이 들어가면 쓰다. 철이 많으면 녹 맛이 난다. 어느 곳에서 취수하느냐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빗물이나 눈이 땅으로 스며든 지하수, 지하수가 지표면으로 솟아 나온 용천수, 빙하가 녹은 빙하수, 바다에서 뽑아 올린 해양 심층수 등은 각기 성분이 다르고 미세하게나마 맛도 다르다. 전문가들은 가장 맛있고 균형 잡힌 미네랄 비율을 태아 양수 비율과 같은 3:1:1(마그네슘:칼슘:칼륨)로 본다. 각종 미네랄 맛을 음미하기에 적당한 10~15도가 맛보기에 좋은 온도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맛있는 물을 가리기 위해 브랜드를 가리고 시음 테스트를 하면 가장 많이 선택하는 물은 제주삼다수다. 생수 시장 매출 부동의 1위인 이유가 있는 셈이다. 물맛이 누가 마셔도 최고라서일까. 이태관 계명대 환경과학과 교수는 삼다수 물맛이 가장 괜찮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 혀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국내에서 시판되는 여러 생수. 해양심층수, 화산암반수, 빙하수 등 천연수가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최적의 미네랄 성분을 조합해 넣거나 탄산을 기계로 주입한 인공수도 많이 팔린다. / 이명원 기자
최근 들어 탄산수가 많이 팔리면서 가정에서 탄산수를 제조하는 기계도 나왔다. 사 먹는 탄산수와 집에서 만들어 먹는 탄산수의 맛이 같을까. 전문가들은 탄산을 주입하는 인공 탄산수와 원래부터 함유한 천연 탄산수 사이에 맛 차이가 크다고 지적한다. 기본이 되는 물맛이 다른 데다, 주입된 탄산수의 기포 크기가 달라 입에서 느끼는 감촉에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제훈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지배인은 "페리에는 산 펠레그리노보다 기포가 크기 때문에 포만감이 더 쉽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야기를 녹여야 물이 팔린다
지금은 물 종류가 너무 많아 고민이지만, 국내 소비자가 '내 맘대로 물 사먹을 권리'를 인정받은 것은 불과 19년 전이다. 세계 최초로 정부가 허가해 생수 판매를 시작한 국가는 프랑스다. 1878년에 시작했다. 유럽은 19세기에 콜레라가 창궐하면서 오염된 식수에 대한 경각심이 일찌감치 퍼졌다. 우리나라에서는 1976년 미군 부대에 납품된 다이아몬드라는 생수가 시초였다. 당시만 해도 시판은 금지였다. 물을 돈 받고 팔면 수돗물에 대한 불신감을 조장하고, 부자와 서민 간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이유로 주한 외국인에게만 판매가 허용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일시적으로 규제가 풀렸다.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이 수돗물을 꺼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나자 다시 금지됐다. 그러자 생수업체들이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했다. 먹고 싶은 물을 못 사먹으니 행복추구권 침해요, 다니고 싶은 생수 회사를 못 다니니 직업 선택의 자유권을 침해한다는 논리였다. 1994년 3월 생수 판매 금지는 위헌이라는 결정이 나왔고, 1995년에 본격적으로 생수 판매가 시작됐다.
지난해 수입된 생수는 2477만달러어치 분량이다. 국가별로 보면 중국산(62%)이 가장 많았다. 백두산 물, 즉 중국산 물이 수원인 생수 수입이 작년부터 폭증했기 때문이다. 2위가 프랑스산이었으며, 이탈리아산과 피지산이 뒤를 이었다.
물맛의 힘이 아니라 이야기의 힘이 생수 선호도를 좌우한다는 분석도 있다. 같은 물이라도 이야기를 어떻게 입혀서 시장에 내놓느냐에 따라 소비자의 선택이 갈린다는 것이다. 인구 9000명 소도시 에비앙에서 취수하는 물은 200년 전 신장결석에 걸렸던 프랑스 레세르 후작이 3개월간 에비앙의 계곡물을 마시고 씻은 듯이 나았다는 '전설'을 강조하며 입맛에 관계없이 전 세계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 생수로 자리 잡았다.
‘워터 소믈리에’ 5명에게 물어보니…
백두산 내두천 물 ‘백산수’ 최고 꼽아, 水源은 암반수보다 해양심층수 선호
생수 시장이 커지면서 물맛을 감별한다는 워터 소믈리에도 활동 중이다. 원래 소믈리에(sommelier)라는 단어는 와인 감별사라는 뜻. 워터 소믈리에라고 하면 ‘물 와인 감별사’라는 단어가 돼버리지만, 2012년 한국수자원공사가 워터 소믈리에 명칭과 교수법에 대한 상표권을 갖게 되면서 굳어져 버렸다.
물맛을 아는 전문가는 100여종에 달하는 시판 생수 중에서 어떤 물을 선호할까. 김도형 롯데호텔 지배인, 이병기 LG전자 정수기모듈러개발팀 선임연구원, 이제훈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지배인, 이상훈 밀레니엄서울힐튼 지배인, 정하봉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이사(가나다 순) 등 워터 소믈리에 자격증을 가진 5명에게 2종씩 추천을 받았다.
백두산 내두천의 물을 쓴다는 백산수가 5명 중 3명의 선택을 받아 가장 많이 꼽혔다. “마셨을 때 밋밋하지 않고 미네랄 흡수가 골고루 되는 느낌”(김도형 지배인)이라는 평가였다. 수원(水源) 중에서는 암반수 계열보다 해양심층수를 선호했다. 이제훈 지배인은 “물 분자가 작아 흡수가 빠르다”는 장점을 들어 해양심층수 중 천년동안을, 정하봉 지배인은 “가볍고 부드러운 끝맛이 좋다”는 이유로 미네워터를 선택했다. 이외에 아이시스(“알칼리 생수라 몸에 더 좋다”), 초정탄산수(“인체에 유익한 미네랄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볼빅(“제주삼다수와 가장 유사한 맛”) 등이 꼽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