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교훈
정임수 경제부 기자
입력 2014-10-02 03:00:00 수정 2014-10-02 03:07:22

브라질, 멕시코에 이어 중남미 3위 경제국인 아르헨티나가 2001년에 이어 13년 만에 또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맞은 것은 올해 7월 30일. 2001년 디폴트 후 채무재조정에 합의한 채권단에 이자 5억3900만 달러를 지급하는 날이었다.
미국 헤지펀드 2곳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채무재조정을 거부하고 “15억 달러의 채무를 모두 갚으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미국 법원이 헤지펀드의 손을 들어준 게 발단이었다. 다른 채권단에 대한 이자 지급을 미룬 채 헤지펀드와 협상을 벌여온 아르헨티나는 협상에 실패하면서 디폴트를 맞았다.
아르헨티나가 ‘벌처펀드’로 불리는 헤지펀드에 당한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벌처펀드는 파산 위기에 처한 기업, 국가의 채권을 싸게 사들인 뒤 소송을 제기해 막대한 이득을 챙긴다. 그렇더라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유엔총회 단상에 올라 헤지펀드를 비난하기에 앞서 취약한 경제구조와 포퓰리즘을 앞세운 정책 실패, 무능한 국회 등 아르헨티나를 위기로 내몬 근본 원인부터 짚었어야 했다.
2007년 대통령에 당선됐고 2011년 재선에 성공한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재임 기간 중 아르헨티나 경제는 추락을 거듭했다. 2011년 526억 달러였던 외화보유액은 현재 280억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경제성장률은 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이고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무려 40%다. 공장의 3분의 1은 가동 중단 상태에 놓였고 노동계는 연일 파업을 벌이고 있다. 내년에 국내총생산(GDP)이 콜롬비아에 추월당해 중남미 3위 경제국 자리를 내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경제 상황이 이래도 아르헨티나 정치권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여야는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세 번째 연임을 허용하는 개헌안을 둘러싸고 치열한 정치싸움만 벌이고 있다. 게다가 연방하원은 최근 정부가 기업의 생산·판매 활동을 전반적으로 통제하고, 정부 지시를 어기는 기업은 폐업까지 시킬 수 있도록 한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다행히 세월호 정국에 묶여 있던 한국의 ‘식물 국회’가 151일 만에 정상화됐다. 이제 국회가 경제 살리기에 나설 차례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은 국회”라는 말이 더는 나오지 않길 바란다.
정임수 경제부 기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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