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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만에 개방 … ‘조선 10경’ 화순 이서적벽 가보니

화이트보스 2014. 10. 6. 10:01
42년만에 개방 … ‘조선 10경’ 화순 이서적벽 가보니
길이 1.7km·높이 80m … 하늘·호수 사이 아담한 병풍
광주시·화순군 오늘 협약 23일 개방 ‘이서적벽제’ 개최

2014년 10월 06일(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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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3일 42년 만의 화순 이서적벽 개방을 앞두고 망향정을 찾은 시민들이 눈앞에 펼쳐진 절경을 감상하고 있다. /나명주기자 mjna@kwangju.co.kr
적벽동천(赤壁洞天). 적벽은 신선의 세계와 다르지 않았다.

붉은 절벽 위로 하오의 햇볕이 쏟아지자 켜켜이 층을 이룬 단애의 절경이 드러났다. 불어오는 바람에 수면에 어린 풍광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붉은 절벽이 하늘과 바람, 푸른 물과 어울려 한 편의 수묵화를 이루었다.

화순 이서적벽의 빗장이 42년 만에 풀린다. 지난 1973년 5월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수몰민에 한해 설, 추석, 한식 날에만 벌초·성묘를 허가하고 일반인의 출입은 통제돼 왔다. 광주시와 화순군은 민선 6기 광주전남 상생발전의 하나로 동복댐 상수원 보호구역 내 이서적벽을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양 시군은 6일 개방 협약서를 맺고, 23일 현장에서 개방 행사와 함께 ‘이서적벽제’를 개최하기로 했다.

화순 이서면에 자리한 ‘적벽’(전남도 기념물 60호)은 삼국지의 적벽대전(赤壁大戰)과 이름이 같다. 적벽은 산자락과 호수를 따라 7km 가량 펼쳐진 붉은 기암괴석을 일컫는다. 흔히 이서적벽, 보산적벽, 창랑적벽, 물염적벽을 아울러 화순적벽이라 명하는데, 그 가운데 최고 절경은 이서적벽이다.

지난 2일 광주시 상수도사업본부는 42년 만의 공개를 앞두고 이서적벽으로 가는 임도 4.8km와 인근 망향정을 부분 개방했다. 기자는 상수도사업본부의 도움을 얻어 모터보트에 승선, 그동안 먼발치에서 보았던 이서적벽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이서적벽의 절경은 수려했다. 가을 햇살을 받아 수면은 정밀하게 빛나고, 올망졸망한 산세는 다함없이 부드러웠다. 산은 물이고 물은 산인 모습이 하늘과 어울려 조화를 이루었다. 말 그대로 푸른 물빛과 정밀하게 층을 이룬 단애는 조선 10경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한 승경(勝景)이었다.

이곳이 적벽이라는 명칭을 얻게 된 사연은 이렇다. 1519년 기묘사화 후 동복에 유배 중이던 광양 출신 문신 최산두(1483∼1536)가 이곳의 절경에 반했던 모양이다. 그는 뛰어난 문장과 덕행으로 홍문관을 거쳐 호당에 올랐으나, 피비린내 나는 사화(士禍)의 광풍을 피하지 못했다. 동복에 유배된 그는 이곳에 은거하며 정신적 자유를 누렸다. 동복 일대의 기암괴석을 보고 삼국지의 적벽대전을 떠올렸던 그는 ‘조선의 적벽’이라 이름하였고, 이후 이곳은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시재가 되었다.

눈앞에 펼쳐진 이서적벽은 대략 1.7km 길이에, 높이는 80m에 이른다. 하늘과 호수 사이에 아담한 병풍이 가로지른 형국이다. 백아산에서 발원한 동복천이 항아리 형상의 웅성산을 휘돌아 나오면서 이룬 절경이다. 온후한 산세와 맑은 물과 사계의 시간은 그렇게 걸작을 만들었다.

보트에서 내려 임도를 따라 망향정(望鄕亭)으로 향한다. 수몰 당시 이곳에는 3개면 15개 마을 560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물속에 잠긴 고향은 늘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실향민들의 설움을 달래주던 정자에 앉아 물 건너 적벽을 바라본다. 옅은 구름 사이로 연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리고 비탈에 선 저 나무의 직립! 나무는 물과 하늘의 경계를 지우며 아슬아슬한 자유를 누린다.

방랑시인 김삿갓(1807∼1863)도 적벽의 풍광에 빠져 말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적벽을 비롯한 동복 일대를 마음의 고향으로 상정했던 것 같다. 청정의 산세와 지순한 풍취에서 고향의 안락을 느꼈다. 그는 이곳에서 지필묵을 꺼내 일필휘지로 시를 써내려가곤 했다. 아마도 그는 충효의 어떤 길도 갈 수 없었던 참회록을 자신만의 시로 형상화했을 것이다.

개방을 앞두고 방문했다는 송광사 광주포교당 길상사 도제 스님은 “삼국지에 나오는 적벽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다. 날로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적벽이 개방돼, 많은 이들에게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지인들과 이곳을 찾았다는 김홍주(45·광주 동림동) 씨는 “지난 여름 베트남 하롱베이를 다녀왔는데 그곳과는 비교할 수 없이 풍광이 뛰어나다”고 소감을 말했다.

한편 이서적벽은 주 3회 하루 두 차례(오전·오후) 개방되며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안전을 위해 동절기(12월∼2월)는 개방하지 않고 수질 오염 방지를 위해 음식물 반입은 금지된다. /박성천기자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