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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15조 쏟아붓는 평택은 지금

화이트보스 2014. 10. 26. 18:24

삼성전자 15조 쏟아붓는 평택은 지금

  • 김효정 주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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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10.26 13:57 | 수정 : 2014.10.26 14:08

    서른 살 평택항 인천항보다 커지나

    
	평택항 여객 부두. 매년 20만명 가까운 외국인이 평택항을 오간다. photo 경기평택항만공사
    평택항 여객 부두. 매년 20만명 가까운 외국인이 평택항을 오간다. photo 경기평택항만공사
    지난 10월 7일 화요일 저녁 경기도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 건물 안팎을 가득 메운 사람들로 붐비는 터미널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은 중국어였다. 수백 명의 중국인이 산동반도의 룽청(英成)과 웨이하이(威海)로 가는 배의 출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당수는 따이공(代工), 즉 보따리상처럼 보였지만 더러 여행가방이며 선글라스로 관광객임을 티 내는 사람도 많았다. 중국 여성 쉬샤오쉬(27)씨가 평택항을 찾은 것도 벌써 3번째라고 했다. “한국이 좋아서 5번이나 놀러 왔어요. 부천에 친구가 사는데 오가기 편하고 표도 싸서 작년부터는 평택항으로 와요.” 그렇게 평택항을 통해 한국을 오간 외국인이 지난해 기준 일 년 18만4000명이다. 올해는 1월부터 8월까지만 18만명이 입국했다.
       
       기자를 평택항까지 데려다 준 택시기사 배순환씨는 평택에서만 30년을 살았다고 한다. 그는 30년 전 평택항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에 누가 낚시 가자 그래서 바닷가에 왔는데 여기가 평택항이라는 거요. 그때 막 항구처럼 모습을 갖추던 참이라 얼추 도로도 항구도 널찍널찍하게 있긴 했어요. 그런데 아무도 없었어요.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은 말 그대로 ‘상전벽해’죠.”
       
       평택항이 있는 평택시을 지역구 출신 3선 의원을 지낸 정장선 전 의원도 비슷한 기억을 공유한다. 정 전 의원은 평택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인데,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평택항을 찾았다고 한다. “평택 살면서도 거기에 항구라는 게 있는 줄 몰랐어요. 어선 몇 척 떠 있고, 할머니들이 생선 같은 것 팔고 있고. 시골이었어요.”
       
       그러던 것이 1986년 개항하며 바뀌었다. 지금 평택항 여객터미널을 이용하는 국내외 이용객은 한 해 43만명이다. 여객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물동량의 증가다. 2002년만 해도 평택항은 전국 항만 물동량 1189만TEU의 겨우 0.5%에 해당하는 6만6000TEU의 물동량을 처리했다. 우리나라 최대 항구인 부산의 0.6%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3년 평택항은 전국 물동량의 2%에 달하는 51만9000TEU의 물동량을 처리했다. 12년 사이 690% 가까이 증가했다. 2012년에는 국내 항만 중 최단기간에 총 물동량 1억t을 달성했고, 지난해에도 1억t 넘는 물동량을 처리했다.
    
	[주간조선] [스페셜 리포트] 삼성전자 15조 쏟아붓는 평택은 지금
    눈에 띄는 것은 자동차 물동량의 증가다. 평택항은 2010년부터 울산항을 제치고 자동차 수출입 처리량 1위를 달성했다. 그 후 지난해까지 4년 연속 1위인데, 지난해 평택항이 처리한 자동차는 총 144만6000대였다. 중국에 인접해 있고 수도권 물류를 처리하기에 편리한 지리적 이점이 자동차 처리량 1위를 가능하게 했다고 얘기된다.
       
       6년 전 경기평택항만공사 홍보마케팅팀에 입사한 김정훈 팀장은 그 성과를 직접 이끌어낸 인물이다. 김 팀장은 평택항의 장점에 대해 설명했다. “평택항은 울산항이나 부산항에 비해 경제적입니다. 중국과의 교역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데 우선 중국과 가장 가깝습니다. 수도권과도 70㎞ 떨어져 있으니 소비자 접근성이 뛰어납니다.” 중국에서 출발한 물류가 부산항을 거쳐 다시 수도권으로 운송된다면 내륙 운송 요금만 해도 130만원에 달한다. 그러나 평택항에서는 겨우 36만원. 인천항은 수도권과는 가깝지만 기타 지방과는 멀다. 평택항에서 천안까지는 30만원의 내륙 운송 요금이 드는데 인천항에서는 54만원이 든다.
       
       평택항은 화물 입출항 비용도 다른 항구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컨테이너 한 개(1TEU) 입항 비용은 평택항이 2694원, 부산항은 4351원, 인천항은 4200원이다. 수심도 충분하다. 평균 수심이 14m에 달해 초대형 선박이 접안하는 데 최적의 환경을 갖췄다. 수심 편차도 다른 항만에 비해 적다. 평택항의 수심 편차는 8m인데 인천항은 25m, 광양항은 22m다.
       
       이 모든 장점에도 평택항의 성장은 쉽지 않았다. 평택항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상 수출 과정에 대해 알아야 한다. 선박회 사(선사)가 화주의 화물을 싣고 떠나는 것이 해상 수출인데 이 과정에는 포워더(NVOCC)가 핵심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해 포워더는 화주들을 모아서 주 거래 선사를 선택해 화물을 싣도록 돕는 중간 유통업자인데요. 포워더가 선사는 물론 항로, 항만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포워더를 공략했어요.” 한국에는 3000곳의 포워더가 있다고 한다. 김 팀장은 이 중 500곳의 포워더를 찾고 또 찾았다.
       
       정장선 전 의원도 이 당시 평택항의 절박함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IMF 외환위기가 터지고 나서 부산, 광양 정도만 빼고 항만에 대한 투자는 거의 다 중지됐습니다. 2000년에 들어서 겨우 1500억원 정도 예산이 확보됐어요. 대중국 교역이 늘고 있으니 평택항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는 이유였죠.” 그러다가 현대·기아차가 평택항을 통해 자동차를 수출하기로 결정했다.
       
       자동차 수출은 단순히 자동차를 싣고 떠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자동차를 출고하려면 최종 검사를 하는 PDI(Pre Delivery Inspection)센터와 같은 시설이 필요합니다. 평택항 배후단지에는 BMW, 아우디, 포드 등 대부분 수입차의 PDI센터가 있어요.” 평택항 제2·3번 자동차 전용부두를 운영하는 평택국제자동차부두(PIRT)는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자동차 전용 터미널이다. 김 팀장은 “유럽 최대의 자동차 중심 항만인 독일 브레멘항이 2012년 200만대 수출량을 처리했다고 해요. 그런데 평택은 145만대를 처리했습니다. 못지않은 수준인 거죠.”
       
       평택항의 성장은 평택 지역경제의 발전까지 이끌었다. 평택항 1단계 배후단지는 2010년 완공됐는데 총 면적 100만㎥(약 30만평)에 13개 관련 기업이 입주해 있다. 지난해 4월 평택시의 발표에 따르면 평택항 주변에는 20개 업종 384개 업체가 입주해 있고, 9286명이 관련 산업에 종사한다. 이들이 납부하는 지방세만 하더라도 2012년에 127억원이다. 전년의 75억원에 비해 70% 정도 늘어났다. 배후단지에 입주해 있는 물류 업체 엠에스로지스틱은 지역 기업인데 직원 대부분을 지역 주민들로 채용하고 있다.
    
	[주간조선] [스페셜 리포트] 삼성전자 15조 쏟아붓는 평택은 지금
    그러나 평택의 미래가 마냥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지난 6월까지 제8대 경기도의회에서 평택항발전추진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던 이상기 전 도의원은 “정부의 관심이 매우 부족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객터미널이 대표적인 예다. 여객터미널에 접안할 수 있는 선적은 2대뿐이다. “항로가 5개이고, 들어오는 관광객만 월 4만~5만명인데 터미널 시설도 낡았고 접안시설도 매우 부족해요.”
       
       2단계 배후단지 조성 사업은 지지부진하다. 민자사업으로 추진하다가 다시 재정사업으로 돌리는 것을 반복하기가 수차례다. 이 전 의원은 “사회기반시설인 만큼 중앙정부가 나서서 사회간접자본을 조성해 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체의 지원이나 사기업의 참여에만 기대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정부가 부산·광양·인천항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는 볼멘소리다. 경기평택항만공사 김정훈 홍보마케팅팀장은 “단순히 내가 평택 주민이라서 평택항이 커져야 한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중국 교역을 담당하는 평택항의 성장은 한국 수출 경제의 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게다가 평택항이 성장하면서 평택 경제가 동반성장하는 것은 물론 인천항이나 광양항, 대산항 등이 함께 경쟁하며 더 좋은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 평택항은 완성된 것이 아니다. 2016년에는 평택항의 물동량이 인천항을 따라잡을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도 있다. 고덕신도시에 들어설 삼성전자, LG전자 공장이나 곧 이전해 올 미군기지 때문이다. 기업의 물류가 평택항을 통해 수출될 것은 물론 미군기지의 물자도 평택항을 통해 오가기로 결정됐다. 반면 지지부진한 정부 지원, 아직 불명확한 성장 동력은 평택항이 이대로 주저앉을지 모른다는 지역사회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정장선 전 의원은 “앞으로 평택항의 가장 큰 과제는 우리나라 항만 중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기능을 할 것인지 목표를 세우는 것에 달렸다”고 말했다. “평택항은 충분히 더 성장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설이나 인프라로는 부족함이 없어요. 하지만 이제부터 어떻게 하느냐가 평택항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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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 공재광 평택시장
       
       “젊은 평택 만들기… 1조8000억 투입 관광단지 건설”
     
       공재광 경기도 평택시장의 일정은 분 단위로 쪼개져 있다. 지난 10월 6일 삼성전자(부회장 이재용)가 평택에 15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후 공 시장의 일정은 더욱 바빠졌다. 평택의 고덕신도시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들어설 예정이다. 2016년에는 주한미군 기지(캠프 험프리스)가 평택으로 이전한다. 2015년에는 수서와 평택을 오가는 KTX 노선이 개통된다. 평택항은 지난 4년간 줄곧 전국 항만 중 수출입 자동차 처리량 1위를 달성하면서 처리하는 물동량만 1억t을 넘기고 있다.
       
       기자는 ‘왜 하필 평택인가’가 궁금했다. 2010년 기준으로 평택시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4만달러(약 4300만원)를 기록했다. 평택시의 인구가 2013년 기준으로 약 43만명인데, 인구 30만명이 넘는 전국의 시·군·구 중 3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평택시 내에만 2000개 가까운 공장이 있는데, 이미 산업도시로서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삼성전자, LG전자의 공장 등이 입주할 고덕신도시와 군사 및 국제도시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주한미군 기지 이전, 항만·물류 중심도시로 자리매김할 평택항의 성장이 어떻게 한데 어우러질 수 있었던 것인지 궁금했다.
       
       공 시장과 전화 통화를 한 건 10월 8일. 공 시장은 기자의 질문에 “결국 세 가지 요소들은 하나로 이어져 평택의 발전을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관심 쏟는 일은 주한미군 기지가 옮겨 왔을 때 ‘평택에 오니 살기 좋다’는 얘기를 듣게 하는 것입니다.” 공 시장은 평택으로 옮겨올 주한미군 4만명을 ‘손님’이라고 표현했다. “평택이 날로 발전하고는 있지만 편의시설 등이 아직 부족합니다. 먹을거리나 문화생활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도시를 바꿔 나갈 생각입니다.”
       
       그 계획 중 하나는 공 시장이 ‘평택 관광단지’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공식적으로 발표되진 않았지만 11월 말 SK건설이 1조8000억원을 지원하는 내용의 관광단지 조성 계획이 발표될 겁니다.” 평택은 수도권에 속하지만 충청권과 가깝다. “호텔, 놀이시설, 문화생활 공간 등이 생기고 나면 평택은 한층 더 젊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평택항으로 들어오는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즐길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 “지금은 평택항으로 들어와 서울로 빠져나가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입니다.” 이미 평택항은 물동량 측면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여객 부문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평택항의 물동량은 앞으로 입주할 삼성전자나 LG전자 산업단지의 영향을 받아 더욱 늘어날 것이다. “단순히 ‘대기업 유치’라고만 포장할 수가 없는 것이, 이들 기업 덕분에 평택의 경제 활동이 한층 더 활발해질 겁니다. 젊은 인재들도 몰려올 거고 지역 주민들도 직접적으로 나라 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게 되겠죠.”
       
       이들이 모두 평택에 모일 수 있었던 이유는 ‘지리적 이점’ 때문이다. 공 시장은 “평택은 우리나라의 중심에 있다”고 말했다. “경부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가 함께 지나가고 항만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를 예로 들면 기존에 기흥과 천안에 연구소와 공장을 가지고 있는데, 평택은 서울과 이들을 삼각형 형태로 묶어줄 수 있는 곳에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평택은 그 위치만으로도 충분한 가능성을 가진 도시라는 얘기다.
       
       공재광 시장은 평택이 “가장 바쁘게 변화하는 도시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지금 어떻게 하느냐가 평택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생각하면 책임감도 느낍니다. 대규모 공장과 미군기지, 항만과 관광객이 어우러지는 도시가 될 수 있도록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