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총리·본사 고문
제국주의 시대에는 식민지화란 수모를, 해방 후에는 동서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전쟁과 분단의 고초를 겪어 온 한국인에게는 이런 민족적 수난을 자아낸 이른바 4강, 즉 미국·러시아·중국·일본을 강대국으로 지칭하는 것이 습관화된 지 이미 오래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인도에 대해 우리 국민의 관심이 멀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1300년 전 인도를 비롯한 서남아시아와 유라시아 중원의 여러 나라를 방문한 견문록 『왕오천축국전』을 남겨준 신라의 혜초 스님을 잊었단 말인가.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인도가 얼마나 큰 나라인가에 대한 무뎌진 국민의 감각을 새롭게 충전해야겠다.

이렇듯 인도의 강대국 진입을 예고하는 일련의 보고에도 불구하고 그의 구체적 실현 가능성은 궁극적으로는 인도 내외의 정치적 여건에 달려 있다. 예측 불허인 국제 정세의 굴곡뿐 아니라 국민들의 단합된 노력에 더해 역사적 과업을 이끌어 갈 최고지도자의 존재 여부가 한 나라 발전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지난 5월 총선에서 승리하며 단독정부를 구성한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주목하게 된다.
11월 초 서울에서 열렸던 13차 한·인도 포럼에서 주일본 대사 등을 역임했던 싱(H K Singh) 교수는 모디 총리의 정치적 강점을 적절히 요약하였다. 계층사회의 전통에 묶여 있는 인도에서 서민 출신으로 당선된 모디 총리는 변화와 개혁을 목표로 제시하고 계층·이념·종교·종족 등을 뛰어넘어 모두가 윤택하게 살 수 있는 사회 건설을 위해 국가 운영의 초점을 경제발전에 맞추겠다고 약속하였다. 과거의 이념적 진보나 사회주의 정책보다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새로운 중산층을 만들겠다는 그는 이미 구자라트 주지사 10년 동안 평균 9.8% 성장의 실적을 과시하였고 인도의 미래, 특히 성장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을 국민들에게 불어넣고 있다는 것이다.
주지사 시절부터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왔던 모디 총리의 리더십에 힘입어 한국과 인도 두 나라는 앞으로 적극적 협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한·인도 포럼의 공동발표에서 강조하고 있다. 방위산업, 핵에너지산업, 정보통신과 위성 등의 우주산업, 인도의 영화산업(Bollywood)과 한류의 접합, LNG 탱커의 인도 현지 조선 등 많은 가능성이 제시되었고 항공협정·비자협정 그리고 통상협정(CEPA)의 상향 조정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21세기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인도가 가진 특징이라면 첫째, 세계 최대의 인구국가임에도 의회민주정치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며 ‘민주주의의 기적’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총선의 유권자가 8억1450만 명이란 규모는 놀랄 만하지 않은가. 둘째, 그러한 민주대국이 지속적인 고도성장으로 국민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셋째, 비동맹노선의 전통을 이어받은 듯 강대국들의 패권주의와 확장 견제정책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화 지향적 강대국 실험은 바로 한국이 지향하는 세계질서, 아시아의 평화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지난 1월 박근혜 대통령의 인도 방문에 이은 모디 총리의 방한을 기다리는 가장 큰 이유다.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