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2.30 03:00
남북 당국 간에는 이미 '고위급 접촉' 대화 채널이 있다. 그러나 북이 '대북 전단'을 트집 잡아 10월 말~11월 초로 합의했던 2차 접촉을 무산시킨 뒤 재개 날짜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반관반민(半官半民) 성격의 통일준비위를 새로운 대화 창구로 내세운 것은 기존 공식 당국 회담과는 별개의 협상 통로를 뚫어 남북 관계의 돌파구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정부는 '반관반민 기구' 형식의 남북대화가 이뤄지면 의제나 형식 면에서 당국 간 회담보다는 한결 유연하게 진행될 가능성을 기대한 듯하다. 사실 고위급 접촉은 5·24 제재 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을 다룬 탓에 남북 간 신경전도 심하고 합의 도출이 쉽지 않았다. 이와 달리 통일준비위가 나설 '반관반민 회담'에선 이산가족 상봉 문제 같은 인도적 사업과 내년 광복 70주년을 기념한 남북 축구대회 등 민간 교류 사업을 주로 다루게 된다. 또 '나진-하산 프로젝트' 같은 남북 경제협력 사업이나 보건 영양 개선 사업처럼 북 주민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들이 테이블에 올려질 것으로 보인다. 남북이 먼저 이런 부분에서 성과를 내면 5·24 조치나 금강산 관광 문제 같은 난제(難題)의 해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올해 신년사에서 남북 관계 개선 의지를 밝히고서도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 '드레스덴 구상' '고위급 당국 대화' 제안을 모두 외면했다. 그런 김정은이 며칠 전 집권 후 처음으로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친서를 보냈다. 친서를 전달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은 "내년에 금강산 관광, 5·24 조치, 이산가족 상봉 등에서 대통로가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했다. 북 지도부도 남북 관계 개선을 바라고 있다는 뜻이다.
남북 관계 변화가 더 절박한 건 우리보다 북이다. 북이 지금의 경제적·외교적 궁지에서 벗어나 체제를 안정시키려면 우리와 대화하고 도움받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 북이 이번마저 대화 제의를 차버린다면 곤경을 타개할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