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UCSD) 석좌교수
제재의 효과를 이해하려면 남북 무역과 투자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살펴봐야 한다. 햇볕정책이 개시된 이후 대규모 식량·비료 지원이 남북 교역을 액수상으로 압도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대에는 이러한 일방적인 대북 수출이 남북 교역을 압도했다. 그 정점은 2006년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개성공단이 남북 교역의 중심이 됐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대한 조건 없는 지원을 대폭 줄였고 금강산 관광 프로젝트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2010년 제재로 남북 간의 무역과 투자는 오로지 개성을 통해 이뤄졌다. 2013년 다섯 달 동안 개성공단이 폐쇄된 바 있지만 개성을 통한 남북 교역은 2013년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이처럼 고도로 정치화된 남북 무역이 낳은 결과는, 북한이 개성이라는 철저히 차단된 ‘고립영토(enclave)’를 통해서만 한국 기업들과 거래한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북한 기업이나 매니저들과 아무런 접촉이 없다. 노동자들을 선별해 채용하는 것은 북한 당국이며 임금은 명령에 의해 설정된다. 남북한 모두 공단 내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 완전히 침묵하고 있다. 개성공단은 기업과 노동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남북 교역에는 기대와 달리 북한을 변화시키는 효과가 없다.

제재 해제는 여러 가지 이득을 안겨줄 것이다. 첫째, 남북 사업이 성공하건 실패하건 한국 정부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북한은 현재 투자 유치와 무역이 부진한 이유를 외부 세계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 경제 전문가인 마커스 놀랜드와 내가 중국과 한국의 투자자들을 상대로 조사해 보니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취약한 인프라와 재산권 보호, 부패뿐만 아니라 언제 바뀔지 모르는 규제 환경이 문제였다. 제재 해제는 북한이 이들 문제를 해결하도록 압박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북한은 국제 경제의 일원이 될 수 없다.
둘째, 정경분리는 평양이 즐겨 구사하는 협박 게임의 기회를 줄일 것이다. 만약 2013년 개성공단의 경우처럼 북한이 정치적인 이유로 무역과 투자를 중단한다면 한국 정부가 아니라 전적으로 기업과 북한이 대가를 치르게 된다.
셋째, 개성 이외의 지역에서 일반교역과 위탁가공이 확대되면 개성에 투자가 국한됐을 때보다 북한 경제에 미칠 효과가 훨씬 클 것이다. 북한 관리들이 보다 시장친화적인 모델을 실험해온 나선특별시에서도 투자가 보다 큰 파급효과를 볼 것이다. 제재 해제는 또한 북한을 교통회랑으로 사용하는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전략을 추진할 수 있게 도울 것이다.
넷째, 제재 해제는 다른 대안보다 우월하다. 북한 정부가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관광객들의 안전을 공개적으로 보장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금강산 관광의 재개를 위해 협상에 착수하려고 한다면 뚜렷한 명분이 없다.
대북 지원을 정치적인 협상 카드로 사용하면 안 된다.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면 지원해야 한다. 필요 없으면 지원하지 않으면 된다. 지원을 정치나 이산가족 상봉 문제와 같은 다른 사안과 연계하는 것은 인도주의의 규범에 맞지 않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발견한 북한의 인권 유린이나 소니 해킹을 생각하면 남북 경제 관계를 제재 이전으로 돌리는 것이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의 제재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부르는 데 효과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인정할 때다. 제재 해제는 북한에 대한 양보가 아니다. 제재 해제는 북한으로 하여금 실패한 북한의 대전략(大戰略)을 재고하라는 메시지다. 또 북한 경제를 개방해 남북 통합의 심화로 누릴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누리라는 초대장이다. 미국은 이 과정을 주도할 수 없다. 이니셔티브는 서울에서 나와야 한다.
이 말로 이 글을 끝맺고자 한다. “박근혜 대통령님, 지금은 5·24 제재를 해제할 때입니다.”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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