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상시' 논란도 짜증 나지만 2년간 한 일이 뭐냐는 것이 더 근본적인 국민의 질문
자신의 한계 인정 않고 지금처럼 다 챙기려 들면 최악 대통령 될 수도 있다
- 양상훈 논설주간
문고리 3인방으로 알려진 세 비서관 중에 부패한 사람이 나오면 얘기는 달라진다. 박 대통령도 과거 대통령들처럼 20% 지지율로 외면받을 것이다. 그러나 세 비서관은 주목받고 감시당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 중에도 대통령 임기 말에 엉뚱한 짓을 저지르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으나 정권이 바뀌면 쇠고랑을 차게 된다. 세 사람은 그런 경우들을 봐 와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 지지율은 진바닥까지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과거 같은 고공 행진도 힘들다. 새누리당 소속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을 지낸 한 분은 "최악의 대통령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금쪽 같은 임기 전반기를 아무런 업적 없이 허송했다. 이런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문제는 문고리 3인방이나 십상시가 아니다. '대체 한 일이 뭐냐'는 질문에 답할 것이 궁하다는 이 문제가 본질이다. 하는 일도 없는 정권에서 권력 싸움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국민이 보는 눈이다. 문고리 3인방을 청와대에서 내보내도 국민 피부에 와닿는 성과 없이는 이 시선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신의(信義), 정직 같은 도덕 가치를 내세워서 당선된 사람이다. 개인 기량으로 정책 성과를 낼 수 있는 경험과 경력은 없다. 인생 역정 자체가 그렇지 않았다. 지난 대선 때 많은 사람이 "박근혜가 돼도 걱정이고, 안 돼도 걱정"이라고 했던 것은 이런 사실을 꿰뚫어 본 것이다. 그런 박 대통령이 모든 것을 자신이 다 챙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다.
고위 공직을 지낸 분이 상(喪)을 당했는데 그 상가에 당연히 있을 법한 대통령 조화가 없었다고 한다. 대통령과의 관계도 특별한 사람이었다. 청와대가 모르는 줄 알고 몇 사람이 청와대에 알렸다. 금방 올 것 같았던 조화는 늦어도 너무 늦게 왔다.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사정을 알아보았다. "조화를 보내려면 대통령 허락을 받아야 하는 모양"이라는 게 그들의 결론이었다. 이 말이 믿기지 않았는데 얼마 후에 비슷한 얘기를 또 듣게 됐다. 상을 당한 다른 사람에게 관련 분야 청와대 수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수석은 "대통령님 조화를 보내겠다"고 했다. 조화는 끝내 오지 않았다. 궁금했던 상주(喪主)가 나중에 수석에게 물었더니 "조화는 수석 결정 사항이 아니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조화 보내는 것도 대통령 결재를 받아야 하는 게 사실이라면 다른 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온갖 인사 서류를 다 본다. 자연히 인사 서류가 쌓일 수밖에 없다. 인사가 한정없이 늘어지게 돼 있다. 대통령이 보는 순서대로 발령이 나는데 밑에 있는 인사 서류를 위로 올려 대통령이 먼저 보게 하는 게 큰 청탁이라고 한다. 장관, 국장, 과장이 할 일을 대통령이 하면 정작 대통령이 할 일은 구멍이 날 수밖에 없다. 인사 서류를 다 보는데도 정작 크고 중요한 인선들이 엉망이 된 것이 단적인 예다.
대통령들은 당선되는 순간 자신이 내렸던 과거의 결정들이 다 옳았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어쩌다 우연히 한 번 본 인상만으로 장관 자리를 주는 것도 이런 착각의 산물이다. 박 대통령의 경우엔 이런 자기 과신에 더해 불행한 개인사에 따른 타인에 대한 불신과 의심이 겹쳐져 있다. 그래서 인연을 맺은 소수와만 권력·권한을 공유하게 된다. 나머지 다수는 소외될 수밖에 없고 불만은 점증한다. 역대 정부 장관들 중에 지금처럼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기고 자기 정부에 대해 냉소적인 경우를 보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친·인척 비리라는 치명적 위험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남은 3년 동안 얼마든지 일할 수 있고 나라를 위한 업적을 쌓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지금 한 번쯤 전두환의 물가 안정과 노태우의 북방정책 사례를 돌아보았으면 한다. 두 사람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물가 안정은 경제를 한 단계 끌어올렸고 북방정책은 우리 역사를 바꿨다. 이 두 업적은 대통령이 자기가 모르는 분야를 인정하고 과감하게 권한을 위임한 결과였다. 대통령으로부터 "나는 모르니까 당신이 알아서 해"라는 말을 들은 장관, 수석들은 신명을 바쳤다. 다행히 박 대통령은 장관들을 장기판 졸(卒)처럼 갈아치우는 일은 하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서류들도 치워버린다면 많은 게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