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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人을 위한 나라는 없다

화이트보스 2015. 1. 26. 17:08

老人을 위한 나라는 없다

  • 김홍진 독자서비스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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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1.26 03:00

    
	김홍진 독자서비스센터장 사진
    김홍진 독자서비스센터장

    매일 수십 통 독자 편지가 책상에 쌓인다. 얼마 전 눈길을 끄는 편지가 있었다. 펜글씨로 잘 쓴 편지는 '세밑, 어느 노인이 받은 슬픈 선물'이라는 제목이었다. 김○○씨는 "올 68세 됐고 인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했던 노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근무했던'이라고 한 것은 지난해 말 용역회사로부터 해고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그날 유난히 추웠지만 몸은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고 썼다.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분노가 일었지만 마음을 정리했다. 그런데 주민들과 이별 인사하는 과정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해고 과정을 설명했더니 주민들이 관리소장을 찾아가 부당 해고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소장의 고집을 꺾지 못한 주민들은 김씨에게 노동부에 신고하라며 50여명이 서명한 '해고 반대' 연판장을 써줬다.

    김씨는 그 과정에서 해고 이유를 알게 됐다. 근무 기간이 1년 넘는 경비원이 그만두면 퇴직금을 줘야 하기 때문에 10개월 근무한 김씨를 퇴직금 지급 대상이 되기 전에 해고했다는 것이다. 저가(低價) 입찰한 용역회사가 돈을 벌충하는 편법이었다. 경비원 한 명 해고하면 연차수당 등을 합쳐 150만~200만원이 남고 그 돈으로 관리소장과 동대표 회장 등을 위한 명절 선물비·회식비 등에 쓴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이런 부정을 밝히고 부도덕한 용역회사, 관리소장 등 관련된 사람들을 처리해서 노인들의 유일한 직장인 경비원들이 '예고 없이 받는 슬픈 선물'이 없어지길 바란다"고 썼다. 김씨는 "이 편지도 아파트 주민들이 독려해서 쓴 것"이라며 "경비직은 영혼과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지만 따뜻한 주민도 많다"고 했다.

    김씨의 사연을 읽고 그 후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 전화를 걸어봤다. 김씨는 "노동부에 가서 신고했더니 용역회사 해고는 속이 보이는 짓이지만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다는 답변만 듣고 돌아왔다"며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어 삶의 의욕까지 떨어진다"고 했다.

    그의 푸념을 들으면서 미국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생각났다. 연쇄살인범이 돈가방 가진 사람을 찾기 위해 주로 노인인 주민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줄거리로 인간에게 불행은 예측할 수 없게 찾아온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예고 없이 받은 슬픈 선물'이라는 김씨의 말이 중첩돼 떠올랐다.

    아파트 경비원의 임금을 최저임금의 90%선에서 주던 것을 올해부터는 100%로 올려주면서 인건비 부담이 늘어 전국의 아파트 경비원 25만명 가운데 4만~5만명이 대량 해고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아직은 '무급 휴식' 등으로 비용을 줄이며 해고를 보류하는 곳이 많다고 한다. 생계 보장을 해준다며 최저임금을 올렸는데 오히려 해고 불안에 떨게 됐고 근무시간 단축 등으로 월급이 줄게 됐으니 이 또한 '예측 못한 불행'인가.

    하지만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최근 부산의 한 아파트는 경비원 22명의 임금을 올려 재고용했고, 서울 성북구의 아파트 주민대표들은 "관리비를 줄이려고 경비원을 해고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라가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주민이 나서서 상생(相生)의 길을 찾는 수밖에 없다. 김씨 해고를 안타깝게 여기며 도와줬던 그 아파트 주민들처럼…. 배려하는 마음만이 약자가 당하는 '예측할 수 없는 불행'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