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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가구 단지 1884만원에 덤핑 … 경비·청소로 5억 챙겨

화이트보스 2015. 2. 9. 11:43

1700가구 단지 1884만원에 덤핑 … 경비·청소로 5억 챙겨

[중앙일보] 입력 2014.10.15 01:49 / 수정 2014.10.15 05:37

관리비 새는 아파트 <상> 3각 커넥션 현장
주민대표가 일감 몰아준 의혹
자회사는 불량자재로 배관공사
주민들 관리비 부담 늘어나
"관리업체, 용역·공사 제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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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의 A아파트. 1700가구 규모인 이 아파트 단지 입주자대표회는 지난해 12월 계약 기간이 1년가량 남아 있던 아파트 관리업체를 갑자기 교체했다. 아파트 관리를 새로 맡은 건 B사였다. B사는 불과 계약 석 달 전 주택관리업체로 등록한 회사였다. 이 업체가 받기로 한 위탁수수료는 월 157만원에 불과했다. ㎡당 관리비용이 6원인 셈이었다. 이처럼 적은 수수료만 받고 어떻게 수지 타산을 맞출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은 다른 곳에 있었다.

 취재팀이 입수한 계약 서류에 따르면 B사는 관리업체로 선정되기 열흘 전 이 아파트의 경비(2억7400만원), 청소(2억5400만원), 정화조 청소(300만원), 소독(930만원) 등 용역을 따냈다. 용역비만으로 1년에 5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 것이다. 용역 입찰 과정에 10개가 넘는 업체들이 참여했지만 모두 B사가 수주를 했다. B사보다 1000만~2500만원씩 적은 금액을 써낸 업체도 있었지만 B사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가격 경쟁에선 밀렸지만 입주자대표들이 ‘사업제안서’ ‘수행능력’ 등 평가 항목에서 B사에 높은 점수를 줬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 주민인 최모(46)씨는 “입주자대표가 말 잘 듣는 관리업체를 선정하며 미리 용역 계약까지 몰아준 의혹이 있다”며 “경비비·청소비 등이 늘어나면서 결국 주민들의 관리비 부담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다른 주민들도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데다 관리 경험도 별로 없는 업체가 대부분의 용역을 따낸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 회장은 “기존의 관리업체가 특약사항을 어겨 계약을 해지했다”며 “적격심사제에 의해 새 업체를 공정하게 선정한 것으로 특정 업체에 특혜를 준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600여 가구가 거주하는 대전의 C아파트의 경우 관리업체의 자회사가 용역 공사를 맡으며 갈등이 불거졌다. 자회사는 지난 7월 아파트 난방 배관 교체 공사를 수주했다. 입찰 과정에서 공사 예정가(12억5000만원)를 크게 밑도는 9억8000만원을 써내 공사를 따낸 것이다. 다른 입찰 참여업체보다 1억원이나 낮게 써냈다.

 주민 민남기(50)씨는 “누군가로부터 내부 정보를 전해 듣고 공사를 수주한 정황이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민씨는 “기준에 맞지 않는 자재가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며 “공사업체가 관리업체의 관계사이다 보니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아파트 관리소 측은 “전자입찰이라 자회사라고 해서 일감을 몰아줄 수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문가들은 기형적인 아파트 위탁관리 시스템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건국대 심교언(부동산학) 교수는 “자선사업이나 다름없는 저가 입찰로 계약을 따내면 비리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아파트 관리를 담당하는 서울시의 한 공무원도 “과거엔 입주자대표나 관리소장의 단독 비리가 많았지만 요즘엔 용역 입찰 과정에서 입주자대표와 관리회사가 결탁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 관리업체 입찰에 ‘수수료 0원’을 써내는 경우까지 있었다. 아파트비리척결본부 송주열 대표는 “1000가구의 아파트를 관리하면서 수수료로 월 29만원을 받는 업체도 있고, 심지어 0원 입찰을 하는 업체도 있다”고 말했다. “최저낙찰제 대신 적격심사제를 도입한 후 이 같은 저가입찰 관행이 개선되고 있는 걸로 안다”는 국토교통부 관계자의 설명은 현장 상황과 거리가 있다.

 주먹구구식 관리가 관리비 상승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서울의 D아파트 단지는 최근 24년간 아파트를 관리해온 업체를 교체하기 위해 입주자 투표를 했다. 해당 업체는 대형 주택관리회사였지만 공용전기료 등 관리비가 춤을 추는 등 관리 소홀이 계속해서 발견됐다. 예를 들어 지난 3월 공용전기료(4만6071㎾ 사용)가 490만1940원이었는데 7월(4만6219㎾)에는 110만400원으로 떨어졌다. 전기 사용량이 비슷한데도 전기료는 25% 수준으로 급감한 것이다. 주민 김모(57)씨는 “관리소장이 바뀌고 공용전기료가 지나치게 많다는 민원이 제기되자 전기료가 확 낮아졌다. 그동안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관리비 갈등을 막기 위해선 관리회사가 전문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관리회사가 아파트 특성에 맞게 시설이나 인원 등을 체계적으로 운영하면 관리비를 상당 부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입주자대표를 하면서 가구당 100만원씩 나오던 관리비를 40만원으로 줄였던 경험을 토대로 『아파트관리비의 비밀』을 썼던 김윤형(43·의사)씨는 “관리회사의 방만한 운영과 부족한 노하우 때문에 관리비가 과다 산출되는 것 등을 바로잡아 관리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한상삼(행정학) 교수는 “위탁관리업체와 관계사들의 하자보수 용역 수주를 제한해 용역 업무가 잘 수행되는지 관리·감독에 주력하게 해야 한다”며 “관리업체가 애견 돌보미, 커튼 설치 등 각종 생활민원 서비스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도록 해 위탁관리의 전문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강기헌·안효성·윤정민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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