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3.04 03:00
이 나라가 부정 청탁과 불법 금품 수수 문제로부터 졸업할 수만 있다면 김영란법보다 더 강력한 조치도 취해야 한다. 애초 김영란법을 만들자는 의견이 나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날 국회를 통과한 법은 출발부터 위헌(違憲) 논란에 휩싸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이 법의 통과를 주도한 여야 지도부와 여야 협상 책임자들이 이런 걱정과 불만을 쏟아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이날 "위헌 소지가 있는 법을 여론에 밀려 통과시킨다"고 말했다. 조해진 원내 수석부대표도 "우려되는 조항들을 다 보완하지 못한 채 넘어가는 상황"이라고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안규백 원내 수석부대표 역시 "(이 법은)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최종 심의를 맡았던 야당 소속 이상민 국회 법사위원장은 '말도 안 되는 법'이라고도 했다. 일부 의원들은 대놓고 "헌법재판소로 가면 위헌 판결을 받을 게 분명하다"고 했다. 여야가 김영란법을 통과시키면서 '이 법은 잘못됐다'고 공개적으로 낙인찍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국회가 '위헌 입법'을 강행해 놓고선 '헌재 판결을 받아보자'는 황당한 말을 해대는 판이다. 이 법이 위선적인 국회의원들에 의해 얼마나 졸속으로 처리됐는가를 보여주는 증거다.
이날 국회를 통과한 김영란법의 문제가 무엇인지는 여야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이 법의 본래 취지는 기존 법으로는 처벌하기 힘든 공직자의 부정과 금품 수수 등을 막아보자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인허가 등에서 막강 권한을 가진 공직자가 민간 업자 등으로부터 식사와 향응, 술자리, 골프 대접, 금전적 후원 등을 받아도 법정에서 대가성(代價性)을 입증하지 못하면 처벌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나온 게 이 법이었고 원안(原案)은 적용 대상을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직자 또는 준(準)공직자로 한정했다. 그런데 국회 논의 과정에서 슬그머니 민간 언론과 사립학교 이사장·교원 등을 집어넣었다. 이를 위해 여야는 이 법의 적용을 받게 되는 공영 방송인 KBS, EBS, 공립학교와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논리를 댔다.
언론도 불법 금품·접대를 받으면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언론의 부패 문제는 언론 스스로 해법을 찾도록 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국민 세금에서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고 공직자처럼 인허가 권한을 쥐고 있지도 않은 민간 언론을 굳이 김영란법에 포함시킨 결과 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언론의 취재·보도 과정에 개입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김영란법이, 검찰·경찰이 비판 언론에 대해서까지 무제한의 수사권을 행사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는 판이다.
여야는 이번에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는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로 한정했고, 이 법의 적용 시기를 이번 국회 임기(내년 5월)가 끝나는 1년 6개월 뒤로 미뤘다. 이런 수정에는 나름의 법적·현실적 이유가 있다. 그러나 다른 위헌·위법 조항은 그대로 둔 채 여야가 이 부분에만 유독 의기투합했다. 국회의원 자신들에게 미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공직 부패 척결이라는 대의(大義) 때문에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김영란법을 여야가 훼손한 꼴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