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3.20 03:00
일본 연립 여당이 마련한 방안에 따르면 일본 자위대는 앞으로 '미군 지원 활동'이란 이름 아래 세계 어디로도 출동할 수 있게 된다. 현재는 일본 주변 지역에서만, 그것도 전장(戰場)에서 떨어진 후방 지역으로 자위대의 미군 지원 활동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이제 이런 속박을 풀고 일본의 안위에 영향을 미친다고 일본 정부가 판단하면 세계 어디든 출병하겠다는 말이다. 또 해외 파병(派兵) 때마다 특별법을 따로 만들어야 했던 것도 바꿔서 언제든지 파병이 가능하도록 하는 '항구(恒久)적 파병법'도 새로 만들기로 했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수도 도쿄의 중심부인 방위성 청사 지하에 있는 '중앙 지휘소'에 미군들이 상주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자위대 최고 사령부인 중앙 지휘소에 미군이 들어간다는 것은 두 나라 군대가 한 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미·일이 4월 중 개정을 목표로 하고 있는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두 나라는 전 세계에서 연합 작전이 가능한 수준에 이른다. 미·일 동맹이 '두 나라 한 몸' 단계로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는 평가를 결코 과장됐다고 하기 힘든 상황이다. 게다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오는 4월 말쯤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역대 일본 총리로는 처음 미국 연방의회에서 연설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한·일 역사 문제에서 가장 퇴행적인 입장을 보여온 아베 총리가 외교적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광복 70년이자 일제(日帝) 패망 70년인 올해 미·일 동맹은 지금까지와는 성격과 차원이 다른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미·일은 아시아와 세계에서 중국을 겨냥하는 강력한 축(軸)이 될 것이다. 현재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만들어 미국 주도의 국제금융 질서에 도전하려 하고 있고, 미·일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 중국을 포위하려 하고 있다. 이 둘은 성격이 다르지만 미·일과 중국 사이에 경제적 패권 다툼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사실을 전 세계가 실감하게 됐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팀이 이 같은 동북아 격랑(激浪)을 헤쳐나갈 전략과 구상, 실력과 세기(細技)를 갖췄는가 하는 점이다. 최근 고(高)고도 요격미사일 사드(THAAD)의 주한미군 배치 문제와 AIIB 가입을 놓고 이 정부가 보여준 모습을 보면 국민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 정부 외교·안보팀의 거듭된 실기(失機)와 실책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한민구 국방장관을 비롯한 사드 문제의 주무 부처인 국방부는 '전략적 모호성'이란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이 말을 공개적으로 입에 올리는 순간 전략적 모호성은 대한민국이 지금 미국과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전 세계에 공표한 것이나 다름없다.
국방부만이 아니라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김관진 위원장을 비롯해 윤병세 외교부 장관, 주철기 외교·안보수석도 국민을 안심시킬 리더십이나 소신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사드는 미국 뜻을 들어주고, AIIB는 중국이 원하는 대로 해 주면 되지 않느냐는 식의 자조(自嘲)적인 얘기마저 번지고 있다. 이래서는 미·중 어느 쪽의 신뢰도 얻지 못할뿐더러 한국은 가볍게 대해도 되는 존재로 격하될 위험이 크다.
미·중을 상대하는 우리의 전략이 일본과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예전과는 차원이 달라진 미·일 동맹을 보면서 과연 이 정부가 한·미 동맹 관리와 대(對)중국 관계라는 복합(複合) 방정식을 풀어낼 비전과 실력이 있는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의구심에 대답해야 할 최종 책임자는 박 대통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