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횡단 철도의 꿈
박중현 경제부장
입력 2015-05-05 03:00:00 수정 2015-05-05 03:00:00

열차에서 내린 두 명의 식민지 청년을 맞은 건 일본대사관 직원의 퉁명스러운 반응이었다. 도쿄에서 출발해 서울, 하얼빈을 거쳐 시베리아 횡단열차 등을 갈아타며 보름여 만에 독일 베를린역에 막 내린 참이었다. 눈물이 솟구쳤지만 참았다. 그래서 더욱 심장이 터져라 달렸다. 가슴에 붙은 일장기가 서러웠다. 그래도 손기정, 남승룡 선수는 1936년 개최된 베를린 올림픽에서 고국에 최초의 마라톤 금, 동메달을 안기며 꿈을 이뤘다.
최근 79년 만에 공개된 손 선수의 시베리아 횡단열차 티켓은 분단으로 섬 아닌 섬이 돼버린 한국이 유라시아 대륙의 일부란 점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한반도와 대륙을 연결했던 철도는 1945년 9월 11일에 서울을 떠나 신의주에 도착한 열차를 마지막으로 끊겼다.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총 9288km의 시베리아횡단철도(TSR)는 세계에서 제일 긴 직통 열차다. 25년에 걸쳐 건설된 이 철도에는 동아시아로 세력을 확장해 제정 러시아를 강국으로 키우려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슬픈 꿈이 담겼다. 황태자 때였던 1891년 철도 착공식에 참석했던 그는 완공 4개월 후인 1917년 2월 혁명으로 폐위됐고 이 철도를 타고 우랄산맥 근처 예카테린부르크로 유폐돼 그곳에서 살해됐다.
한반도종단철도(TKR)를 시베리아횡단철도, 중국횡단철도와 연결해 부산에서 유럽까지 철도를 잇는 박근혜 대통령의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 구상이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23일 체코에서 열린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사장단 회의에 제휴회원 자격으로 참석한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러시아, 중국 관계자들을 설득해 한국이 이 기구의 정회원으로 가입하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북한도 반대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때였던 2003년 가입하려다 북한의 반대로 실패했던 걸 고려하면 큰 변화다. 6월 초 몽골에서 열리는 OSJD 장관회의에서 한국의 정회원 가입 여부가 결정된다. 유라시아철도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이 기구에 가입하면 대륙 철도 연결의 기회가 커진다.
시베리아 유연탄을 러시아 하산에서 북한 나진까지 철도로 실어 날라 나진항을 통해 한국에 들여오는 ‘나진-하산 프로젝트’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하산∼나진∼원산은 철도로 이어져 있다. 남북관계가 극적으로 개선돼 끊어진 서울∼원산 사이 경원선이 복원된다면 부산항을 시발점으로 하는 대륙철도의 맥이 한반도로 연결된다.
재·보궐선거가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지만 대통령은 요즘 편치 않다. 5년 임기의 채 절반이 안 지났는데도 정국의 중심이 당으로 옮겨가며 레임덕이 벌써 찾아온 분위기다. 그런 박 대통령에게 그가 꿈꾸는 대륙횡단 철도의 연결은 남북관계를 개선하면서 정국의 주도권도 되찾는 최고의 카드가 될 수 있다.
박중현 경제부장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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