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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머 키운 誤報에… 義人, 두 번 죽다

화이트보스 2015. 7. 8. 11:17

루머 키운 誤報에… 義人, 두 번 죽다

입력 : 2015.07.08 03:00

"세월호 의인 김홍경씨는 구조 않고 동영상만 찍어" 일부 언론, 사실과 다른 보도
他매체들이 그대로 옮기면서 "가짜 의인" 악성 댓글 달려

엄보운 사회부 기자 사진
엄보운 사회부 기자

작년 4월 세월호 참사 당일 안산 단원고 학생 20여명을 구해 '세월호 의인(義人)'으로 불리던 김홍경씨가 병마와 싸우다 지난 2일 세상을 떠났다. 세월호 사고 이후 위암 4기 판정을 받고 투병해온 김씨는 세상을 떠나면서 "한국은 아직 살 만한 나라"라며 주위에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한 달 전 기자가 국립암센터에서 만난 고인(故人)은 치료비조차 구하지 못한 채 죽음을 기다리는 자신의 처지에 절망하고 있었다. 세상의 무관심에 절망을 넘어 분노하던 김씨가 한 달 사이 감사의 마음을 갖고 세상을 떠날 수 있었던 건 '의인이 쓸쓸히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이름 모를 이웃들의 온정 덕분이었다.

하지만 김씨의 부고(訃告) 기사에는 일부이긴 하지만 고인을 가리켜 '가짜 의인' '후원금을 노린 거짓말쟁이'라는 악성 댓글이 달리고 있다. '세월호 사고 당시 배에 남아 학생들을 구조한 건 김동수(51)씨이고, 고인은 구조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게 요지다. 이 말을 처음 한 사람이 또 다른 '세월호 의인'인 김동수씨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런 주장은 더 그럴싸하게 퍼졌다.

하지만 이는 일부 언론의 사실과 다른 보도와 이를 사실 확인 없이 그대로 옮겨 쓴 일부 매체가 만들어낸 루머다. 이 루머는 절망 끝에 희망을 보고 떠난 고인을 부관참시(剖棺斬屍)하고 있다.

이 루머는 한 언론사가 지난달 19일 고인과 관련한 기사에서 "김동수씨가 '김홍경씨는 당시 동영상만 찍고 구조 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고 쓴 게 한 단초가 됐다. 이 문장은 지금 해당 기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해당 언론사가 기사에서 이 문장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이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다는 김동수씨는 기사가 나간 직후 본지 통화에서 "(고인을 위한 모금에 나선) 고양시의 SNS 담당자가 페이스북에 김홍경씨를 소개하면서 내가 나온 동영상을 올려뒀기에 '동영상 속 파란 바지의 의인은 김홍경이 아니라 김동수'라고 주장했을 뿐 '김홍경씨가 동영상만 찍었다'고 말한 적이 없다"며 "그 언론사 기자에게 수정을 요구했다"고 했다. 통화 후 몇 분이 지나자 김동수씨의 말대로 그 기사에서 해당 문장이 빠졌다. 하지만 문제가 된 문장이 지워지기 전에 일부 인터넷 매체들은 이 기사를 받아쓰다시피 했다. 이 오보들은 지금도 포털 사이트를 떠돌며 '김홍경씨는 가짜 의인'이라는 루머의 근거로 쓰이고 있다.

김홍경·김동수 두 사람은 세월호 참사 초기부터 '의인'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한겨레신문은 작년 5월 3일 고인을 세월호 의인이라며 4개 면(1·3·4·5면)에 걸쳐 그의 이야기를 다뤘다. 오히려 본지는 김동수씨의 삶을 여러 차례 조명했다.

김홍경·김동수 두 사람도 참사 때 서로가 했던 의로운 행동을 인정한다. 김동수씨는 "김홍경씨가 커튼을 찢어 만든 로프로 아이들을 구한 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김홍경씨도 생전에 "김동수씨의 구조 장면 동영상은 내가 찍었다"며 김동수씨의 행적을 증언해왔다.

참사 초기 의인으로 조명됐던 김홍경씨가 세상에서 잊힌 건 그가 암 투병에 들어가면서 사회적 목소리를 낼 수 없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는 작년 말 위암 4기 진단을 받고 투병에 들어가면서 민간단체에서 주겠다는 상(賞)도 사양했다. 고인은 생전 인터뷰에서 "단원고 희생자 부모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나는 비켜 있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조용히 떠난 그를 일부 세상 사람들은 지금 '가짜'라고 매도하고 있다. 그가 죽기 한 달 전 세상에 대해 절망하며 "한국에선 목소리가 커야 되는 것 같다. (조용히 있었던 게) 후회된다"고 한 말을 저 세상에서 되뇌지 않을까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