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7.27 03:00 | 수정 : 2015.07.27 10:20
'출판 女王' 박은주 前 김영사 사장, 잠적 1년 2개월 만에 '김영사 미스터리' 폭로
朴 前사장, 김강유 김영사 회장을 350억 배임·횡령 고소
"1984년부터 20년간 용돈 20만원으로 생활…
회사일 손뗐다던 '敎主', 형 회사 불법지원 강요
재산포기·횡령 각서 들이대며 나에게 서명하라고 협박"
의문의 사퇴, 신흥 종교 관련설, 횡령 의혹, 내연남 소문 등 출판사 '김영사 미스터리'의 주인공 박은주(58) 전 김영사 사장이 26일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2014년 5월 김영사 사장직과 500개 회원사로 구성된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직을 중도 사퇴하고 언론 접촉을 끊은 뒤 1년 2개월 만의 일이다. 박 전 사장이 지난 23일 김강유(68·김정섭에서 개명) 현 김영사 대표이사 회장을 총 350억원 규모의 배임, 횡령,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사실도 이번에 처음 확인됐다.
32세부터 25년간 김영사 사장이었던 박 전 사장은 대표적인 스타 출판인. 김 회장은 1989년 그를 사장으로 임명한 김영사 대주주로, 용인에 법당(김 회장 주장은 단순한 금강경 공부 모임)이 있는 수행 단체의 리더이기도 하다. 박 전 사장은 "김영사에 들어간 직후인 1984년부터 2003년까지 20년 동안 부모님도 버리고 법당에서 숙식을 하며 출퇴근했다"면서 "그 20년 동안 월급, 보너스, 주식배당금 전액 등 내가 번 모든 돈 총 28억원을 김강유 교주에게 바쳤다"고 주장했다. 박 전 사장은 '교주'(敎主)라는 표현을 썼다.

―김 회장과 당신의 관계는.
"사제(師弟)다. 나는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 진학을 꿈꿀 만큼 불교 공부에 관심이 많았다. 김 회장은 백성욱 박사(이승만 대통령 시절 내무부장관을 지낸 불교 지도자)의 제자였고, 나는 김 회장에게 '금강경'을 배웠다. 1983년 김 회장 개인 소유인 김영사의 편집장으로 입사했다. 김 회장은 내가 공부 인연이 깊은 사람이니 법당에서 수행정진하라고 했다. 그때 짐 싸들고 법당으로 들어갔고, 부모님께 보내던 월급을 모두 여기 바쳤다. 김 회장과 공동 교주인 여성 A가 나를 기도방에 앉혀놓고 '이곳은 몸과 마음과 재산 모든 것을 바치는 곳'이라고 해 그대로 따랐다."
―모든 돈을 바치면 생활은.
"용돈 20만원을 법당에서 받았다. 2003년 법당을 나올 때까지. 그곳에서 먹고 잤으니 돈 들 일도 없고."
―당신을 사장으로 임명한 사람도 김 회장 아닌가.
"내가 입사했을 때 김영사는 연매출 1억~2억원 수준의 개인 회사였다. 1989년 대우 김우중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국내 최초의 밀리언셀러가 됐다. 언론의 주목을 받자 김 회장은 '박은주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나는 수행을 하러 간다'고 공표하라고 했다. 그때는 물론 고마웠다. 하지만 내가 사장을 맡은 후 출판사는 고속 성장을 했다."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박 전 사장이 법당을 나오고 '보시'를 중단한 뒤 그의 연봉은 큰 폭으로 증가한다. 1994년 8000만원, 2002년 2억 수준이었는데, 2003년에는 4억이었고, 2008년부터 2013년까지는 연 8억원을 받았다. 금융권에서도 A급 회사 CEO에게나 가능한 연봉이다.
―출판사 사장으로는 이례적인 액수다.
"2009년에는 연매출 526억, 당기순이익 166억을 달성했다. 물론 연봉이 높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를 벌었다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나."
하지만 2010년 이후 김영사 매출과 순이익은 출판계 불황, 히트작 감소 등으로 큰 폭 감소한다. 특히 2012년과 2013년은 적자를 냈다.
―적자를 낸 출판사 CEO가 연봉 8억을 받는 건 좀 과해 보이는데.
"내 연봉은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 주주총회에서 정한다. 2008년인가 주주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정했고, 이후에도 이의가 없었다."
―2003년 5월 법당을 나온 이유는.
"김 회장이 유부녀 B와 동거를 시작하면서 2003년 법당이 깨졌다. 공동 교주 A와 김 회장은 법당을 팔아 절반씩 나눴고, 나는 20년 만에 법당을 나와 부모님 집으로 돌아갔다."

―갈등이 시작된 계기는.
"2006년에 법당에 돌아온 김 회장은 내게 돈을 요구했다. 비자금을 만들어서 2008년부터 매월 1000만원씩 송금했다. 김 회장의 월급은 또 별도였다. 김 회장의 개인 기사 월급도 김영사에서 나갔다. 물론 김 회장은 회사에 전혀 나오지 않았다. 또 망해가는 형님 회사를 지원하라고 했다. 한마디로 블랙홀이었다. 김영사에서 그 블랙홀을 인수하라고 강요했고, 결국 그 회사에 수십억을 쏟아부었다. 손을 떼는 것이 좋겠다고 충언하자 마찰이 시작됐다."
―사장직은 왜 중도 사퇴했나.
"김 회장이 2013년 12월 나를 부르더니, 회사를 반으로 축소시키고 가회동 김영사 건물(소유 박은주) 팔자고 하더라. 출판사는 파주로 옮기자면서. 어렵겠다고 하자, '주×아리' '대×리 컸다' 등의 고함을 치며 죽일 것처럼 달려들었다. 김영사는 내가 40%, 김 회장과 그의 형제자매, 신도들이 합쳐서 약 60%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주식회사다. 2014년 3월 주총에서 김 회장이 대표이사 회장이 됐고, 김 회장의 형을 감사로, 법당에서 파견한 신도 C를 부사장으로 임명했다. 새 경영진의 엄포와 협박으로 심장마비에 걸릴 지경이었다."
―김 회장 측은 당신이 200억대 횡령을 했다고 주장한다.
"김 회장에게 준 비자금과 형님 회사에 불법 지원한 게 대략 70억이다. 법인 재산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나머지 부분은 꾸며서 만들고 부풀린 것이다. 하도 억울해서 10년 만에 용인의 법당을 찾아가니, 미리 만들어 두었던 김영사 주식 포기 각서와 가회동 사옥 재산 포기 각서를 꺼내며, 서명을 하라고 강요했다. 13가지 배임 횡령 리스트를 들이대며 강제 서명을 시켰다. 협박과 회유와 공갈이 반복됐다. 심지어 내게 모욕을 주기 위해 3명의 내연남까지 거론했다. 모두 터무니없는 얘기다."
―잘못이 없으면서 재산 포기 각서에 서명하고, 배임 횡령죄를 시인했다니.
"처음부터 스승과 제자 관계로 그를 만났다. 우리 법당에서는 복종을 미덕으로 한다. 불교는 옛날부터 스승과 제자 사이를 부모 자식보다 더한 관계로 생각했다. 부모는 육신을 낳아준 사람이지만, 스승은 인간 되게 만들어준 사람이라 스승을 진짜 부모로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부모를 버리고 김 회장을 따라 법당으로 들어가 20년을 산 것이다. 법당에서는 그를 '살아있는 부처님'으로 떠받들었다. 그에게 삼배를 해야 했고, 그의 말을 들으려면 무릎 꿇고 두 손 모으고 들어야 했다. 외부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사퇴와 합의서 작성 후에도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와서 고소를 하는 이유는. 자신의 잘못은 없나.
"김영사 경영진이 바뀌고 나서 작년 10월 3명의 직원을 208억을 횡령했다며 형사고소한 일이 있었다. 올해 4월 그 사건이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그러자 김영사 측에서 내가 그들 편을 들어줘서 그렇게 됐다며 항고하겠다고 협박 문자가 왔다. 주식, 김영사 건물, 퇴직금 등 모든 것을 포기하면 보상금을 주겠다고 약속해서 합의서를 썼는데, 이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내가 고소했으니, 그들도 나를 이제 배임 횡령죄로 고소하겠지. 나는 고의적으로 회사 자금을 빼거나, 내 개인적으로 유용한 일이 없다. 내 과실이 나온다면 나도 법의 심판대 위에 서겠다."
☞박은주 사장
32세에 김영사 사장으로 발탁된 뒤 승승장구하며 '출판계의 미다스의 손' '출판 여왕' 등으로 불렸다. 25년간 사장을 했고, '닥터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먼나라 이웃나라' 등 수많은 밀리언셀러를 만들었다.
☞김영사
'정의란 무엇인가'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출판사에서 이런 송사가 벌어졌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1983년 설립되어 지금까지 3000여종의 책을 펴냈다. 문화부 추천도서, 간행본 윤리위원회 권장도서, 이달의 읽을 만한 책 등 가장 많은 추천 도서를 가진 출판사 중 한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