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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 농부 된 생물 선생님 … 먹거리 스스로 키우는 삶 멋지죠

화이트보스 2015. 9. 8. 17:40

베란다 농부 된 생물 선생님 … 먹거리 스스로 키우는 삶 멋지죠

[중앙일보] 입력 2015.09.08 00:43 / 수정 2015.09.08 00:45

‘스타도시농사꾼’ 은상 장진주씨
채소, 삼겹살보다 비싸다 뉴스에
종이컵 놓고 재배 … 파워 블로거로

서울시가 주최한 ‘도시농사꾼 퍼레이드’에서 ‘베란다 농업’으로 은상을 수상한 장진주씨. [프리랜서 고승범]

“다이어트가 저를 도시농부로 만들었습니다.”

 지난 2일 서울시가 주최한 ‘스타도시농사꾼 퍼레이드’에서 ‘베란다 농업’으로 은상을 받은 장진주(32·여)씨는 대학 졸업 전까지만 해도 손에 흙 한번 묻혀본 적 없었던 전형적인 도시 여자였다. 대학에서 화학생명공학을 전공한 그가 택한 첫 직업은 생물 강사.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 대치동 학원 등에 나가 고3 학생들과 수능 문제집을 푸는 게 그의 일이었다. 온갖 식물 이름은 줄줄 외웠지만 실제로 그 식물을 본 것은 교과서와 식탁 위가 대부분이었다.

 장씨가 자신의 아파트 베란다에 토마토·배추 등 작물을 키우는 도시농부가 된 건 다이어트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됐다. 업무 특성상 밤늦게까지 강의가 이어지는 터라 자연스럽게 야식에 손을 대면서 체중이 급격히 불었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장씨는 하루 다섯 번씩 채식으로 포만감을 유지해 식사량을 줄이는 이른바 ‘채소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몇 달간 실천한 끝에 체중은 점차 줄었다. 하지만 장마철과 함께 채소값이 폭등하면서 위기가 닥쳤다.

 “채소가 삼겹살보다 비싸다는 뉴스가 연일 나오는데 돈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라리 제가 직접 키워보자는 생각에 2008년 베란다에 종이 커피잔을 놓고 거기에 토마토를 심은 게 시작이었죠.”

 씨를 뿌린 뒤 2주 만에 토마토 떡잎이 얼굴을 내밀었다. 하나의 생명을 싹 틔웠다는 자신감에 치커리·청경채·상추·파프리카 등 자신이 좋아하는 채소들의 씨앗을 심었다. 베란다는 순식간에 작은 온실이 됐다. 그는 자신이 농사 짓는 과정을 꼼꼼히 기록했고 이를 생물학 지식과 함께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2012년에는 블로그 글을 모은 책 『열두 달 베란다 채소밭』을 펴내기도 했다.

 “햇빛과 산소, 무기염분이 합성되는 과정이 광합성이잖아요. 무기염분에 해당하는 게 비료이기 때문에 비료를 주는 거라고 원리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베란다 농업에 대해 알렸죠. 많을 때는 블로그 방문자 수가 하루에 10만 명이 넘기도 했습니다.”

 학원 강사를 그만두고 현재 이탈리아 요리 유학을 준비 중인 장씨는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을 베란다 농업의 매력으로 들었다. 베란다에 한 뼘만 한 공간만 있어도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은 마당 가진 사람보다 베란다 가진 사람이 더 많은 도시잖아요. 사람들에게 마트에서 사먹은 채소의 씨앗과 테이크아웃 커피잔, 소량의 흙만으로도 수확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걸 더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멋지지 않나요. 먹거리를 스스로 재배하는 삶의 방식이요.”

김나한 기자 kim.nah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