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민족사의 재발견

부인 헌 치마 잘라 쓴 글… 정약용 ‘하피첩’ 첫 공개

화이트보스 2015. 10. 13. 17:04

부인 헌 치마 잘라 쓴 글… 정약용 ‘하피첩’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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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느질 흔적 13일 국립민속박물관이 공개한 다산 정약용의 하피첩 3첩 중 2첩(위 사진). 바느질한 흔적(오른쪽)이 보인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국립민속박물관, 지난달 구매
경매서 7억5000만원에 낙찰

표지에 박쥐 문양 등 3개의 첩
“1810년 첩 양식 그대로 보존”


지난 9월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이 서울옥션 경매에서 7억5000만 원에 사들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의 하피첩(霞 帖·보물 제1683-2호)이 13일 공개됐다.

하피첩은 다산이 1810년 전남 강진 유배 시절 부인 홍 씨가 보내온 헌 치마를 잘라 만든 서첩으로, 두 아들에게 전하는 당부의 말이 적혀 있다.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건 때 압류돼 지난달 경매됐고, 개인이 아닌 공공 박물관이 거액에 낙찰을 받아 화제가 됐다.

이날 국립민속박물관은 인수받은 하피첩을 언론에 공개하고 내년 2월 중 대국민 특별전시회를 연다고 밝혔다. 박물관에 따르면 그동안 개인이 소장했던 하피첩은 현재 표면 곰팡이, 물 얼룩, 접착이 떨어져 발생한 들뜸, 회장(回裝·가장자리 가는 꾸밈) 분리 등이 확인됐다. 따라서 전시회까지 약 4개월간 보존처리 및 복제과정이 필요하다.

‘하피’란 다산이 부인의 홍군(紅裙·붉은 치마)을 붉은 노을(霞)에 비유해 아름답게 표한 것으로, 애달픈 부부애를 느낄 수 있다. 다산은 여기에 두 아들 학연(1783∼1859)과 학유(1786∼1855)에게 편지를 써, 부부의 정 위에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을 담았다. 또 치마를 서첩으로 만드는 파격적인 면모도 보인다. 하피첩에는 선비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 남에게 베푸는 삶의 가치, 삶을 넉넉하게 하고 가난을 구제하는 방법 등 자손에게 남기고 싶은 다산의 가치관이 오롯이 담겨 있어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박물관 문화재 보존팀에 따르면 하피첩은 3개의 첩으로 구성됐는데, 한 첩의 표지는 박쥐와 구름 문양이 장식된 푸른색 종이로, 나머지 두 첩은 미색 종이로 장황(裝黃·서화의 표지 장식)이 돼 있다. 3점 모두 표지 안쪽에 붙는 면지를 붉은색 종이로 사용하고 있어 같은 시점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첩 내부 직물은 평직의 비단이며, 바느질했던 흔적도 발견된다. 보존팀은 “제작 후 한 번도 개장(改裝)된 적이 없어 1810년 당시의 첩 장황 양식 등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은 “다산이 남긴 말에는 현대의 물질만능주의, 가족해체 등을 경계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 역사적 유물 이상의 가치가 있다”며 “국민의 것이 된 하피첩을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용 계획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