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동 / 경제산업부 차장정부가 오는 12월 내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산업 전략(industrial strategy)을 내놓을 예정이다. 새로운 산업 전략을 내놔야겠다는 발상의 출발점은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최 부총리가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이르면 12월 말, 늦어도 내년 1월 초에는 현직에서 물러날 예정이기 때문에 새로운 산업 전략이 실제로 추진될지는 확실치 않지만, 적어도 현재 정부의 입장은 그렇다.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날지 모르겠지만,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것 중에서 매우 의미 있는 정책 가운데 하나다.
1960년대 가발 등 경공업에서 출발한 한국의 산업화는 1970∼1980년대 건설·
자동차·조선 등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과 1990년대 전자(
반도체) 등을 거쳐 왔다. 우리
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강력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중후장대 산업에서 국제 경쟁력을 확보했고, 변변한 자원도 내수 기반도 없이 ‘수출만이 살길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세계 시장을 공략해 왔다.
우리나라가 경제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정부와 기업은 한 몸처럼 움직였다. 열악한 환경에서 제한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은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그동안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캐시카우(현금수입원)’였던 건설, 조선 등 중후장대 산업 대다수가 국제 경쟁력을 잃고 기업 구조조정의 한파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전자와 자동차는 상대적으로 아직 형편이 낫지만, 미래의 한국을 이끌기는 어렵다. 물론 전통 산업도 정보기술(IT) 등 새로운 기술과 성공적으로 접목만 된다면 ‘블루 오션’을 창출할 수 있겠지만,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이제 한국에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이명박정부의 ‘녹색
성장’이나 박근혜정부의 ‘창조 경제’도 큰 틀에서 보면 한국의 산업 구조를 새롭게 바꾸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시도는 그동안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한국 경제도 많이 변했다. 과거처럼 정부가 나서서 산업의 지형(地形)을 함부로 바꿀 수도 없고, 바꿔서도 안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기업의 자율에만 맡겨서 온전한 국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많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새로운 산업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민관 협력 모델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정부가 최근 새로운 산업 전략을 추진키로 결정한 것은 중국이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생산한 부품이나 소재를 수입해
가공한 뒤, 미국이나 유럽연합(EU)으로 수출하는 아시아 내부의 ‘수출 분업 구조’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이 누려온 ‘수출 불로소득(不勞所得)’은 더 이상은 누리기 힘들다는 얘기다.
내년이면 박근혜정부 4년 차가 시작된다. ‘레임덕’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이토록 어려운 과제를 과연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산업 전략을 수립하고 민관이 힘을 모아 실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경제는 앞날을 기약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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