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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아내가 끙끙 신음할 때면… 내게 잘못 시집와 미안할 뿐

화이트보스 2015. 12. 28. 11:46

최보식이 만난 사람

"잠든 아내가 끙끙 신음할 때면… 내게 잘못 시집와 미안할 뿐"

입력 : 2015.12.28 10:16

['77세 고깃배 선장' 이창근씨]
 

"여태껏 배를 탔으니 오래됐지요. 과거에 같이 배를 탔던 동네 사람들은 나를 보면 '이제 졸업하라'고들 해요. 몸이 힘들어 그만두기는 그만둬야지요.… 한 해만 더 해보고요."

강원도 속초 아바이마을에서 반창고를 둘둘 감은 굵은 손가락으로 그물 손질을 하는 노인에게 "이창근 선장이 어디에 계시느냐?"고 묻자 "내가 그 사람인데 무슨 일인가. 물을 게 있으면 젊은 사람을 찾아가야지"라고 답했다.

사실 그를 찾느라 헤맸다. 이리 가라 해서 가보면 저리 가라 하고, 저리 가면 다시 이리로 가라고 했다. 그렇게 찾은 그의 집 대문은 잠겨 있었다. 정박된 그의 고기잡이 배 '남성호'를 수소문하기로 했다. 저리 가보라고 해서 가면 또 이리 가라고 했고, 마침내 부두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77세다. 전국 최고령(最高齡) 선장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도 배를 몰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다. 부인과 함께 둘이서.

"집사람도 배 타는 여자로서는 이 근방에서 나이가 최고 많아요. 나는 수술을 두 번이나 했고 집사람도 허리가 안 좋아요. 배 타는 일이 보통 힘든 게 아니오."

이창근씨는 “밤늦게까지 그물 손질을 하고 새벽 4시면 배타고 바다로 나간다”고 말했다. /최보식 기자

옛날엔 먹을 게 없어 못 먹었지만
지금은 내 먹기 싫어 안 먹으니
세월은 좋아진 게지

이창근 씨

커피숍으로 가서 살아온 얘기를 들어볼 수 있겠느냐고 청하니, "돈 주고 왜 사 잡숫느냐. 여기서 한잔하지"라고 답했다. 그물 작업 장소에는 휴대용 가스버너와 그을린 주전자가 있었다. 커피믹스를 푼 일회용 컵을 들고 삭은 젓국 내가 나는 그물망 옆 간이의자에 앉았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소설의 '노인과 바다'와 연관시켜 "이 연세에도 배를 몰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군요"라고 말문을 열자 그에게서 돌아오는 답변은 현실이었다.

"억지로 다니는 거지요. 자식들도 먹고살기 빠듯한데 생활비를 대 달라고 손 벌릴 수 없고. 오히려 영감 할매가 벌어서 자식들에게 대줘야 할 형편이라. 새벽 3시에 자명종 울리면 진짜 일어나기 싫지요. 4시 전에는 출발해요. 뭍에서 고기 팔아먹는 사람들을 위해 늦게 가면 안 돼요. 바다에 나가 전날 쳐놓은 그물을 거둬들인 뒤 싣고 간 그물을 다시 치고…, 이런 일이 늘 되풀이되지요."

―항구에는 몇시에 돌아옵니까?

"아침 9시쯤이죠. 잡아온 고기를 공판장에 넘기고는 집으로 들어와 아침밥을 먹지요."

―오전에 하루 일과가 끝나는군요.

"그때부터는 그물 손질에 끝이 없어요. 이걸 못 마치면 다음날 바다에 못 나가니까요. 요즘처럼 해가 짧은 겨울에는 꼼짝 못해요. 나이가 이러니 동작이 느려 불 켜고 밤 열시, 열한시까지 그물 작업을 할 때도 있어요. 남들과 어울릴 시간이 없어요. 그러니 그물 손질하면 친구도 부모도 없다고 하지요."

―고기를 잡고 항구에 들어오면 그물 손질은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습니까?

"어떤 선장들은 어망 손질을 일당 4만원을 주고 남에게 맡겨버리지만…, 우리는 늙고 기운이 없어 고기를 많이 못 잡아요. 10만원이나 20만원, 혹 아주 드물게 횡재해서 50만원까지 잡을 때도 있지만, 이렇게 잡아서 기름값 빼고 일당까지 주면 남는 게 없어요. 지난달 수입은 100만원도 채 안 됐어요."

―바닷속에 그물 던져 놓으면 고기가 헤엄쳐 들어와 잡히는 것인데, 나이나 기운이 무슨 상관있습니까?

"바다는 넓고 좁아요. 바다에 고기가 다 나지 않아요. 고기가 나는 어장(漁場)이 있어요. 그쪽으로 어선들이 다 몰려들지요."

―그 지점에 그물을 치면 되지 않습니까?

"그물을 좋은 데 서로 치려고 싸움해요. 배로 막 부닥치고, 욕설을 퍼붓고, 칼로 남의 그물을 잘라내기도 해요. 위아래도 없고 인정사정없어요."

―우리가 모르는 바다 위 그런 세상이 있군요.

"다들 먹고살자니…. 집사람이 '젊은 사람들 틈에서 욕먹지 말고 다른 데로 가자. 남들이 밥을 해먹으면 우리는 죽을 끓여 먹으면 된다'고 해요."

―요즘 무슨 생선이 많이 잡힙니까?

"가자미, 도치, 도루묵 등이지요. 옛날에는 장비가 열악해 고기를 많이 못 잡았는데 지금은 장비가 너무 좋아 고기 씨가 말라요. 너무 많이 잡아대니까요. 요즘 바닷속에는 다 그물이니까요. 저인망 그물까지 써서 아예 쫙 긁어가기도 해요. 고기도 살려 가면서 잡아야 하는데. 제 손으로 제 눈 찌르는 거죠."

―하루도 안 쉬고 바다에 나갑니까?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일요일에는 다 쉬고 풍랑이 치면 못 나가죠. 나는 몸이 힘들어서도 못 나가요. 한 달에 열흘쯤 나가나요. 그물 쳐놓고 이삼일쯤 안 가면 그물에 걸린 고기를 새우나 골뱅이가 다 파먹어요. 새우는 찢듯이 먹어치우고, 골뱅이가 달라붙으면 속을 다 빨아먹어 껍질과 가시만 남아요."

좋은데 그물 치려고 욕설을 퍼붓고
배로 부닥치며 칼로 그물을 잘라내지

이창근 씨

―배는 언제부터 탔습니까?

"1963년 군에서 제대한 뒤 본격적으로 탔지요. 겨우 감자나 삶아 먹던 시절이라 선택이 없었어요. 지금처럼 FRP(섬유 강화 플라스틱)로 만든 동력선이 아니라 무거운 목선(木船)이었지요. 노를 저어 나갔지요. 그물을 던져놓고 아침에 다시 가서 손으로 당겨올리는 거죠. 그물도 나일론실이 아니라 명주실이어서 쉽게 찢어졌지요."

―유행가에 나오던 노 젓던 시절이군요.

"그때는 군대에서 쓰던 소형 나침반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뱃길을 찾았어요. 그런 나침반도 없는 배도 많았어요. 얼마만큼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는 걸 감안해 항로를 계산했지요. 속초항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어떨 때는 아야진항, 대포항, 멀리는 주문진항까지 밀려갈 때가 있었어요. 그렇게라도 육지로 들어온 게 용하지요. 지금은 내비게이션과 어군탐지기가 있으니 세월이 좋지요. 바다에서 죽은 사람만 억울하지요."

―바다가 겁나지는 않았습니까?

"젊었을 적에는 바람 불고 파도 쳐도 몰랐는데, 지금은 겁이 나지요. 몇 번 죽을 뻔했어요. 바다에서 갑자기 비바람이 치고 파도가 거세졌어요. 속으로 '자식을 다시 못 보고 죽겠구나' 했어요. 이제는 작업하다가도 날씨가 심상찮으면 당기던 그물을 잘라서 묶어놓고는 돌아와 버려요."

그때 등이 살짝 굽은 부인 박순자씨가 와서는 "창피하게 뭐 이런 얘기를 하느냐"며 곁에 앉았다. 남편 대신 말을 많이 했다. 나중에 사진을 찍을 때는 '창피하다'며 거절했다.

―결혼은 언제 했습니까?

"나이 먹으니 금방 잊어먹고, 언제인지 모르겠어요. 집사람과는 아홉 살 차이지요."

―언제부터 부인과 같이 배를 탔습니까?

"25년쯤 됐어요. 요즘에는 외국인 선원이 아니면 쓸 사람도 없어요. 선원을 쓰면 고기가 많이 잡히지도 않는데 인건비에 밥 먹여줘야지. 전날 술 마시면 안 나와서 속을 썩여요. 그래서 영감 할매가 같이하게 된 거죠."

―아내가 힘들어하지 않나요?

"처음에는 토하고 울기도 많이 울고, 난리였어요. 집에 돌아오면 얼굴이 노란 게…. 자면서 끙끙 신음을 할 때면 정말 마음 아파요. 나한테 잘못 시집와 편안하게 살지 못하고, 이런 고생을 시키니 미안할 뿐이지요."

―직업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없었습니까?

"부모 잘 만나 돈이라도 있었으면 장사를 했겠지만…. 결혼해서 아이들이 생기면서는 버둥거리며 살았어요."

―자식들이 배를 그만 타라고 말리지 않습니까?

"자기네 살기도 바쁜데, 우리 먹을 것은 우리 힘으로 벌어야지요."

―어부는 배 타고 나가 바다에서 고기를 건져오면 다 돈이니까, 그래서 항구에는 돈 씀씀이가 헤프다고 했는데?

"배를 타다 보니 선원들과 어울려 술은 좀 배웠지만 거의 안 마셔요. 집사람과 함께 배를 타면서 담배도 끊었지요. 담배 냄새를 맡으면 아내 뱃멀미가 더 심해진다고 해서. 흥청망청했으면 아내가 같이 살아줬겠어요."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왔으니 돈은 좀 모았겠군요.

"자식 셋을 기르다 보니 저축이라는 게 없지요. 이웃집에 돈 꾸러 안 가면 된다, 빚만 안 지고 살자고 했지요. 우리는 그렇게 없는 살림에 없이 살았지만 요즘 자식 세대는 안 그렇지요. 나랏돈을 빌려서라도 남들 하는 대로 살지요. 자동차도 사고 제 아이들을 학원에도 보내야 하잖아요."

―지금 보니 아내에게만 휴대폰이 있군요.

"아들이 하나 사줘 우리 집사람이 사용하지요. 한 집에 전화 하나면 되지."

그는 바다에 나가서 세 아들을 고등학교까지 보냈다. 자식들이 결혼할 때는 전셋집을 얻어줬다고 했다. 이제 40대 후반의 큰아들은 보험업체, 둘째 아들은 콘도업체, 막내아들은 속초시청에서 일한다.

―아버지 배를 물려받아 어부가 되겠다는 아들은 없었군요?

"다들 뱃멀미를 하니까 죽으라고 안 타려고 해요. 우리 부부가 더 이상 못 탈 때면 저 배(5t)를 팔아 먹고 살아야지요."

―중국과 동남아 관광은 해봤습니까?

"갈 시간도 돈도 없지요. 쉬는 날에는 자동차가 있어야 어디 다니지요. 동네 계(契) 모임으로 제주도는 가봤지요."

―무슨 낙(樂)으로 삽니까?

"차나 타고 편안하게 놀러다녀야 기쁘지, 눈만 뜨면 바다에 나가고 어망을 손질하고 해 지면 들어와서 밥 한 숟가락 먹고 자는 건데, 무슨 낙이 있겠어요. 그래도 옛날에는 먹을 게 없어 못 먹었지만 지금은 내가 먹기 싫어서 안 먹으니, 세월은 좋아졌지요. 우리 동네 누구에게 물어봐도 내가 말한 답변과 똑같을 거요. 굳이 보람이라면 자식들이 남한테 손가락질 안 받고 살고 있는 것이지요."

―내년에는 어떤 기대가 있습니까?

"그런 거 없어요. 먹고 살려면 내년까지는 배를 탔으면 하는 거죠."

―'사는 게 뭔가' 이런 생각을 해봅니까?

"하하하. 산다는 게 뭐 있습니까. 배 타고 왔다갔다하면서 세월이 가는 거지, 그렇게 사는 날까지 사는 거지요. 우리끼리는 '우의(뱃일을 할 때 입는 고무 옷) 벗는 날에는 저승 간다'고 말하죠. 때가 되면 가는 거지, 딴 게 없습니다."

77세에도 바다에 나가는 인생이 이렇듯이 대부분 우리 삶도 극적(劇的)이지가 않다. 반복된 일상을 버티고 감수하고 극복하면서 세월이 쌓여가는 것이다. 헤어져 숙소로 돌아오니 온몸에 쿰쿰한 젓국 냄새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