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4.06 03:00 | 수정 : 2016.04.06 13:06
[봄이 내린 春川과 커피 볶는 여자 조수경]
공지천에는 황제가 이름 붙인 커피숍 '이디오피아집'
48년째 어머니 이어 딸이 커피 내리는 추억의 공간
의암호 수면에는 파란 봄이 고요히 내려앉아…
主君 위해 목숨 바친 신숭겸 묘역엔 새소리 가득
![[박종인의 땅의 歷史]](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4/06/2016040600031_0.jpg)
올해 쉰여섯 살인 조수경은 춘천 공지천변에서 커피를 볶는다. 커피 볶는 집 이름은 이디오피아벳이다. '벳'은 집이라는 뜻이다. 어머니 김옥희가 1968년 11월 25일 문을 연 커피숍이다. 공지천은 청춘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48년 세월이 흘렀다. 허허벌판이던 천변에 벚꽃이 피어났다.
지금, 커피콩으로 소꿉놀이를 하고 대학시절 어머니 커피숍에서 DJ로 학비를 벌던 딸 수경이 원두를 볶는다. 가뜩이나 새치가 많던 조수경 머리는 벚꽃처럼 찬란한 백발이 되었다. 공지천에 봄이 왔다. 춘천에 봄이 왔다.
공지천과 '이디오피아'
춘천 효자동에 흐르는 작은 강 이름은 공지천이다. 오리배가 놀고 천변은 벚꽃 천지다. 이름에는 전설이 있다. 원래는 곰지내였다. 전설에 따르면 퇴계 이황이 춘천 외갓집에 놀러 왔다가 머슴을 시켜 여물을 곰지내에 버리니 여물 짚이 고기로 변했다. 그 물고기 이름을 공지어(孔之魚)라고 했고, 곰지내는 공지천(孔之川)이 되었다. 퇴계 외갓집이 있던 곳은 퇴계동이다.
1950년 6·25전쟁이 터졌다. 당시 이디오피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1세는 황실 근위부대를 파병했다. '하일레'는 '힘'이고 '셀라시에'는 '삼위일체'라는 뜻이다. 이디오피아 사람들은 스스로를 기독교 구약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의 후손이라고 생각한다.

캭뉴 대대가 주로 활동했던 춘천지역 사람들은 1968년 5월 19일 이디오피아참전기념비를 세웠다. 하일레 셀라시에1세 황제가 준공식에 맞춰 한국을 찾았다. 탑은 공지천변에 있었다. 김현옥 서울시장이 수행한 황제는 천변에 서서 김현옥에게 말했다. "여기에 이디오피아문화관이 있었으면 좋겠다."
대구에 있는 초등학교 교사였던 김현옥의 조카 김옥희는 우연하게 춘천에 놀러 왔다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전날 '국기를 온몸에 휘감고 서 있는 꿈'을 꾸고서 해몽을 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그녀였다. 김옥희가 외삼촌에게 말했다. "내가 짓겠어요." 시댁에서도 친정에서도 난리가 터졌다.
이디오피아는 커피 역사가 시작된 땅이다. 전설에 따르면 카파(Kaffa)라는 마을에서 칼디라는 목동이 어떤 열매를 따먹고선 지치지 않고 펄펄 뛰어다니는 염소들을 관찰하다가 커피를 찾아냈다. 이디오피아문화관은 당연히 커피를 팔아야 했고, 1960년대 커피숍은 '물장사'를 뜻했다. 물장사. 술장사와 같은 말이었다.
시부모는 "그런 며느리 못 둔다"고 돌아앉았다. 역시 교사였던 남편 조용이는 "내 아이들은 내가 기른다"며 반년 동안 대구에서 올라오지 않았다. 며느리는 퇴직금 털어서 황제가 앉았던 천변 그 빈터에 집을 지었다. 그해 11월 25일 황제는 '이디오피아벳'이라는 친필 휘호와 이디오피아산 생두를 외교행낭으로 하사했다. 지금도 이디오피아집을 찾는 이디오피아인들은 현관문을 열면 그 자리를 향해 걸어가면서 무릎을 꿇고 땅에 입을 맞춘다.
맹랑한 며느리이자 아내인 김옥희는 프라이팬에 원두를 볶고, 대사관을 찾아 로스팅을 배우며 커피를 팔았다. 방앗간에 가서 콩을 쪄와서 커피를 내리기도 했다. 기싸움에 패배한 남편도 학교에 사표를 내고 아이들을 끌고 춘천으로 왔다.
이디오피아-에티오피아

공지천에 제대로 된 원두커피가 있다는 소문이 팔도에 퍼져 나갔다. 예인(藝人)과 개똥철학자와 청춘남녀들이 이디오피아집을 찾아갔다. 양희은과 박인희가 DJ를 봤고 소설가 이외수가 죽치고 앉아 글을 썼다. 춘천 여고생들은 이디오피아로 와서 위스키가 든 커피를 마시며 성년식을 치렀다.
딸 조수경이 말했다. "어머니가 일을 하지 않으면 용돈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DJ를 봤다. 사람들이 신문지를 깔고 바닥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영업이 끝나면 밤에 세 시간 동안 못에 꽂은 매출전표를 계산하곤 했다. 하루 1500잔도 팔아봤다." 가난하고 척박한 시절, 춘천과 공지천과 이디오피아집은 멋이요 낭만이었다.
그러다 부부가 늙어버렸다. 2009년 어느 날 김옥희가 서울에서 영화 특수분장을 하던 딸 조수경에게 전화를 했다. "내려오너라." 일주일 고민하다가 딸은 자기가 태어난 춘천으로 돌아왔다. 이후 이디오피아집 주인은 조수경이다. 조수경이 말했다. "염색도, 손톱도, 화장품도 커피 향에 방해가 되는 일체 장식은 금물이다. 남는 이윤을 우리를 도왔던 이디오피아로 보내는 일도 여전하다. 부모님도 커피를 마시면 돈을 치른다."
커피숍 주소는 '이디오피아길 7번지'다. 강둑길로 명명됐던 천변 도로명을 2011년 개명했다. 조수경이 말했다. "에티오피아가 아니라 이디오피아다. 이디오피아 사람 그 누구도 에티오피아라고 하면 화를 낸다. 왜 나라 이름을 멋대로 바꾸느냐고. 일일이 발음을 녹음해서 시청에 줬다. 그래서 길 이름을 제대로 찾았지."
이디오피아집에서 일하는 이디오피아 여자 베티가 말했다. "나는 이-디-오-피-아 사람"이라고. 이 글에서도 에티오피아를 이디오피아라고 부르기로 한다. 벚꽃이 한창인 지금, 해거름이면 공지천에는 강릉에서 서울로 가는 사람들이 많다. 커피 메카 강릉에서 커피를 마시고, 굳이 이디오피아집에 들러서 하루를 끝내겠다는 사람들이다.
봄이 흐르는 의암호
공지천은 의암호로 흐른다. 의암호는 1967년 11월 완공된 인공호수다. 옛 마을들은 호수 아래 잠겼다. 얕은 앞, 뒷산들은 중도와 붕어섬과 뱀섬이 되었다. 퇴계가 창조한 공지어는 간 곳 없다. 대신 연전에 풀어놓은 배스가 대량으로 잡힌다. 해마다 봄이 되면 의암호에는 카약 무리가 나타난다. 여러 물길을 따라 섬으로 변한 야산 주위를 돌아다닌다. 뱀섬은 박사 많이 나기로 유명한 서면 박사마을 앞에 있다.

구봉산 카페거리와 신숭겸 묘
이디오피아집 커피 향과 의암호 봄내음만 생각해도 춘천이 그립다. 그런데 춘천에는 봄날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더 있다. 구봉산 카페 거리다. 춘천 동쪽 넓은 신작로는 구봉산으로 가는 길이다. 길 양편으로 잘 만든 건물들이 보이고 너른 주차장이 보인다. 모조리 카페에 레스토랑이다. 반드시 해거름에 가야 한다. 봄내음 짙은 저녁노을을 봐야 한다. 풍수지리학상 춘천의 진산인 봉의산 너머 떨어지는 석양은 말 그대로 일품이다.

춘천에 봄이 왔다. 천(川)에서 호수로, 호수에서 산과 석양으로 봄이 흐른다. 흐르는 봄 속에서 백발 성성한 여자 조수경이 커피를 볶는다.
[춘천 여행수첩]
〈볼거리〉

〈의암호 카약 업체〉
1. 춘천물레길: www.mullegil.org
2. 웨스트카누: westcanoe.co.kr
3. 중도물레길: www.ccmullegil.co.kr
〈맛집〉
장만덕 숯불구이: 숯불 닭갈비 거리인 낙원동에 있다. 젊은 분위기. 수요일 휴무. (033)244-5045
〈여행 정보〉
tour.chuncheon.go.kr, (033)250-4312
- [지역 정보]
-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춘천은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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