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5K 편대가 본격적인 서해안 시대를 연 서해안고속도로와 서해대교 상공을 초계비행하는 모습이다. |
국민의당은 4.13 총선 내내 ‘친노 패권’ 청산과 호남 홀대론을 줄곧 주장해 왔다. 천정배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영남 패권주의 때문에 낙후된 호남이 다른 지역을 따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지원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호남 홀대론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냉정한 분석이 필요하다. 호남이 주장하는 홀대론의 근거는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역대 정부의 지방 국책사업의 편차나 출신지별 고위직 인사문제는 기준이나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총선 직전인 4월 8~9일, 11~12일 광주와 호남을 찾은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는 보도자료를 내고 “노무현 정부 때 총리와 장관, 4대 권력기관장 등 106명 가운데 호남 출신 인사가 29%(31명)로 역대 정부 중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또 호남고속철도 조기 착공, 여수엑스포 유치,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 한국전력공사 호남 이전 등 호남에서 추진된 국토균형발전 사업을 끄집어냈다.
그러나 그런 호소에도 호남 민심은 싸늘했다. 왜 그럴까. 민심이 들끓었던 것은 어쩌면 편중 인사나 예산문제 때문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표>노무현 정부 시절, 호남출신 관료들
호남인사 | |
국무총리 | 고건(전북 군산), 한덕수(전북 전주) |
권력기관 | 검찰총장-김종빈(전남 여수), 국정원장-김승규(전남 광양), 감사원장-전윤철(전남 목포), 국세청장-이용섭(전남 함평) |
청와대 | 이병완 비서실장(전남 장성), 정찬용 인사수석(전남 영암), 김완기 인사수석(전남 곡성), 전해철 민정수석(전남 목포), 이백만 홍보수석(전남 진도), 윤승용 홍보수석/대변인(전북 익산), 민형배 사회조정비서관(전남 해남), 김성환 정책조정비서관(전남 여수), 박주현 참여혁신수석(전북 군산), 정순균 국정홍보처 처장(전남 순천) |
장관 | 정동영 통일부(전북 순창), 윤영관 외교부(전북 남원), 천정배 법무부(전남 신안), 김승규 법무부(전남 광양), 조영길 국방부(전남 영광), 김장수 국방부(광주), 이용섭 행정자치부/건설교통부(전남 함평), 정동채 문화관광부(광주), 김명곤 문화관광부(전북 전주), 김영진 농림부(전남 진도), 허상만 농림부(전남 순천), 임상규 농림부(광주), 정세균 산업자원부(전북 진안), 이상수 노동부(전남 여수), 장하진 여성부(광주), 강동석 건설교통부(전북 전주), 장승우 해양수산부(광주), 장병완 기획예산처(전남 곡성) |
이명박 집권 초기 2008년 국회 예결위 한 장면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2008년 9월 25일 국회 예결위에서 경북 출신의 한나라당 강석호 의원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대구·경북의 국책사업이 지난 5년(2003~2007년) 동안 이렇게 보면 약 5조 원 정도 들었다. 광주·전남을 보니 한 45조 7000억(으로) 국책사업이 아주 많다. 지난 5년 동안 상당히 한쪽으로 편중이 돼 있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든다.”
그러자 기획재정부 배국환 제2차관의 답변이다.
“균특회계(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는 크게 저희 중앙정부가 실링(ceiling·중앙정부의 대체적 요구한도)을 줘서 하는 부분과 국가가 직접 편성하는 사업이 있다. 지방의 인구면적, 낙후도 요소, 노인인구 비중, 소득세 주민세 등을 감안해 배분한다.”
강 의원은 노무현 정부 5년간 쏟아부은 광주·전남지역 국책사업 예산을 예로 들었다. 서남권종합발전계획 24조6000억원(S프로젝트), 여수세계박람회 9조5375억원, 광주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 5조3000억원, 서남해안 관광레저도시건설사업(J프로젝트) 1조9122억원 등이 대표적 사업이었다. 반면 대구·경북 국책사업예산은 2011세계육상선수권대회 2조6000억원, 대구테크노폴리스 조성 1조9000억원 등 2건에 불과했다는 것이었다.
강 의원은 “지금과 같은 국가균형발전회계 재원 배분은 매우 불균형적이므로 시급히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예결위원인 유승민 의원도 이날 “대형국책사업 상위 5개 프로젝트를 보면 광주·전남이 45조 7000억원, 대구·경북이 8조 3000억원이다. 5배가 넘는 격차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유 의원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대권을 잡으면 그게 경상도당이든, PK(부산·경남)당, TK당, 광주·전남당이든…누가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수조·수십조에 해당하는 예산 덩치가 왔다갔다 한다. 그러니까 정권 잡으려고 죽기 살기로 한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 때 호남이 정말 푸대접을 받고 차별당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 지난 10년은 보면 이게 또 거꾸로 되어 완전히 호남에다 돈을 쏟아 붓는 이런 예산집행이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 기재부 배국환 차관은 “기본적으로는 예산을 짜는데 어느 지역을 감안해 짜지는 않는다”며 “어떤 지역예산을 공개해 배분 자체를 해 버릴 것 같으면 굉장히 많이 왜곡 현상이 일어난다”고 우려했다.
배 차관이 말한 ‘배분’이란 지역 국책사업 예산을 지역별로 배분해 버리면 사업에 대한 타당성은 묻혀버리고 지역편차라는 왜곡현상이 일어난다는 의미로 추정된다.
경상도 정권 끝날 무렵, 서해안 시대 열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의 전남 광주지역 국비지원액은 한 해 전 노무현 정부시절 마련된 것이었다. 그해(2008년) 광주 지역 국비지원액은 1조5715억원(국책사업 건수는 108건).
이는 민선 3기가 시작된 2002년 5282억원에서 6년 만에 3배 가량 예산이 늘어난 것으로 광주는 반색했다. 광주의 국비확보는 첨단산업과 문화수도 육성, 노인의료복지 서비스사업, 광주 제3외곽순환도로 건설, 광주∼완도간 고속도로 연장 등이 시행되면서 이뤄졌다.
또 당시 균특회계 자율편성예산 비율이 광주는 12.2%였다. 전국 광역시 평균 8.5%를 상회했다. 지방의 자생력이 제고됐다는 의미다. 당시 광주시는 보도자료를 내고 “지역발전을 앞당길 수 있는 재원 확보의 기반을 구축한 것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반겼다.
광주는 우리나라 광(光)산업의 전진 기지다. 1999년 관련기업이 고작 47개(전체 매출액 1100억원)에 그쳤으나, R&D 등을 통한 지원과 집중투자로 10년이 지난 2009년에는 기업수가 7.4배(346개), 매출액은 15배(1조6157억원)나 증가했다.
광주는 광산업을 통해 첨단부품소재산업 중심 도시로 도약했다. 관련 산업인 광주의 금형산업 매출액도 2007년 3509억원에서 2010년 9300억원, 2015년에는 1조 2200억원으로 증가했다. 9년 만에 3배가 넘게 성장한 것이다.
1990년대 들어 국가발전의 중심은 경부 축에서 서해안 축으로 옮겨갈 무렵, 때마침 경상도 정권이 끝날 무렵이었다. 홍철 전 대구경북연구원장은 “전라도 공직자들이 시련을 겪으면서 키워온 지역발전을 위한 자생력이 DJ와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전라도 정권’ 10년 동안 폭발적인 힘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프로젝트를 비롯해 광주과학기술원, 광(光)산업단지, 삼성전자 광주공장 등이 추진됐다. 전남에는 도청 이전, 무안국제공항 건설, 여수엑스포 유치와 함께 영암·해남과 무안지역에 2개의 기업도시가 지정됐다.
전북에는 지지부진했던 새만금사업이 여러 정권을 거쳐 완공됐고, 무주 태권도공원조성사업도 추진 중이다. 국책사업과 민간투자가 이어져, 타지역으로부터 “30여 년간 맺힌 설움이 10년 만에 다 풀리는 상황이었다”는 부러움까지 샀다.
다만 어렵고 소외되던 시절에는 광주와 전남·북이 함께 움직였지만 지금은 각자 분화해 발전을 꾀하고 있다. 광주와 전남, 전북이 제대로 분화 발전하려면 비슷한 사업들로 제각기 경쟁하기보다 지역별로 특색 있게 구성해 상호보완적으로 발전시키는 상생의 길을 지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정권 출범 당시 2013년 4월 국회 예결위
2013년 4월 24일 국회 예결위에서 호남출신 민주당 이윤석 의원이 정홍원 총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박근혜 정부 초대 내각의 장관 17명 중 호남 출신이 2명, 차관 20명 중에 호남 출신이 3명이다. 그러나 권력기관은 전무하다. 이런 것을 차근차근 바꿔 나가야 될 것 아닌가.”
5대 권력기관은 검찰·경찰·국세청·국정원·감사원을 의미한다.
정 총리는 “앞으로 그런 점을 고려하겠지만, 새 정부에서 적성과 능력만 생각하다 보니, 그런 수치적인 배려는 조금 부족한 점이 있었다”고 했다.
이 의원은 이렇게 반박했다.
“ ‘적성과 능력’ 그렇게 말씀하시면 또 서운하다. 제가 어느 부처라고 말하지 않겠지만 1번 장관부터 실·국장, 3급까지 쭉 순서대로 나온 컬러 사진을 보았다. (호남이) 단 1명 있더라. 서른 몇 번째 가서 있었다.”
또 “대통령님께서 대탕평 인사를 하시겠다고 하셔 놓고 무슨 호남출신 총리 말씀도 나왔는데 임명 안 하셨고, 소위 권력기관장들에 대해서 단 한 명도 없고, 장관·차관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이렇게 인사를 하시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인 2013년 2월 새 정부 조각을 발표하며 17개 정부 부처장 중 호남 출신으로 새누리당 진영 의원(전북 고창, 보건복지부 장관)과 한국노동연구원 방하남 선임연구원(전남 완도,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명했다.
그러나 청와대 인사에서는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광주)를 비롯해 이남기 홍보수석(전남 영암)·이정현 정무수석(전남 곡성)·최성재 고용복지수석(전북 전주)·모철민 교육문화수석(전남 함평) 등 호남출신이 5명이었다. 그러나 청와대 수석급 인사 중 영남 출신은 허태열 비서실장 내정자 포함해 3~4명이었다.
그해 2월 17일 광주광역시의회는 “박근혜 당선인의 균형인사를 강력하게 촉구하며 향후 차관급 인사와 고위공무원 인사에서 변화된 모습을 요구한다.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으로서의 모습과 의지를 확인시켜 달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역편중 인사는 YS·DJ(김대중) 대통령 때 상대적으로 심각
김영삼 정부 때부터 이명박 정부 때까지의 차관급 이상 고위관료들의 출신지역을 조사해 보면, 지역편중 인사는 YS·DJ 대통령 때 상대적으로 심각했다.
2010년 한나라당 유정현 의원이 낸 국정감사 보도자료에 따르면, YS 정부 당시 PK 출신의 ‘차관이상 고위 공직자 비율’은 전체의 23.2%였다. 이 지역 인구비율(안전행정부 통계, 2010년 1월1일 기준)은 전국의 15.89%다.
PK 중에서 부산출신만 떼어내면 5.4%. 반면 대구출신은 1.7%로 DJ 정부 시절(1.8%)보다 적었다.
DJ정부에선 호남출신 고위 공직자 비율이 29.4%였다. 호남 인구는 우리나라 인구의 10.45% 정도다.
노무현 정부에선 고위 공직자 중 PK 출신이 21.0%(인구비율은 15.89%)으로 가장 많았다. 광주·전남의 경우 18.0%(인구비율은 6.72%)였다.
이명박 정부에선 TK 출신 고위 공직자들이 전체의 15.6%를 차지했다. 이 지역의 인구비율은 10.37%. 어쩌면, YS, DJ 정부 때보다 편중 정도가 상대적으로 덜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