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5.13 09:39
[구조조정… 전문가에게 듣는다:(5)박승 前 한국은행 총재 인터뷰]
"조선이나 해운 등 현재 구조조정 대상이 되고 있는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은 오래 전부터 사양산업으로 분류되어 구조조정 대상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특수가 생기는 바람에 호황산업으로 둔갑했다. 따라서 지금 겪는 어려움이 일시적일 것이라든지,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로 구조조정에 접근하면 안 된다. 정부가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국은행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박승(80) 전 한국은행 총재는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조선·해운 산업은) 중국에서도 과잉 투자 산업이 되어 구조조정을 하는 분야"라면서 정부의 과감한 구조조정을 주문했다. 박 전 총재는 노태우 정부 때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과 건설부 장관을 지내고, 2002년부터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다.

조선·해운, 오래전부터 사양산업
정부 좀더 과감하게 메스 대야
韓銀이 국책銀에 출자하기보다는
정부·산업은행에 대출하는 게 나아
―조선·해운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한진해운, 현대상선, 대우조선해양, 세 기업이 끝이 아닐 수 있다. 조선·해운 업종 말고 철강 등 부실이 노출되기 직전인 산업이 있다. 정부는 이런 업종의 기업들이 자구안을 만들어 구조조정을 하도록 관리해야 한다. 지금 대비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구조조정 과정은 국민과 국회의 동의를 얻을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가 부실에 대한 책임이 있는지 명확하게 밝히고 책임을 물어 국민들을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감사원에 특별감사라도 요청해야 한다."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국판 양적 완화'가 거론됐다.
"양적 완화가 구조조정 방법으로 알려지는 건 잘못된 거다. 중앙은행은 돈을 풀고(금융 완화) 줄이는(금융 긴축) 방법으로 경기를 부양하거나 과열 경기를 안정시킨다. 전통적인 금융 완화는 금리 인하이고, 금리가 제로까지 가면 그때부터 시작되는 게 양적 완화다. 양적 완화라는 말에 한국적이라는 말을 붙여 기업 구조조정 방안이라고 하는 건 맞지가 않다. 부실기업 정리자금이라고 불러야 맞다. 구조조정은 불가피하고, 원칙적으로 정부가 주축이 되어 여야가 협조해서 조속히 해야 한다. 다만 정부와 재정의 여력이 부족하다면 마땅히 중앙은행도 협조해야 한다고 본다. 그럴 때는 그에 상응하는 명분과 준칙을 존중해야 한다."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 방식을 두고 정부와 한국은행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다.
"한국은행이 국책은행에 출자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은행이 출자하게 되면 한국은행이 주주가 된다. 따라서 한은이 출자한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사후 관리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한은에게는 그런 권한이 없다. 출자하면 그걸로 끝이다. 이것은 발권력을 가진 한은이 국민에게 책임을 다하는 게 아니다.
한은이 정부를 도와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길은 국회 협조를 얻어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가 공적자금을 조성하는 방법, 국채를 발행해서 한은에 인수시키는 방법, 추경을 편성하는 방법이 있다.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보기 쉽지만 그것이 정도다. 정부가 이렇게 할 수 없다고 하면 차선책은 한은 출자보다는 한은이 정부나 산업은행에 대출하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가 여러 차례 경기부양책을 폈지만 경기는 여전히 부진하다.
"현재의 경기 침체는 가계 빈곤에서 오는 위기다. 성장률 3%, 근원 소비자 물가 2%, 경상수지 흑자 1000억달러의 경제 지표는 OECD 34개 회원국 중에서도 양호한 편에 속한다. 이 정도 성장을 해도 고용은 늘지 않고, 가계소득도 늘지 않고, 먹고살기는 더 어려워졌다. 빈부 격차를 줄이고, 가계부채를 낮추고, 전월세 부담을 줄이는 등 가계를 살려야 한다. 투자와 소비 쌍끌이,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쌍끌이, 대기업과 가계의 쌍끌이로 가야 하는데, 소비는 정부의 노력 여하에 따라 늘릴 수 있다. 최저임금을 올리거나 배당을 늘리거나 하는 것은 소비를 높이는 방안 중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