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6.28 08:28 | 수정 : 2016.06.28 09:37
성남시 분당 운중동 '팝 하우스'
경사진 뾰족한 지붕이 남쪽과 동쪽, 90도 각도로 파란 하늘 향해 날개 뻗었다. 남쪽 도로 향해 난 정원은 삼각형. 개성 만점 집 한가득인 성남시 분당 운중동에서도 한눈에 튀는 이 집, '팝 하우스'(지하 1층·지상 2층, 대지 237㎡, 연면적 401㎡)는 지난 23일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젊은 건축가상'을 탄 건축가 신민재(40·AnL스튜디오 대표)씨와 안기현(40·AnL스튜디오 디렉터·한양대 건축학부 교수)씨의 작품이다. 팝 하우스는 건축주가 좋아하는 일본 밴드의 앨범명에서 따온 이름이다.

◇뛰는 전세 대신 임대 끼고 집 지어
"재테크 젬병이었던 저희가 집 지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집주인인 젊은 부부 게임 개발자 이주한(33)·김경하(33)씨가 7개월 된 딸 예지를 안고 해맑게 웃었다. 5년 전 분당의 전세 1억 5000만원짜리 22평 아파트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 이들은 2년 전 기로에 섰다. 전세 대란이 닥치면서 집주인이 전세금을 6000만원 올렸다.

부부는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머리를 맞댔다. 결론은 비싼 전세비 내느니 차라리 대출받아 듀플렉스(2가구용 주택)를 짓고 전세(4억8000만원)를 주는 것이었다. 마침 성남시에서 시세보다 싸게 분양한 땅(5억2000만원)을 아파트 전세금에 대출을 더해 샀다. 건축비는 설계비를 포함해 6억원 정도 들었다.
◇집 숨통 틔운 '사선(斜線)'
"유명 건축가를 찾아갔더니 우리 라이프스타일보다는 본인 스타일에 맞추려고 해서 버거웠어요." 말 통하고 사고가 유연한 또래 건축가를 찾다 인연이 된 주인공이 AnL이었다. 서울 누하동에 대지 면적 33㎡(10평) 초미니 주택 '몽당(夢堂) 주택'을 만들어 기발한 면모를 인정받은 건축가 그룹이었다.

부부의 요구 사항은 뜻밖에 '늘어지지 않는 집', 즉 '불편한 집'이었다. "집은 편해야 최고라는데 '편하다'는 건 사람마다 달라요. 저는 집이 어지럽혀진 걸 보면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그래서 바닥을 어지럽히지 않고 입식(立式) 생활을 할 수 있는 집을 그렸다. 자동차 마니아인 남편은 내부로 연결되는 지하 주차장을, 아내는 작지만 다채로운 공간을 원했다.
건축가의 해법은 '사선(斜線)'이었다. "네모 모양 평범한 땅에 네모로 집을 넣으면 경계가 명확해지지만, 사선으로 축을 틀어서 집을 앉히면 가장자리에 삼각형 형태 자투리땅이 생겨요. 이 공간을 정원, 테라스, 화장실로 색다르게 활용했어요." 네모 반듯한 공간은 없다. 공간도 명확히 분리되지 않는다. 1층은 작업실 겸 방, 2층은 거실, 주방, 식당이 하나로 합쳐져 있다. 사고에도, 디자인에도 진부한 틀은 싫다는 부부를 닮았다.

두 집이 함께 살지만 출입구가 분리돼 동선이 겹치지 않는다. 대개 2층집은 1, 2층으로 나눠 주인집과 전세 가구가 쓰지만 이 집은 두 가구가 1, 2층을 어슷하게 쓰도록 테트리스 블록 2개를 끼우듯 설계했다. 동서로 펼쳐진 두 날개로 구성된 건물에서 주인집이 오른쪽 전체와 왼쪽 2층 앞쪽을, 전세 가구가 왼쪽 1층과 2층 뒤쪽을 쓴다. 두 가구의 면적은 비슷하고 방은 4개씩 있다.

◇게임 개발하듯 함께 만든 집
팝 하우스는 신세대 건축가와 건축주가 실시간 정보 공유로 '함께' 지은 집이다. 건축가가 '카톡'과 이메일로 도면을 주면 건축주 부부는 퇴근한 뒤 머리 맞대고 수정 사항을 첨부해 피드백했다. "IT 업계에 이터레이션(iteration)이란 말이 있어요. 소프트웨어 개발 단계마다 수시로 사용자 반응을 물어 피드백을 반영하는 것인데, 건축가와 집 짓는 과정이 딱 그랬어요." 건축주 말에 건축가는 "이젠 정보가 널려있어 누구나 건축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맞장구쳤다.


예산 절감도 신세대답다. 부부는 저렴한 가구를 살 수 있는 IKEA를 수십 차례 오가며 조립식 가구를 골랐다. 하지만 맘에 드는 독일산 전원 스위치, 천장 부착형 팬은 인터넷으로 직구하는 식으로 '취향'을 놓치지도 않았다. 발품 팔아 논현동 건축 자재상을 돌다가 반값 떨이로 타일을 구했다. 대형 빌딩에 쓰고 남은 거라고 공짜로 얻은 자재도 있었다. 거창한 담론보다는 생활에 딱 밀착한 실천이 건축 문법을 바꾸고 있다.


※'팝 하우스'는 조선일보의 VR 저널리즘 플랫폼 'VR조선'(모바일앱 VR조선 또는 vr.chosun.com)에서 360도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