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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사승봉도에서 '원초적 문명'을 체험해보다

화이트보스 2016. 9. 22. 10:16



인천 사승봉도에서 '원초적 문명'을 체험해보다

물 반컵 얻으려 8시간 '투자'
게 잡고 칡으로 허기 달래
불 피우기, 신발끈 활은 실패
결국 파이어스틸로 불붙여
어느덧 문명의 이기가 그리워지는 밤이 오고…

나뭇가지로 집 짓고, 나뭇잎 매트에 누워 잠이 든다

지난 9일 인천의 무인도 사승봉도에 의도적 불시착을 감행한 두 남성이 나무로 집을 짓고, 조릿대로 바람을 불어 땔감에 불을 붙이고 있다. 냄비 속에선 둥굴레차가 끓고 있다. 전문 캠핑 장비 없이 자연을 즐기는 이 모험을 부시 크래프트(bush craft)라 부르기도 한다. 사진 속 나무집은 섬을 떠나며 모두 해체해 숲으로 돌아갔다.
지난 9일 인천의 무인도 사승봉도에 의도적 불시착을 감행한 두 남성이 나무로 집을 짓고, 조릿대로 바람을 불어 땔감에 불을 붙이고 있다. 냄비 속에선 둥굴레차가 끓고 있다. 전문 캠핑 장비 없이 자연을 즐기는 이 모험을 부시 크래프트(bush craft)라 부르기도 한다. 사진 속 나무집은 섬을 떠나며 모두 해체해 숲으로 돌아갔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어찌할 것인가. 스마트폰과 현금을 잃은 인간이여.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은 위기에 처한다. 웬만한 인생의 풍파는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지므로. 당장 무일푼이 될지도 모른다. 사방에 불빛조차 없고, 사람 하나 없고, 그저 모래와 파도뿐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일찍이 가수 김국환씨는 '타타타'를 통해 예지한 바 있다.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하지만 기억하시라. 당신은 수만년의 진화 끝에 도달한 자다. 그러니 호모 파베르(Homo Faber·도구적 인간)여, 무인도를 두려워 말라. 김국환씨는 이렇게도 웅변하셨다.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의·식·주 중 하나가 해결됐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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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전문가 김종도씨가 해변에서 물을 얻기 위해 땅을 팠다. 습기가 증발해 비닐 안에 물방울로 맺혔다가, 돌멩이 탓에 생긴 경사를 따라 컵으로 떨어지게 된다.

가방엔 옷 몇 벌, 도구적 인간에게 필요한 다용도 칼 한 자루만 챙긴다. 철기시대로 돌아갈 준비가 끝났다. 오전 9시 경기 안산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으로 간다. 여기서 1시간30분간 여객선을 타고 인천 승봉도로 가 또 작은 배를 타고 20분쯤 들어가면 사승봉도(沙昇鳳島)다. 모래의 섬이라 불리는 무인도. 한 바퀴 둘러보는 데 한 시간쯤 걸리는 작은 섬이다. 사유지라 입도비 1만원만 내면 불을 피워도 되고, 근처 섬과 가까워 혹시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쉽다. 무인도행 배가 한산하다. 섬에 관리인이 한 명 있긴 하나 오늘은 그도 내내 외로울 것이다. 동행한 '생존의 달인 아웃도어 핸드북'의 저자 김종도(40)씨를 제외하면 다른 인류의 그림자는 없다.

1. 길

섬에 첫 발자국을 찍자마자 직사광선이 정수리를 지진다. 앞이 하얗다. 어디로 가야 하나. 김씨가 "보금자리를 꾸릴 장소를 물색하자" 한다. 체력이 있을 때 섬의 지형을 장악해야 한다. 편서풍을 피해 남동쪽에 몸을 숨기는 게 좋다. 나무나 바위로 둘러싸인 숲이나 분지(盆地)면 더 좋다. 방위 파악을 위해 모래 위에 나뭇가지를 하나 꽂는다. 그림자가 진다. 거기 돌멩이를 하나 놓는다. 20분쯤 기다린다. 그림자가 이동해 있다. 거기 또 돌멩이를 놓는다. 첫 번째 돌멩이는 서(西), 두 번째 돌멩이는 동(東)이다. 남동쪽으로 걷다 보니 곧 숲이 나온다. 지천에 널린 해당화 열매를 따 먹으면서 걷는다. 방울토마토같이 생긴 이 빨간 것이 비타민C 함유량이 레몬의 십수배에 달한다 한다. '산속 바나나'로 불리는 으름과 개복숭아를 따고, 둥굴레와 쑥도 캔다. 버섯은 절대 금물. 김씨가 "버섯은 열량도 낮을뿐더러 잘못 먹으면 목숨이 위험하니 아예 무시하는 게 현명하다"고 조언한다. 숲에서 반드시 수집해야 할 특급품은 '관솔'. 송진이 엉긴 소나무가지인데, 불이 잘 붙고 꺼지지도 않아 횃불을 만들 때도 요긴하다. 죽은 소나무 밑동 쪽 굵은 가지 수십 개를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이따 '보 드릴'(bow drill)을 만들 단단한 나뭇감도 여럿 챙긴다. 스토브용 통나무도 칼로 썰어 온다. 땀이 비 오듯 하지만 밤새 이것들이 고마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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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드릴’을 가동하자 나무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불로 게를 구워 먹긴 했으나 위장이 만족하지 않는다.

2. 물

인간이여, 이토록 허약한 짐승이었느냐. 땀을 좀 쏟았을 뿐인데 목이 타들어간다. 바닥을 파야 한다. 바닷가에서 물을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은 햇빛이 내리쬐는 곳의 땅을 파는 것이다. 보금자리 터 앞에서 멀지 않은 곳에 깊이 1m 정도 판 뒤 바닷물을 뿌리고, 그 가운데 편편한 돌을 올린 뒤 그릇이든 컵이든 오목한 걸 놓는다. 그리고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투명한 비닐봉지를 주워 구멍을 덮는다. 이제 수분이 증발하면서 비닐 안쪽에 물방울로 맺힐 것이다. 비닐봉지 위쪽 중앙에 돌멩이를 하나 올려두면 물방울이 경사를 타고 내려가 컵에 담긴다. 8시간쯤 지나야 종이컵 반 정도가 찬다. 물방울이 금방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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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숲에서 주워온 나뭇가지를 세워 집 틀을 만들고 있다. 2 바위틈에서 방게를 잡기 위해 눈에 불을 켠다. 3 ‘한국의 바나나’ 으름열매. 아직 다 익지 않았다. 4 방게를 나뭇가지에 꿴다. 구우면 색깔이 빨갛게 변한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3. 밥

아, 인간이여. 낚시는 보란 듯이 실패했다. 비싼 낚싯대 들고 제대로 해도 잡힐까 말까인데, 물고기를 너무 물로 봤다. 과일과 채소만 주워 먹었더니 육식을 원하는 치아가 강하게 반발한다. 해변에 앉아 탐스러운 가슴살을 반짝이는 갈매기를 향해 자꾸 입맛을 다시게 된다. 조난 시라면 어쩔 수 없지만, 이곳에서 수렵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김씨가 “자연을 맘대로 훼손해선 안 된다”면서 “그래도 게 잡는 건 괜찮다”고 한다. 섬 남쪽 바위 해변, 돌을 뒤집을 때마다 아기 손바닥만 한 방게가 숨어 있다. 이걸 얼마나 먹어야 간에 기별이 갈 것인가. 열 마리를 잡아 온다. 오후 5시, 눈이 퀭해진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김씨가 “칡을 캐러 가자” 한다. 흔하디 흔한 최고의 식량 자원이다. 칡 넝쿨을 따라 열심히 땅을 판다. 나무로 급조한 삽으로 1m 정도 파 내려가자 거대한 배관 같은 칡 뿌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어른 팔뚝만큼 잘라 껍질을 깎고 한 입 베어 문다. 조청 같은 꿀맛이 느껴진다. 수분으로 갈증도 조금은 가신다. 껌처럼 질겅질겅 씹으며 구강을 달래기로 한다.

4. 집

생애 첫 자가(自家) 건축이다. 나뭇가지와 나뭇잎만 있으면 되니까. 튼튼한 Y자 짧은 가지, I자 짧은 가지 하나를 서로 기대 세운다. 그리고 Y자 가지 위에 2m 정도의 나뭇가지를 올리면 큰 틀이 완성된다. 입구는 작게, 높이는 낮게 해야 바람도 안 들어오고 체온이 쉽게 빠져나가지 않는다. 세 나뭇가지의 교차점을 칡 넝쿨로 친친 감아 고정한다. 이제 빈 공간을 생선 가시처럼 촘촘하게 나뭇가지로 채운다. 바닥은 나뭇잎을 매트처럼 푹신하게 덮는다. 누워보니 흡사 관(棺) 같다. 지붕 위에 덩굴과 나뭇가지로 덮어 비바람을 봉쇄한다. 말 한마디 없이 나무를 줍고 세우고 덩굴을 뜯어 오느라 2시간이 지났다. 당장에라도 단잠에 빠져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무인도엔 왜 이리 바람이 많이 사는가. 반팔 차림이 서러워질 찰나, 김씨가 손짓한다.

스토브 만들기

5. 불

프로메테우스는 없다. 라이터도 없다. 불은 제작하는 것. 아까 주워온 나뭇가지로 불을 피울 차례다. ‘보 드릴’을 만들어야 한다. 먼저 나무(파이어보드)를 반으로 쪼개 칼로 평평하게 다듬은 뒤 얇은 홈을 판다. 나뭇가지 하나(회전축)는 장구채처럼 잘 깎아 다듬고, 또 다른 살짝 휜 나뭇가지로는 신발끈을 매 활을 만든다. 활 줄에 회전축을 한 번 감은 뒤 파이어보드 홈 위에 세운다. 이제 파이어보드를 발로 밟고, 회전축을 나무나 돌로 꽉 누린 뒤 활을 켜면 회전축이 미친 듯이 돌며 마찰열을 일으킨다. 금세 연기가 피어오르고 파이어보드 홈이 검게 타면서 홈에 쌓인 재의 열기로 불씨가 생길 것이다. 그 불씨를 부싯깃에 옮겨 담고 입김을 불어넣으면 불이 확 붙는다. 논리대로라면. 문명의 이기가 그리워지는 밤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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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을 잊기 위해 잠들기로 한다. 나무집으로 들어간다. 주워온 스티로폼은 훌륭한 베개가 된다.

6. 별

‘보 드릴’은 실패. 김씨가 가져온 아웃도어 장비 파이어스틸(fire steel)로 불을 피운다. 돌멩이 수십개를 주워와 바람막이를 세우고, 불씨 위에 마른 땔감을 얹어준다. 주워온 조릿대를 빨대 삼아 숨을 불어넣자 불이 거세게 살아난다. 타닥타닥, 따뜻한 파열음을 내며 불이 커진다. 이젠 불을 지켜야 한다. 지름 10㎝ 정도의 통나무를 세로로 4등분한다. 각 등분된 중앙을 조금 파낸 뒤 다시 덩굴로 감아 붙이니 영락없는 두루마리 휴지 모양이 된다. 그 빈 공간에 부싯깃을 쑤셔넣고 불씨를 넣으면 이동식 스토브가 완성된다. 잡아온 방게를 꼬챙이에 끼워 굽는다. 녹색의 껍데기가 붉게 변한다. 씹어보니 꽃게 과자 맛이다. 지지직 소리를 내며 타는 것들, 일용할 양식이 되어주는 것들이 고마워진다. 집에 들어가 눕는다. 풀벌레가 지붕 위에서 운다. 사람이 없으니 별이 모인다. 모기를 쫓는 약쑥 연기가 공기를 덥히는 밤. 아주 오랜만에 숙면을 취할 듯하다.


지도

■ 승봉도 대부도↔승봉도 왕복선은 9월 하루 2회 왕복 운항한다. 편도 성인 9800원. (032)886-7813

사승봉도 승봉도↔사승봉도는 따로 개인 소유 선박을 빌려야 들어갈 수 있다. 1인당 편도 5만원 정도. 입도비는 1인당 1만원. 010-5117-1545

그늘막ㆍ밥솥ㆍ한 모금의 물도…이 섬에선 100% 자연산이다
가슴속 깊이 담아온 오지 마을 풍경, 함양 송전산촌마을
"숨을 크게 들이쉬면 가슴팩이 뻥… 이맛에 못 떠나지라이"